맘모스빵 하나로 건네는 마음

by 이은호


작년 11월 함께 베트남 여행을 했던 김사장님 부부가 한국에 들어오셨다. 여전히 베트남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앞으로 한국에서 노후를 보낼 것을 염두에 두고 베트남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신다. 원래 겨울에는 한국에 오시지 않지만 이번에는 캐나다에 사시는 누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겸사겸사 발걸음을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사장님은 오시자마자 한국의 겨울 날씨에 감기에 걸려 일주일가량 고생하셨다. 우리에게는 그다지 춥지 않은 부산의 겨울이지만, 베트남 날씨에 익숙한 김사장님에게는 혹독한 겨울인 셈이다.


김사장님이 컨디션을 회복하자마자 작년 11월 베트남 골프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펼쳤던, 아니 일방적으로 깨졌지만, 역전의 용사가 다시 만났다. 나와 김사장님 그리고 문사장님과 신부장님이다. 이번에는 필드가 아닌 스크린골프장. 적어도 실내에서 만큼은 나와 문사장님이 한수 위였다. 여유 있는 스코어로 복수전을 끝내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고기 굽고 술잔을 부딪히며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부부동반으로 스크린골프장에 다시 모였다. 역시 그날도 여유 있는 스코어로 따돌렸고, 모두 식당으로 가 뜨끈한 한방오리탕으로 몸보신하였다.


김사장님이 베트남으로 들어가시기 전 마지막 모임이 있었다. 모임을 가질 때마다 소정의 회비를 걷지만, 쓰다 보면 매번 모자란다. 그럴 때 추가 금액을 걷지 않고 한 사람이 나서서 계산하는 편이다. 김사장님은 모임의 큰 형님이라고, 문사장님은 그래도 회사의 전직 사장이라고, 신부장님은 프리랜서로 일하며 지갑이 두둑하다고 계산서를 낚아챈다. 반면에 지갑이 얄팍한 나는 매번 순위가 밀린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모임이 오래 즐겁게 지속되려면 가진 부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각자의 지출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래서 난 그 불편함을 몸으로 때운다.


마지막 모임 때 뭘 선물할까 생각하다 맘모스빵을 만들기로 했다.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 마음이 마냥 내키지는 않았지만 힘을 내어 판을 벌였다. 고구마를 찌고, 미리 주문해 둔 재료들을 꺼내 계량하여 양을 맞추고, 빵 반죽에 들어갔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귀찮던 마음은 저 멀리 사라지고,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빵 반죽 1차 발효, 소보로 만들기, 빵 반죽 및 속재료 소분, 성형, 2차 발효 그리고 굽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그럴싸한 모양의 빵이 만들어졌다. 빵이 식을 동안 생크림 휘핑하여 냉장고에 넣어 놓고, 설거지 및 뒷정리를 마쳤다. 한 시간 후, 한쪽 빵에는 딸기잼 그리고 다른 쪽에는 생크림 발라서 합체. 드디어 맘모스빵이 완성되었다. 이름 그대로 두툼하고 큼직하게 완성된 모습이, 머릿속으로 예상했던 모양과 맞아떨어져 스스로 흡족한 마음에 미소가 지어졌다. 외출 나갔다 온 아내가 여분의 빵을 맛보고는 바로 엄지척을 해주어 어깨가 더욱 으쓱해졌다.



모임 날. 포장된 빵을 하나씩 건네니, 모두들 고맙다는 인사다. 특히 사모님들께서 감탄하며 좋아하신다. '뭐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요.' 그 모습에 나도 속으로 좋으면서 짐짓 점잖을 뺐다. 비록 돈보다는 몸으로 때웠지만, 모임에 한몫한 거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스크린 라운딩을 마치고 자리를 옮겨 식사하는 자리. 올해 행사는 어떻게 할 거냐는 큰 형님의 물음에, '당연히 베트남으로 가야죠!' 다들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리하여 11월에 다시 부부동반 베트남 골프여행이 결정되었다. 이번의 주 목적지는 달랏. 1600 고지에 소나무 숲이 우거진 선선한 곳. 아침에 일어나면 산안개가 자욱한 신비스러운 풍경과 은은한 솔향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세포를 자극하는 곳. 지대가 높아 비거리도 조금 더 나와 골프 치기에도 좋은 곳이다.


문사장님이 나보고 이번에도 같은 편을 하자고 했다. 한번 동지는 영원한 동지, 한번 적은 영원한 적이라며. 당연히 그러자고 하였다. 작년의 복수를 하자고, 이번에는 우리가 확실하게 밟아버리자고. 그런 의미에서 의기투합하여 둘이서만 술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였다. 맞은편에 앉은 김사장님과 신부장님이 우리를 보며 '그게 될까?' 하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과연 우리 꿈이 이루어질까? 벌써부터 11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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