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뒤집기, '하필이면'

by 이은호


어제저녁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조카 아름이가 내게 던진 '하필이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귀여운 판다 곰 인형을 하나 사서 아름이에게 갖다 주자 아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이모,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하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나 사촌들도 많고, 암만 생각해도 특별히 자기가 받을 자격도 없는 듯한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는 아름이 나름대로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외국에서 살다 와 우리말이 아직 서투른 아름이가 '하필이면'이라는 말을 부적합하게 쓴 예였지만, 아름이처럼 '하필이면'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이자, 나의 '하필이면' 운명도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 장영희 에세이 '내 생애 단 한 번'에서 인용


'하필이면'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부정적인 단어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필이면'에 어울리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도 있다. 아침 출근길 버스시간에 딱 맞춰 정류소로 향하는데, 하필이면 횡단보도 신호등에 딱 걸려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네. 다음 버스 타고 조바심에 맘 졸이는데, 하필이면 접촉사고가 나 지각하고 말았네. 그런데 하필이면 회사 현관에서 사장님과 마주쳤네. 부장님이 옆에서 눈을 흘기네. 점심시간 막 사무실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리네, 부장님이 하필이면 날 보고 전화받으라고 하네. 전화받느라 구내식당에 늦게 도착하니 하필이면 가장 좋아하는 돈가스가 똑 떨어졌네. 대신 주는 오징어 튀김 꾸역꾸역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 오후 내내 배가 아파 화장실 들락거렸네. 퇴근하고 귀갓길 버스에서 내리니 하필이면 비가 내리네, 우산도 없는데. 비 쫄딱 맞고 집에 도착하니 하필이면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네. 10층까지 계단을 오르네, 설사하느라 다리에 힘도 없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네.


'하필이면'으로 꼬인 하루 정도가 아니고, 아예 인생이 시작부터 꼬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하필이면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노름에 빠진 아버지 자식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달동네 판잣집에서 자랐다. 영양실조로 온몸이 퉁퉁 붓기도 하고, 대부분의 것들이 결핍된 시간을 보냈으며, 허구한 날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어머니의 축 처진 어깨를 보아야 했다. 추운 겨울 연탄이 떨어져 냉방에서 자기도 고, 아침밥 지을 식량이 없어 어머니 심부름으로 이웃집에 빈 그릇 들고 찾아가기도 하였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도대체 왜 나를 낳아 이렇게 고생시키나 하며 부모 원망도 많이 하였다. 그럼에도 사람 목숨이라는 게 질겨서 끝내 살아남았다.


세월이 흐르고 나름 안정적인 인생길에 접어들어 살만해지면서, '하필이면'으로 시작되었던 인생의 첫걸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하필이면 그런 부모 밑에 태어나 욕심보다는 포기를 먼저 배웠지만, 덕분에 일찍 철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과 모진 환경은 오히려 맷집을 든든하게 키워 주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포기하고 주저앉기보다는 힘을 내어 버티고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게다가 부모로부터 스스로의 노력으로 먹고살만한 정신과 육체적 능력을 물려받았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것을 얻은 셈이다. 보너스로 나는 커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으니 그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하필이면' 내 인생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어린 시절 귀여워해 주셨던 이웃어른들, 학창 시절 바른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신 선생님들, 회사 다닐 때 올바른 직업관을 갖게 하고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셨던 선배들. 어려운 고비마다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은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이 좋았던 건, 하필이면 사랑스러운 그녀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이다. 그녀는 알뜰하게 살림을 잘 살았고, 딸 아들을 낳아 잘 키웠다. 사랑스러움(?)은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내 옆에서 평온한 일상을 지켜주고 있다. 하필이면 자식들도 좋은 짝 만나 결혼하고 잘 살고 있으니 뭘 더 이상 욕심낼까 싶다.


한편으로는 걸리는 게 있기도 하다. 나는 하필이면 아내를 만난 게, 하필이면 우리 아이들을 만난 게, 더 없는 기쁨이요 행복인데. 아내나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다. 하필이면 나 같은 남편을 만난 게, 하필이면 나 같은 아빠를 만난 게, 그들에게도 행복이요 기쁨일까. 그것은 고사하고라도 부정적인 감정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돌아보면 미흡함이 남는 게 사실이다. 아내에게 사랑으로 자상하게 보듬어주지 못했고, 아이들에게 아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그저 그런 남편, 그저 그런 아빠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라도 반성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하필이면 내 남편을 만나, 하필이면 우리 아빠를 만나, 정말 다행이라고. 정말 행복하다고. 그런 남편, 그런 아빠이고 싶다.


가게 쉬는 월요일. 몸도 찌뿌둥해서 늦잠 자고 싶었지만 아내의 제안에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조조할인 스크린골프도 치고 지인들과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저녁에는 외손자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딸네집엘 갔다. 아내와 딸이 집안 정리하는 사이 외손자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다, 사위 퇴근시간에 맞춰 찬바람 씽씽부는 밖으로 나가 식당으로 향했다. 돼지갈비 굽고 사위와 소주잔도 부딪히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에 돌아오니 밤 열 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힘들게 보낸 휴일.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결 상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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