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컷
아내와 함께 스크린골프장을 찾았다. 새로 장만한 클럽 테스트를 위해서였다. 샷 할 때 손을 타고 느껴지는 타격감도 좋고, 비거리도 괜찮게 나왔다. 그리고 게임 시작. 홀이 거듭될수록 정타가 나오고, 마치 오래전부터 써왔던 클럽처럼 몸에 붙었다. 다만 퍼터가 기존 것과 모양이나 무게감이 달라 거리 맞추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번 써보면 익숙해지겠지 싶었다.
바쁘게 살 때, 퇴직하고 나서는 괜찮은 클럽 장만해서 골프 치러 다니는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아침에 빵 굽고 오후에 커피 내리는 북카페 점원 생활. 하지만 꿈은 꿈. 꿈을 버릴 수는 없다. 작년에 첫 국민연금 받았을 때, '연금수령 기념으로 골프채나 바꿀까?' 했더니, '꿈 깨셔!' 하는 아내의 날 선 반응에 즉각 꼬리를 내렸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골프채, 골프채' 노랠불렀다. 꿈은 꿈이니까.
내 노래에 세뇌되었을까, 아내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지금 쓰는 채가 오래되었으니 바꿀 만도 하지.' 하더니, 며칠 전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 '채 바꿔줄게요. 하지만 새것은 안 돼요.' 그러면서 당근마켓을 찾는다. '중고채는 아니지.' 싶었지만, 신품은 워낙 비싸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하였다. '이건 어때요?' 한참 검색하던 아내가 핸드폰을 보여준다. 혼마2스타 풀세트다. 게다가 내가 쓰고 있는 골프채와 구성이 똑같다. 슬쩍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중고채임에도 가격이 만만찮다. 이백만 원을 훌쩍 넘는다. '아, 가격이...' 하고 망설이니, '바꿔주려고 맘먹었을 때 해요. 생일선물이라 생각하고.' 하며 재촉한다.
그리하여 중고골프매장을 방문하였고, 꿈에 그리던 장비를 손에 넣었다. 중고임에도 거의 사용흔적이 없는 신품 같아서 더욱 맘에 들었다. 물론 당초 꿈은 이것보다 훨씬 높은 등급의 골프채였지만, 수입이 변변찮은 사정을 생각하면 이것도 과분한 선물이다. 어쨌든 '골프채, 골프채' 하며 노랠불렀던 꿈이 이루어졌다.
아내는 뭐든 본인보다는 가족이 먼저다. 자기가 입을 옷이 없다며 찾은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도, 결국 본인은 빈손이고 들러리로 따라나선 내 옷이 들려져 있다. 그러고서는 정작 자신은 싸구려 바지 하나 사서 밑단 줄이는 비용 아깝다며 직접 바느질을 한다. 본인은 절약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궁상이다. 그러다 계절이 바뀌면 입을 옷이 없다며 다시 백화점이나 아울렛을 찾고, 그 결과는 매번 똑같다.
이번 골프채 장만도 그렇다. 사실 내가 쓰던 골프채보다는 아내의 골프채가 더 험하다. 그래서 본인도 골프채를 바꿀 생각이 있다. 나이 들고 팔에 엘보도 와서 비거리 줄고 샷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런 마음이 더 강하다. 나는 이왕 하는 거 신품 구매를 권하지만, 아내는 그럴 마음이 없다. 대신 당근마켓을 찾는다. 중고매장에도 방문하였으나, 맘에 드는 것은 가격이 부담스러워 선뜻 잡지 못하고, 대신 그렇고 그런 것만 만지작거리다 발길을 돌렸다. 그래놓고서 내 채를 위해서는 거금 이백만 원 넘는 돈을 선뜻 내놓았다.
아내는 요즘 주 3회 오후시간에 알바를 나간다. 집에서 놀면 뭐 하냐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돈 때문이다. '손자 맛있는 거 사주려면 내가 돈 벌어야지.'라고 한다. 주 삼일만 쉬면 충분하다면서 하루 더 일할 자리를 찾는다. 내 생각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건 원치 않는다. 하지만 쉬엄쉬엄 딱 손주 맛있는 거 사줄 정도, 거기에 덧붙여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일 년에 한 번 골프여행 할 정도로만 일했으면 좋겠다. 나머지 시간은 나하고 놀아야지.
돈이 다인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퇴직하고 수입이 뚝 떨어지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돈이 충분치 않아도 얼마든지 살만한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글 쓰는 걸 취미로 삼으니 돈 쓸 일 없고, 북카페 점원을 하니 돈 쓸 시간이 없다. 이래저래 알찬 일상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아내와 결혼한 게 아닐까. 지금 이 순간 평범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그게 다 아내 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난 이미 진작에 꿈을 이룬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