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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 Aug 10. 2020

치앙마이가 그렇게 좋아!

방랑자와 여행자

아내가 치앙마이를 처음 다녀온 건 10년 전쯤이다. 원래 태국을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그중 그녀의 마음을 잡은 곳은 ‘치앙마이’라는 태국 북부의 오래된 도시였다. 치앙마이는 오래된 성곽으로 둘러 쌓여 있는 구도심(올드시티)과 성곽 외곽으로 뻗어있는 신도시가 어울려진 조용한 도시다. 태국의 유명한 도시와 다르게 치앙마이는 바다를 접해 있지 않고 내륙에 위치한다. 태국 하면 푸껫과 같은 강렬한 비치와 바다를 떠올리는 나에겐 내륙의 그 도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매년 그곳을 한 번씩은 다녀온다. 어떤 해는 두 번도 다녀오고 지낸 해는 한 달 살기를 체험하기도 했다. 밋밋하게만 느껴지는 그 도시의 무엇이 그녀를 사로잡았을까 궁금했다.

 

몇 해 전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찬사를 확인하고자 그녀를 따라 치앙마이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모든 일정은 그녀가 조직한다. 그녀는 틀에 박힌 일정을 싫어한다. 비행기 편과 숙소만 준비한다. 여행 일정은 그날의 컨디션과 날씨, 기분에 따라 정해진다. 숙소는 치앙마이 올드시티의 게스트하우스였다. 늘 그렇듯 낯선 여행지에서는 늘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아내와 딸은 여자 숙소에서 아직 잠들어 있었다. 숙소를 빠져나와 낯선 장소의 싱그러운 설렘을 안고 혼자 도심 산책을 나섰다. 구도심은 사각의 성곽 주위로 해자가 둘러져 있어 그 길이가 2~3킬로는 족히 되는 듯했다. 오래된 벽돌로 지어진 성은 시간의 더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듯하다. 해자 주위로 아열대 국가의 특유의 화려한 꽃과 다양한 식물이 아침 햇살을 머금고 에너지가 넘친다. 

 

십여분의 산책 걸음은 자연스럽게 메인 게이트(타패)로 향했다. 타패 앞 광장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백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자전거를 끌고 서 있었다. 자전거 대회나 행사가 있는 듯하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막 자전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나는 강한 호기심에 끌려 나도 모르게 무리 속으로 들어선다. 중앙에 작은 단상을 차려놓고 마이크를 잡은 이가 태국어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전문 라이더가 아닌 민간인들이다.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청년들.. 나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사설 사이클링 모임이었다. 서너 명의 서양인도 섞여 있었다. '코쿤캅~'만 아는 태국어 실력으론 어떤 대화도 불가능하다. 자전거도 다양하다. 가정용 철티비부터 산악자전거, 그리고 비싼 로드 자전거까지. 나는 그저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일요일 아침 라이딩을 준비하는 들뜬 라이더들을 바라 볼뿐이다. 그런 나의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서양인 한 분이 다가와 말을 섞는다. 

 

'두 유 원나 조인 어스' 뭐 우리랑 같이 탈래 뭐 그런 거 같다. 나는 부러움에 거의 농담으로 '오브 커스, 이프 파서블.!!'이라고 대꾸한다. 존(그 서양인의 이름)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미소를 남긴 채 돌아서 단상으로 다가가 진행자에게 귀속말을 전한다. 갑자기 단상 진행자가 나를 가리키며 단상으로 나오라고 한다. '헉 뭔 소리'. 낯선 장소에서의 익명성과 개방성은 나를 용감하게 밀어낸다. 나는 자석에 끌리 듯 단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진행자는 새로운 클럽 회원이 왔다고 대뜸 소개를 하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럴싸하게 가보자' 마이크를 들고 나는 약간의 과장을 섞어 멘트를 날린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자전거를 사랑하고, 태국을 더욱 사랑하고, 치앙마이를 더더욱 사랑한다. 여러분을 사랑한다. 잘 부탁한다' 뭐 그렇게. 회원들의 환호를 받으며 단상을 내려오면서 혼자 되뇐다. '뭐 꼭 틀린 말도 아니잖아. 과장이 좀 셌을 뿐'. 하지만 이 말이 낯선 치앙마이 여행의 색다른 모험의 단초가 될 줄이야...


단상을 내려오니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환영의 인사를 건네 온다. 옆에서 구경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 어떤 동류의식을 가진 눈빛으로 반갑게 대한다. 남자들은 이름을 물어오고, 악수를 청하고, 어깨를 두드린다. 아줌마들은 마치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갔을 때처럼 따뜻한 눈길을 맞춰 준다. 존이 다가와 오늘 라이딩 코스를 설명한다. 나는 자전거도 없고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존은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고 알려준다.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난다. '지리도 전혀 모르는 이 낯선 장소에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 난데없는 자전거 투어라고? 더구나 이 후진국가에서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한테 낭패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어리바리한 관광객 호구삼아 등 처먹으려는 건 아닐까' 의심과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이미 들떠 버린 마음과 미지의 호기심이 그런 의심과 두려움을 물리친다. 자전거 한 대를 빌려 보란 듯이 일행에  합류한다. 집사람에게 나의 일정을 연락하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아내는 여행 중 비용을 아끼려 본인 전화기만 현지 유심으로 교체한다. 전화번호는 현지 번호고 난 그 번호를 몰라 연락을 할 길이 없다.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계획되지 않은 미지의 모험을 내딛는 심장은 흥분으로 두근거린다. 투어는 먼저 성곽 해자 옆 길을 따라 올드시티를 한 바퀴 돈다. 그룹은 세 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무리를 지어 달린다. 각 그룹에는 젊은이들이 진행요원 역할을 맡아 선두와 후미를 가이드한다. 각 그룹 진행요원 간의 소통은 무전기로 이뤄진다. 진행하는 모습이 보기와는 다르게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 나는 중간 그룹에 섞여 달린다.

삼십여분 성곽을 돌고 나서 일행은 남쪽 외곽으로 빠져나간다. 여느 도시처럼 도심을 벗어나자 건물은 허물하고 환경도 어수선하다. 차도는 좁아지고 듬성듬성 파였 있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다. 위험을 제어하는 진행요원들이 긴장한다. 조금 더 달리자 도심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키가 껑충한 야자수와 아열대 지방의 다양한 나무들, 초록이 넘실 거리는 논과 밭 그리고 그 속에 기대어 사는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사람들.


자전거를 타면 풍경은 다르게 느껴진다. 차창을 통해 보는 풍경이 티브이 화면을 보는 것 같다면 자전거 탄 풍경은 그 자체가 몸에 스며드는 것 같다. 몸으로 느끼는 풍경과 빠른 기동력이 바로 자전거 여행이 주는 매력이다. 라이딩이 주는 쾌감은 아내에게 연락 못한 켕기는 마음을 사르르 없애준다.

한 시간이 지났다. 일행은 편의점 옆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한다. 삼삼오오 모여 준비해온 간식을 서로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무런 준비 없는 나는 음료수 한 병으로 목을 축인다. 혼자 이방인처럼 쉬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이 간식을 다투어 나누어 준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떡과 과일을 수줍게 건네는 손길에 잠깐이나마 그들의 호의를 의심한 마음이 창피해진다.


치앙마이에 한국인 여행자는 많지만 자전거 모임에 나온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란다. 자신들의 일상과 깊이 섞이는 경우를 자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일행 중에 나와 비슷한 이방인이 한 명이 보인다. 작은 체구에 유난히 검은 피부, 조용한 눈빛의 그는 캄보디아 사람이었다. 이주노동자로 태국에서 2년째 일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이방인이라는 데서 오는 묘한 동질감으로 서로 급 친밀감을 느낀다.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진다. 그는 핸드폰을 열어 외로울 때 본다면서 고국에 있는 아내와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딸아이 사진을 보여준다. 애처로움이 가득했던 그의 눈빛이 환희와 희망으로 변하는 걸 느낀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을까 싶다. 그에게 다아스포라의 슬픔이 느껴졌다. 


다시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집이 근처 거나 방향이 다른 일행들이 인사를 하고 하나둘 대열에서 빠져나간다. 본격적인 시골길로 이어진다. 관광코스에서는 볼 수 없는 진짜 태국인들의 마을을 가로질러 나간다. 담장 넘어 보이는 집들에 선 70~80년대 한국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마당엔 닭과 가축들이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아이들과 같이 뛰놀고 있다. 일행이 지나가자 신기한 구경거리가 생긴 듯 머리를 내밀고 구슬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순수한 눈망울이 자연처럼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허기지고 체력이 힘에 부칠 때쯤 일행은 불교사원으로 들어선다. 사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결혼식 잔치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단다. ‘남의 결혼식에서 점심을?’ 태국에선 전통적으로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지나가는 누구든 넉넉하게 대접한다고 한다. 대접받는 자는 적당히 감사를 표하면 된다고 한다. 현금이 없는 내가 난처해하자 “외국인은 안내도 돼요” 라며 나를 난처함에서 구해준다. 일반 식당에서는 볼 수 없는 태국 전통 음식이다. 운동 덕분인지 정성으로 마련된 음식이어서인지 잊지 못할 다채로운 맛이다.


신랑 신부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사원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젊은 커플 한쌍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영화 <연인>의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여자와 그 모습을 담으려는 남자의 열정. ' 나에게도 저런 뜨거운 열정이 있었는데.. 아~ 다시 돌아가고 싶다' 고 상념에 젖어 있는데 존이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하우 이즈 라이딩?” 하며 옆에 앉는다.

그리고 그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존은 보통의 서양 남자보다 키도 작고 체구도 아담하다. 체구는 작으나 다부진 어깨가 60대 후반의 노인이지만 나름 남성미가 느껴진다. 부드러우면서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강렬하게 상대에 집중하는 눈빛에서 삶의 노련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존은 미국 서부 시골에서 태어났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기 전에 집을 뛰쳐나와 떠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으며 서른을 넘기면서 미국을 떠나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거쳐 지금 여기 치앙마이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은 아무런 국가의 공식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무국적자라고 한다. 무국적자라니 얼마나 담대한 삶인가. 


그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상상이 된다. 70년대 히피 문화에 심취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청년 존, 무역상으로 합법과 비합법을 넘나들며 주체할 수 없는 돈을 쥐게 된 사업가 존, 유흥과 쾌락의 화려한 나날의 중년의 존, 어느 날 배신과 실패로 낭떠러지기로 떨어진 노년의 존.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아임 베리 해피 나우”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소설(그리스인 조르바 같은)에서나 봄직한 자유로운 방랑의 삶에 대한 존경심이 일어난다.

나에게 방랑의 삶과 정주하는 삶의 선택권이 주어 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는 지나온 삶에 대하여 후회가 없을까? 계획되지 않은 우연적 사건이 지배하는 삶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방랑의 일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갈구하는 정주의 욕망이 교차한다. 떠돌면 안주하고 싶고 안주하는 순간 떠나고 싶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삶이란 말인가


돌아오는 길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중간 빠져나가고 마지막으로 존이 처음 출발한 곳까지 나를 안내한다. 부드럽고 유머스러운 표정으로 “다음 주에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되돌아 가는 뒷모습에서 진정한 방랑자를 보는 듯하다. 숙소에 돌아오니 오후 2시다. 아내는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나의 실종 신고 여부를 놓고 심각하게 의논하고 있던 차였다. 쏟아지는 아내의 질타에 나는 한마디로 변명한다.

“치앙마이 사람들 참 좋네”


지난달 책 <방랑자들>을 힘들게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5년 전 치앙마이에서 7시간이 떠올랐다. 특히 존의 방랑자적 삶이 다시 나를 깨웠다.

방랑자는 삶을 온전히 ‘날 것 그대로’ 사는 이들이다. 뚜렷한 목표나 세세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과정에서 모든 것을 걸고 선택한다. 그들에겐 컨티전시 플랜, 차선책이나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삶의 과정 과정에 오로지 한 번의 선택만이 주어진다. ‘다시(once again)’나 '만약(If then)'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돌아갈 곳이 없으며 과거를 돌아보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의 소리에 진솔하게 귀 기울이며 순간순간을 몸으로 결정할 뿐이다. 마치 아마존 정글에 떨어진 어린아이처럼.


방랑자의 주된 동력은 새로움이다. 새로움이 주는 자극은 팽팽한 긴장을 불러오고 그 긴장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희열과 에너지를 느낀다. 긴장이 자기화되고 익숙해짐으로 변할 때 그들은 다시 떠나게 된다. 그들에게 익숙해짐은 지루함이며 지루함은 견딜 수 없는 죄악이고 고행의 시간인 것이다. 깊은 심심함과 사색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피로사회> (한 병 철저) 주장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인지 모른다. 물이 고이기 시작한 순간 미생물이 증식하듯 익숙해짐은 그들 내부의 자아를 부패하게 한다. 그들은 부패를 막기 위해 포름알데히드 액에 표본 되는 것을 경멸한다. 박제된 삶은 죽음보다 무서운 시지프스의 부조리다. 그들에게 삶이란 주머니를 톡톡 털어 주더라도 다시 그릴 수 있는 하얀 도화지를 구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여행은 안주머니에 꼬깃꼬깃 비상금을 숨겨 놓고 무일푼인 척하는 것이다. 언제든 돌아갈 안전한 곳을 감춰 놓고 방랑자의 '날 것'의 삶을 흉내 내는 것 같다. 어쩌면 여행이란 정주자의 지루한 삶을 방랑자의 삶으로 교묘히 위장하는 자기기만인지 모른다. 자기기만의 약효가 빠지고 정주의 민낯이 드러날 때 우리는 다시 캐리어에 짐을 싸는 건지 모른다.


나의 삶은 정주하고 있는가? 여행하고 있는가? 방랑하고 있는가?

고인물에 비치는 저녁노을이 아니라 늘 깨어 두근거리는 아침 해를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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