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기억
어릴 적 기억 속엔 겨울밤 보다 여름밤이 더 길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지면 겨울의 밤이 훨씬 더 길겠지만
내 기억 속의 밤은 여름날의 밤이 더 한가하고 길게 느껴졌다. 여름밤이 되면 개구리 소리가 울안에 가득했다. 그 소리는 나의 기분상태에 따라 볼륨이 조정되는 듯했다. 심사가 뒤틀렸을 땐 시끄럽게 들렸고 기분이 좋을 때는 음악처럼 감미로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개구리 소리는 카페의 배경음악처럼 나에겐 의식되지 못하는 소리였다. 마당 한가운데 오도카니 서있는 앵두나무와 텃밭의 옥수수 잎은 어둠 속에서도 광합성을 하는 듯 달빛을 받아내 반짝반짝 윤기를 내었다. 두런두런 대청마루에서 늦도록 이어지는 어른들의 대화는 개구리 소리와 어울려져 나에게 자장가가 되곤 했다. 엄마 무릎을 베개 삼아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도 아직도 별이 총총한 밤은 계속되고 있었다. 여름밤은 길고 포근했다.
우리 동네는 우두라고 불리었다. 우두산이 있어서 우두인지, 우두에 있는 산이라 우두산인지 모르겠지만 멀리 북쪽으로 우두산이 솟아 있고 그 아래도 너른 벌판이 펼쳐져있다. 사람들은 간혹 밭농사도 지었지만 대부분 논농사를 짓고 살았다. 벌판은 넓고 막힘이 없었다. 동쪽으로 '우두강'이 휘돌아 흘러 내려가서 서쪽의 소양강으로 합쳐졌다. 그 사이에 우두벌판은 양쪽 강이 만나는 지점을 꼭짓점으로 역삼각형 모양을 띠고 있었다. 같은 물줄기를 우리 동네에선 '우두강'이라 불렀고 물줄기 아래 시내에선 소양강이라 불렀다. 나중에 학교 지리책에서 찾아본 강은 '우두강'도 '소양강'도 아닌 북한강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왜 같은 강 물줄기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여름이면 남자 어른들은 날을 잡아 우두강으로 천렵을 나가 곤 했다. 꺽지, 피라미, 퉁가리, 동자개, 쉬리... 고만 고만한 고기들을 족대질이나 어항으로 잡아 매운탕을 만들어 먹고 여름을 나곤 했다. 아줌마들은 어스름 해가 질 녘 달팽이를 잡으러 나갔다. 우리 동네에선 다슬기를 달팽이라 불렀다. 달팽이는 물살이 세지 않고 느릿한 강가 호박만한 돌에 많았다. 그런 돌들은 물이끼 위로 흙탕물이 뽀얗게 가라앉아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 돌에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덩거려 넘어지기 쉬웠다. 된장을 풀고 푸성귀를 넣고 끓인 다슬기국은 쌉싸로운 맛이 더운 여름 입맛을 돋게 했다. 건저 낸 달팽이는 살을 빼먹는 재미가 쏠쏠 했다. 원뿔의 아랫 부위를 이빨로 깨물어 부셔 내고 대가리에 입을 대고 배인 국물과 같이 쪽쪽 빨아먹는다. 입안에 퍼지는 들쩍지근한 된장 국물과 달팽이 특유의 맛이 더해져 여름 간식으로 그만이었다. 더러 여자애들은 옷핀으로 대가리를 찔러 돌돌 말아 살을 발라 먹었다.
초등학교 가기 전 어느해 여름이었다. 나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잠이 든 어린 나를 누군가 잠깐이라도 건드리면 나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뛰쳐 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맨발로 마당을 뛰어다니는 것이다. 깜짝 놀란 식구들이 잡아서 아무리 다독여도 제풀에 울음이 지칠 때까지 제정신이 아닌 것이었다. 이삼십 분 발광을 마치고 제정신이 돌아오면 본인도 머쓱한 지 눈만 껌벅거리는 것이다. 증상은 특히 낮잠을 자거나 선잠을 깰 때 심했다. 내 기억으론 거대한 무언가 나를 덮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눈을 뜨면 온 몸은 땀에 범벅이 되어 엄마 품에 안겨 있고 주위에는 식구들과 가까운 동네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낮에 동네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나를 보는 애처로운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주사네 막내에게 귀신이 붙었다느니 큰 병의 전조증상이라느니 아줌마들은 쑤군거렸다. 사랑채 창석이 아줌마는 내가 발광하며 "이만해! 이만해!"라고 소리치기 때문에 옆집 아들과 무슨 연고가 있을 거라는 나름 근거있는 추리를 해냈다. 옆집은 원래 큰 연탄공장을 하다가 사업을 접고 그 자리에서 군부대에서 빼돌린 석유를 싸게 받아 일반인에게 몰래 파는 일을 하는 집이었다. 그 집 아들은 나보다 대여섯 살 위의 형이었다. 성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형의 이름이 '이만'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만'이 형을 불러다 '재가 왜 네 이름을 부르면서 발광을 하냐, 네가 재를 어찌했느냐'라고 몰아세우기까지 했다.
엄마는 증상이 계속되자 시내 한약방에 나가 한약을 한 재 지어왔다. 나이 든 한의사가 말하기를 뭣에 단단히 놀랐다고 한다. 쉽게 얘기하면 '경기(驚氣)'라고 한다. 한약 한 재를 다 먹고 나자 나의 경기는 간격이 드문해졌다. 그리곤 두어 달 뒤엔 아예 사라졌다. 하지만 엄마에겐 아직도 찜찜했다. 약을 먹어 증상이 호전되었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된건지 그리고 무엇에 놀라서 그랬는지 아직도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는 해답을 찾았다.
첫 증상이 있기 얼마 전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동네 아줌마들이랑 우두강에 달팽이를 잡으러 나갔다. 달팽이가 기어간 자국들이 돌위에 지도처럼 복잡하게 그려져 있다. 엄마는 치맛단을 허리단에 치켜 매고 고무 함재기를 물에 띄어 놓고 허리를 숙여 달팽이를 주웠다. 내가 어른 손톱만 한 달팽이를 찾았을 때 엄마는 마치 금 쪼가리라도 보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의 칭찬에 나는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물속 달팽이에 정신을 집중했다. 물결에 빛이 반사되어 물속은 잘 보이지 않고 어질어질했다. 순간 나는 조약돌에 발이 미끄러져 움푹 파인 웅덩이에 쑥 빠져 들어갔다. 한길이 넘는 웅덩이는 나를 머리까지 쑥 잡아당기는 듯했다. 갑자기 귀가 멍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꿈속에 빠지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엄마가 나의 뒤 덜미를 잡아 올리기까지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낮잠을 자고 일어난 시간만큼 길고 몽롱했다. 결국 그 몽롱한 놀람은 경기가 되어 달팽이가 "이만해 이만해"하고 소리쳤던 것이다. 그 후로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이 아무리 애원해도 달팽이 잡으러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