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위하여~
오늘도 나는 여전히 간신히 눈을 뜨는 아침이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고들 말한다. 초저녁만 되어도 잠이 쏟아지고 아침에 일찍 잠을 깨는 패턴으로 바뀌면 대수롭지 않게 “나이 먹으면 원래 그래” 이렇게 말들을 한다. 그런데 나는 나잇값도 못하는 건지 이만치 살았는데도 아직도 아침잠이 많아 지금껏 가뿐하게 일어난 적이 없다.
생각해 보면 자라면서 나는 가끔 이른 새벽이면 잠결에 엄마의 부스럭대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많은 식구들 뒷바라지에 고단했을 하루를 마치고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으니 아침 일찍 눈이 떠졌을 거란 생각을 그땐 철없이 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이 먹으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기정사실인양 또 그렇게 믿어버린 채 지금껏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우리네 인생이란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희로애락 속에 있다. 그러다 보니 혹시 그 무렵 엄마는 심리적으로 힘들고 뒤숭숭한 날들을 살아내고 있었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어둔 새벽녘 잠결에 뒤척이다 인기척에 어렴풋이 눈을 떠보면 엄마는 장롱 서랍을 열고 가만가만히 옷 정리를 하고 계셨다. 지난밤 고단함 속에 일찍 잠들었지만 여전히 캄캄한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계신 것이다. 아마도 가족들을 걱정하고 여자로서의 삶을 혼자서 삭히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는 부엌에 주저앉아 작은 불빛 아래 조용히 혼자 식재료를 다듬거나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엄마의 아침은 내게 그렇게 어둔 새벽에 혼자서 조용히 사부작 거리던 작은 어깨의 뒷모습으로 남아있다. 되짚어 보건대 자신만의 시간으로 얻어낸 고요한 새벽에 고달픈 당신의 영혼을 위한 명상의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의 새벽은 그 삶의 중요한 시간이었고 위대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하루를 위해서 아침을 여느라 혼자서 분주했을 엄마의 아침은 거룩함이었다.
그렇게 날마다 새벽 의식처럼 수행하던 이토록 감사한 엄마의 아침과는 다른 아침을 나는 종종 맞는다. 가끔 새벽 댓바람에 일출을 찍으러 출사를 나설 때가 있다. 어둠 컴컴한 아침 다섯 시 무렵 버스를 타면 어느새 차분히 운전을 하는 버스기사님을 본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잠이 덜 깬 승객들을 태우고 어둠 속의 도심을 달리며 본분에 충실한 기사님의 아침시간을 바라보는 것은 신선하다.
이어서 지하철로 환승한다. 여기서 뜻밖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이 새벽에 지하철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것이다. 활력이 넘치는 지하철 안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각자의 일터로 또는 밤새워 일한 후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새벽시장으로 향하거나 장엄한 새벽 일출을 맞기 위해 카메라 가방을 둘러멘 사진가들도 있다. 이렇게 누군가의 하루를 위한 세상의 아침이 분주히 시작되고 있었다. 삶의 에너지를 느껴보려면 어둠 속의 새벽차를 타볼 일이다.
언제나 조용히 아침을 여시던 울 엄마의 그 새벽과는 달리 오늘도 나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잠이 덜 깬 눈으로 몸을 일으켜 간신히 일어난다. 어둔 새벽 가만히 일어나 묵묵히 하루를 시작하던 내 엄마를 닮기엔 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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