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파스타. 리조토... 그라찌에(Grazie~)
피자는 골고루 맛보리라 생각하며 떠났기에 피자집이나 음식점, 그리고 길거리를 다니며 피자를 먹어댔다. 물론 서울에서 먹던 불고기 피자는 당연히 없었다. 내가 다닌 장소의 한계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으나 새우나 감자 고구마가 토핑 재료였던 피자도 보질 못했다. 이번엔 지중해의 채소와 시큼콤콤한 듯 고소하고 부드러운 치즈가 듬뿍 얹힌 피자를 실컷 먹었다. (먹는데 정신 팔려 사진 찍는 걸 자꾸만 잊곤 해서 몇 가지 빠졌다.)
그중에서 내가 홀릭했던 피자는 토핑으로 큼직한 채소가 푸짐하고 널찍하게 올려져 있는 피자였다. 무엇보다도 채소의 단 맛이 풍부하다. 지중해의 태양을 받고 자란 가지. 호박. 파프리카 등이 잔뜩 올려져 있는데 한 조각만 사도 내 얼굴을 덮는 크기여서 아쉬움 없이 흡족하다. 조각피자는 베네치아에서 수상버스에서 오르내릴 때마다 사 먹기도 했는데 밀라노에서는 편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먹을 수 있어서 남편과 둘이 한 판 시켜놓고 간신히 다 먹었다.
신기한 건 다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본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서 한 판을 다 먹어치운다. 마치 우리가 파전 한 장 먹어치우듯, 제과점에서 간단히 빵이나 파이 하나 먹고 나가듯 간단히 먹고 나가는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피자(Pizza)와 함께 리소토(risotto) 파스타(Pasta) 3종 세트도 맛보았는데 다행히 운 좋게도 모두 내 입에 딱 맞아떨어진다. 이태원에서 먹었던 이태리 본고장의 맛이라던 맛과 비슷한 면도 있었지만 풍미가 쫌 다르다. 코끝을 자극하는 해산물의 풍미와 푸짐한 양이 마냥 행복하다. 지중해의 태양이 익혀낸 올리브와 빨간 토마토가 주는 정열적인 풍요로운 느낌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토마토와 해산물과 올리브 오일의 절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가 입 안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조금 다르달까 아쉽달까 맛은 더없이 좋았지만 담음새가 그리 이쁘지 않았다. 물론 고급식당이 아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널찍하고 이쁜 접시에 깔끔하게 세팅되어 나오는 서울과는 달리 그냥 담기는 대로 편하고 자연스러운 모양새였다. 물론 탓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난 그저 여행지의 다른 모습 그대로 보고 즐기기로 한다.
한 번은 밀라노 시내의 식당에서 알 수 없는 글자의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그나마 알만한 단어가 들어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체 모를 요리가 나온 것이다.
당황스러워하며 바라보고 있으니까 셰프가 다가와서 '원했던 요리가 아니구나?' 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걱정 마라' 하는 얼굴로 돌아가더니 파스타를 한 접시 만들어 내왔다. 한 그릇 값만 받을 테니 아까의 그 음식도 먹고 이것도 먹으라고 한다.
어찌 고맙기만 할까. 셰프의 따뜻한 인간미에 이태리 여행의 기억이 기분 좋게 달라진다. '땡큐' 대신에 '그라찌에'란 말을 이때 한 번 사용했다.
특히 운이 좋았던 것은 커피맛이었다.
호텔 아침식사에서의 커피도, 시내에서 마셨던 커피들이 모두 내 입에 good~. 까다로운 입맛의 남편도 동감했던 커피였다. 진하면서도 거부감 없는 쌉싸래한 개운함과 뒤끝의 단맛이 흡족한 풍미를 준다. 산시로 축구장 가면서 먹었던 입안에서 쫄깃하고 부드럽게 녹는 젤라토 역시 잊지 못할 맛이다.
그 외에도 이상하게 이탈리아의 맛은 대체로 내게 안성맞춤처럼 괜찮았다. 마늘을 사용하고 느끼함이 덜한 담백함이 우리네 입맛과 닮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이태리 요리를 잠깐 배울 때 시연한 선생님도 시식하는 우리에게 '입에 안 맞는 거 없을 거예요' 하며 자신 있어했다. 양념과 식재료가 우리 입맛과 비슷한 친근함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로 지리적 환경도 비슷하다. 또한 마늘을 맛 내기의 기본으로 하는 공통점도 동질감을 갖게 한다. 마침 근처에 대형 식재료 마켓이 있어서 그곳을 떠나 올 때 토마토소스와 올리브와 오일, 바질 페스토와 발사믹 식초 등 본토의 식재료 몇 가지를 담아왔다.
여행지에서든 어디서든 아무거나 잘 먹던 내 입맛이 언제부터인가 나랑 안 맞을 때가 가끔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대체로 수수하게 먹었던 그 모든 게 잘 맞아줘서 그저 땡큐였다. 아니, 그라찌에(Graz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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