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모, 비토리오 에마뉴엘리 2세 갈레리아 아케이드, AC밀란과 인터밀란
여행 마지막 날의 동선은 단순하다.
오전엔 두오모 광장에서 그 분위기에 섞여보는 일과 바로 그 옆의 아케이드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산시로 경기장을 둘러보고 다시 시내로 나와 호텔에 맡겨둔 여행 가방을 찾아 말펜사 공항으로 가는 것.
연말의 두오모 광장은 이른 시간인데도 들뜬 사람들로 가득하다. 맞은편 노천카페의 노란 테이블엔 부부나 연인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침 햇살은 두오모 성당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앉아있는 그들을 비춘다.
때로 어딘가 지나치다가 우연히 만나던 안갯속 풍경에 멈춰 서기도 한다. 안개가 내게 스미는 촉촉함과 안갯속 풍경이 되어 더 머물고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엄청난 포스의 두오모 대성당의 광장과 따사로운 노천카페의 풍경이 아름다워 나도 한참 동안 그 풍경 속의 풍경이 되어있었다.
성당 광장의 비둘기 떼들과 노니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바라본다. 일상을 떠나 있다는 묘한 일탈감과 생경한 도시의 인상이 절묘하게 배합되는 순간이다.
바로 그 옆으로 대형 아케이드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가가 아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비토리오 에마뉴엘리 2세 갈레리아 아케이드라는 이름이다. 웅장한 건물의 통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중앙을 십자로 가르며 사방의 건물의 연결하는 길이 이어지고 천정의 창 구조물이 예술작품이다.
모르고 들어선다면 처음엔 백화점이나 일반적인 상가인 줄 알 수 있다. 그러나 들어서면서부터 고풍스러운 이곳엔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하는 프라다, 베르사체, 루이뷔통 등의 명품샵이 우아한 무게감으로 쭈욱 입점해 있다. 고색창연함과 고퀄리티의 어울림이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켠으론 피자와 젤라토를 한 입 먹느라 줄 서 있고, 기둥도 천정도 예술이구나 바라보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언제나처럼 산책하듯 지나가려 해도 쉽지 않은 인파다. 골목도 자칫 길을 잃을 것처럼 이리저리 길이 나 있다.
아케이드를 벗어나면 베르디의 푸치니를 초연했다는 스칼라 극장이 있지만 생각만큼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이 의미 있겠지만 그냥 쓰윽 보고 지나친다. 미술관이나 동상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정도로 볼거리가 널려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수백 년 된 건물들이면서도 정갈하고 도시적이다.
오래된 연말의 찬기운과 함께 오전의 햇볕이 그 건물을 지나는 길에 그림자를 만들고 배회하던 내 발걸음 소리를 남긴다. 지하철 입구나 거리 곳곳에 빨간색의 선명한 M자 폰트가 밀라노를 더욱 기억하게 할 것 같다.
산시로 축구장으로 가는 길은 연말인데도 우리의 늦가을의 정취를 그대로 풍겨준다.
이곳은 이탈리아 AC밀란과 인터밀란은 같은 지역 연고로 같은 경기장을 쓰고 있다. AC밀란 경기 때는 산시로, 그리고 인터밀란 경기 때는 주세페 메아차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한다. 경기가 없는 날이지만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이미 줄지어 있다.
낙엽이 날리는 길 옆의 담벼락에는 AC밀란과 인터밀란의 선수들이 한 명 한 명 쭈욱 이어져서 그려져 있다. 그라피티 아트라고 하면 무조건 낙서처럼 생각해 오던 것이 거리의 예술로 자리 잡고 있듯이 경기장을 향하는 길에 이렇게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루니, 메시, 체흐, 발로텔리...(선수 이름은 아들이 알려주었음)
난 그저 평소에 남편이나 아이들이 축구를 좋아하니까 그냥 따라와 준 것뿐인데 이런 곳도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장의 여행자 안내 시스템이 다양하고 철저하다.
또 이태리 축구의 역사부터 구단과 선수들의 소소한 물품까지 전시 보관되어 있어서 볼거리가 제법 많았다. 여러 전시관을 살피는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빼놓으면 섭섭할만한 곳이다.
다시 밀라노 시내로 나왔을 때는 하루가 기울고 있었다. 조금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흘려보듯이 밀라노 시내를 다시 한번 휘익 돌아본다. 충분한 시간으로 다니는 여행이 좋겠지만 이런 속성의 여행도 나름의 재미가 있고 아쉬운 기억으로 남기는 맛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연말,
밀라노에서 보냈던 짧았던 며칠은 어느덧 지나간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서울 안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