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발랄 수분 충전 베네치아
기차 창 밖으로 색 바랜 베네치아의 붉은색 지붕이 막 내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기차는 산타루치아 역에서 멈췄다. 비둘기가 가득했던 산마르코 광장엔 바람이 몹시 불어 머리가 날리고 옷깃이 마구 펄럭여서 단추 몇 개를 채웠다. 마치 비가 내린 듯 역 앞은 젖어 있었고 어디든 촉촉한 느낌을 주는 도시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한 두 걸음만 걸어도 출렁이는 바다가 있고 곡선의 수로가 그린 듯 길게 이어진다. 선착장에 짙은 코발트블루의 곤돌라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곤돌라로 유유히 즐기기엔 하루가 짧다. 수상버스 바포레토 12시간 탑승권을 사서 타고 도는 게 좋다.
대운하를 지나고 무라노 섬을 들르고 바다 위를 달리며 셔터를 누르다가 어디든 기분 내키는 곳에서 내려 그 골목들을 천천히 누비는 것, 그 골목 끝에는 때로 예상치 못한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여행자들이 밀려 나오고 강렬한 색감의 건물들이 기분을 확 트이게 해 준다. 알록달록 작고 무수한 가게에서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알린다. 군데군데 예술품 전시장을 기웃거리고 바라만 봐도 이쁜 연인들을 눈앞에서 마음껏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어디서든 다시 수상버스 올라타고 또 다른 섬으로 가면 된다.
그러다가 널찍한 피자 한 조각 먹어도 좋고, 이탈리아 로고가 찍힌 비싸지 않은 가방이나 베네치아 찻잔 하나쯤 사도 좋다. 차갑고 시원한 바닷물을 피부로 만끽하며 하루 종일 활력 넘치던 이국적 아름다움과 생동감으로 뒤엉켰던 머릿속을 텅 비울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그곳. 그리고 거길 떠나올 때 여행가방에 담아 온 토마토소스와 바질 페스토나 올리브 오일로 만든 파스타 한 접시 나눌 누군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여행이다.
굳이 베네치아의 역사나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차치하고라도 일상을 떠나 상쾌한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면 그곳에 가서 수상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볼 일이다. 성탄과 연말 즈음이어서인지 산마르코 광장의 넘치는 활기를 듬뿍 얻는다. 종일 물 위를 오가는 베네치아에서는 더욱... 하루 내내 시원한 물 위를 달리거나 내리거나를 하며 물 튀기다 보면 온통 상쾌 그 자체다.
리알토 다리 위엔 밤에 올라가라 했지만, 베니스는 밤의 모습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했지만, 저녁이면 다시 밀라노행 기차를 타야 한다. 누구나 사랑하고 싶은 베네치아에선 와인 한 잔이나 따뜻한 핫초코 한 잔으로 또 다른 삶의 온기를 담아 오라 누군가 말했으나 시간이 짧았다. 환한 한낮에 리알토 다리 위에서 키스하는 연인을 담았고 다리 아래 줄무늬 셔츠를 입은 곤돌라 아저씨를 망원으로 당겨서 찍었다. 거리를 걸으며 피자를 먹었고 무라노섬 선착장 플랫폼에 앉아 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다.
한나절의 여유가 고작인 여행자에겐 산타루치아가 울려 퍼지는 운하의 골목을 느릿느릿 거니는 그들의 여유가 그저 그 도시의 풍경일 뿐이다. 마음속에 찍힌 사진처럼 오랜 기억으로 남긴다. 살짝 남아있어야 좋을 미련도 적당히 챙겼다. 이십몇 년 전의 이태리 여행에서도 일정상 베네치아를 빠뜨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밀라노 여행의 곁들임이 되어버렸다. 짧아도 베네치아 여행의 아쉬움은 없다. 무기력한 겨울이었는데 이런 생기발랄한 베네치아의 수분을 충전하는 것으로 더할 나위 없다. 역시 잠깐이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