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을 보내드리고
며칠 사이로 집 앞에서 바라보던 작은 숲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나뭇잎을 절반 이상 떨군 나무 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젠 훤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여름 그 숲을 바라보면서 빽빽한 나무 사이를 산책하기엔 슬며시 겁을 먹기도 하던 겁쟁이였는데 오늘은 천천히 그 길에 나가봐야겠습니다.
이런 마음인 채로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시아버님께 삼베옷을 입혀드리고 안치실을 나오던 대학병원 복도의 내 발소리를 기억합니다. 그 복도 창 밖으로는 때 아닌 초겨울 비가 세찬 바람 따라 유리창을 두드렸었지요. 제 각각 한 걸음씩 떨어져 걸으면서 속울음을 울거나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제 슬픔을 달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몸부림치는 아쉬움이나 멍한 모습으로 시름에 젖어있기보다는 떠나시는 분을 위하는 환송 인양... 찾아주신 분들과 차분히 그 시간들을 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아버님을 위한 몇 차례 마지막 작별인사를 드리던 남은 자식들이 엎드려 간. 절. 히... 절을 올리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피와 살을 나누어 주신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절을 드리던 남편의 간절했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결국 이렇게 만감이 교차할 시간이 우리들에게 찾아올 텐데 난 그 시간들을 끝까지 잘 참아내지 못하고 힘들어한 적도 분명 있었습니다. 시아버님이 계시던 병원을 향해 뜨겁던 여름의 도심거리를 가로질러 달리면서, 또 미치도록 푸르던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시시때때로 찾아가던 병원 가는 일을 더러는 꾀부리고 싶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편편찮아한 적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어차피 우리들에게 주어진 몫의 시간들이니 적극적으로 마음을 다해 잘 해내자고 처음부터 마음먹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지치지 않을 만큼, 인내의 한계를 느낄 만큼 힘들지는 말자... 했더랬습니다. 서로를 위해서 아무래도 그래야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와 보니 그래 봐야 시아버님의 병원생활이 겨우 6개월 정도였는데 그걸 쉽지 않아 했습니다. 그게 못내 죄송합니다.
시아버님의 마지막 이승길을 떠나보내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음식점에서 가족들은 또 한 마디씩 합니다.
'아버지가 이 올갱이국을 참 좋아하셨지... ' 어느덧 담담히 말들을 합니다.
그동안 남편과 제가 그런 음식점을 잘 모시고 다녔었는데 '한 번 더 모시고 나갈 걸...' 자꾸 아쉽기만 합니다.
다들 그런다지요.
함께 있던 시누이 남편이 말합니다.
긴 세월 누워있던 부모를 위해 형제들끼리 돌아가면서 찾아가 목욕시키기로 했는데 그게 때때로 성가셔서 괜한 이유를 내세우며 종종 빼먹었다고요. 벌써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그분은 때때로 말하더군요.
"그때 울 아버지 목욕을 한 번 더 시켜드리는 건데... 나 나쁜 넘이야..."
팔십을 훌쩍 넘긴 긴 인생이었다고 누가 말했지만 이렇게 초겨울의 하루해는 참 짧군요. 며칠 동안 참 무기력해진 몸과 마음으로 비몽사몽을 오갔던 것 같습니다. 우두커니 지냈던 지난 며칠을 밀쳐내야겠습니다. 현관엔 삼우제(三虞祭)를 지내고 내려오던 산길에서 묻혀온 진흙이 잔뜩 묻은 신발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우선 그 흙을 털어내야겠습니다.
며칠 전 시아버님의 기일을 지내고 돌아와 그즈음에 기록했던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이젠 그분들이 무조건 그립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0Dma2KR6q0 Hymn/Bill Doug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