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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Feb 19. 2019

문득 떠날 수 있는 곳, 청주

눈 오던 날, 소소한 당일여행 청주








눈이 내렸다. 올 1월엔 눈도 비도 내리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했다. 그 귀한 눈이 하필 지난밤부터 소복이 내려 쌓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징조지? 내 외출을 반기는가, 아님 눈길의 불편함이 있을까?  어쨌든 이런 날씨가 나는 나쁘지 않다.


함께 여행하기로 한 친구가 저쪽에서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오~... 눈이라니 이게 웬일이니, 우리 어쩜 날을 이렇게 잘도 잡았을까. 오모모... 눈 날리는 것좀 봐~"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아이 같다. 밝은 표정이 이쁘다. 눈길이 위험하고 여행하기에 불편함이 있을 거란 생각 따윈 손톱 끝만큼도 하지 않는 친구랑 함께여서 좋다. 참 좋다. 그래, 우리 날 잘 잡았다. 이런 날 훌쩍 떠나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고속터미널 매표구에서 청주행 티켓 두장을 샀다. 10분쯤 남은 시간 동안 따끈한 공차를 마시며 눈발 날리는 고속터미널 밖을 내다보았다. 이렇게 문득 여행을 떠나다니 설레는 순간이다.


한 시간 반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눈은 그쳤고 청주 도착 즈음에는 코끝 쨍한 찬바람이 겨울여행을 실감시킨다. 택시는 우리를 청주 도심으로 데려다주었고 아무도 알아 줄리 없는 자유로움에 우리 둘은 미치게 신나고 있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을씨년스럽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겨울여행의 맛이었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휩쓸리고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이동하며 보냈던 시간들.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날아간 걸 알았다. 택시기사님의 순박한 말씀, 육거리 시장통 아주머니의 정감 어린 인심, 새롭게 만나본 문화 예술의 면면들, 추억을 소환하는 골목길의 벽화, 소박한 맛집의 편안함, 조용한 찻집에 푹 파묻혀 일상을 이야기하고 세월을 이야기하던 시간들... 다양함의 진면목을 청주의 정체성인 듯 느껴본 날이었다. 


그렇게 문득 떠났던 하루 여행이 지금도 행복하다. 가슴이 훈훈하다. 친구랑 헤어지며 '우리 이거 또 한 번 해보자'... 생각해볼 것도 없이 간단히 의견 일치했다.






터미널에서 탄 택시는 청주 도심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청주의 명동이라 하는 곳, 이를테면 핫플레이스로 꼽는 <성안길>이다. 예전에는 본정통이라 불리었다. 성안길에는 다양한 거리가 존재하듯 쇼핑객들이 넘치고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시네마 거리>

첫걸음부터 영사기 조형물이 눈앞에 보인다. 영화 박하사탕의 철길, 국가대표, 타이타닉, 007 영화의 제임스 본드...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형물들이 있다. 배우들의 핸드프린팅과 앉아볼 수 있는 벤치나 사진을 촬영해 볼 수 있는 포토존과 레드카펫도 있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또한 짝패를 비롯해 베테랑, 닥터스 등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고 주변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세 군데나 있다.    


그 옆 서문시장 방향 골목으로 들어가면 청주의 대표음식인 <삼겹살 거리>도 있다. 전국 유일의 삼겹살 특화거리인데 3월 3일 삼겹살 데이 전후해서 삼겹살 축제를 개최한다고도 한다.


그리고 성안길을 쭉 따라 끝까지 가다 보면 전국 최대의 재래시장인 100년 역사의 <육거리 시장>이 이어진다. 이 길에 한 번 들어서면 모든 볼거리 먹을거리 등이 넘친다.



조금 더 걸어가면 중앙공원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나온다.

마침 <쫄쫄 호떡>이 구워지고 있어서 한 개씩 먹기로 했다.



호떡을 먹으며 그 앞의 <중앙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겨울이라 썰렁하지만 시민들의 쉼터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공원이다. 여름의 신록이나 가을의 단풍철엔 계절의 색감을 충분히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900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임진왜란 당시의 전적비, 유형문화재 망선루, 척화비, 독립기념비... 가 가득한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곳이기도 하다. 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한꺼번에 느껴볼 수 있는 공원이다.



점심식사로 중앙공원 골목의 <공원당> 우동을 먹었다.

50여 년 전통의 공원당은 우동을 비롯해서 판모밀소바나 돈가스로 유명하다.

내가 먹었던 우동은 6000원.



점심으로 우동을 먹고 골목을 나가면 도심에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 있다. 도시 한 복판에 첨단의 문명과 예스러운 이야기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청주에는 용두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터에서 발견된 <용두사지 철당간>이다.  1962년 12월 20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41호로 지정되었다. 전국에 철로 만들어진 당간은 공주 갑사의 철당간, 칠장사의 철당간, 그리고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3군데뿐이다.



용두사지 철당간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퍼옴

홍수에 취약했던 청주는 자주 물이 범람해 백성들이 고생을 했습니다. 그때 어떤 풍수지리가가 청주를 찾아와 청주의 지리가 배처럼 생겼으니 범람을 막기 위해서는 돛대를 하나 세우면 배가 돛대를 얻어 범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청주 사람들은 돛대를 닮은 철당간을 세우게 되었고 그 후 청주에는 물이 범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재미있는 역사를 담고 있는 철당간, 그 가치가 빛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도심에서 조금 이동해볼 참이다. <청주 동부창고>

택시를 타려고 하니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길을 물었다.  너무나 친절히 가르쳐주어 버스를 타고 10분쯤 거리였다.

지난 연말에 개관했다는 <국립 현대미술관> 청주 개관으로 관심을 끌었다. 과천, 덕수궁, 서울에 이은 네 번째 분관이며 서울 수도권을 제외한 첫 지방 분관이다. 개방 수장고와 기획전시실 등을 갖추어 미술품들이 전시, 보관되고 있다  5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개관 특별전으로 6월 16일까지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은 안정된 모습보다는 조금 뒤숭숭한 느낌이 있긴 하다. 하지만 쓸모없어진 담배창고를 미술관으로 기획한 것만으로도 신선하다. 사정상 들어가 보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보고 느끼고 즐길거리가 아주 많다고 하니 여름쯤에 다시 와서 꼭 들러볼 계획이다.


<문화산업단지>

아주 오래전 청주에는 연초제조창이 있었다.

청주와 인근 주변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자리였고 청주를 대표하는 산업체였다.

1946년 11월 1일 건립된 옛 청주 연초제조창은 약 3천여 명이 넘는 근로자가 근무하던 곳이었다. 

이 국내 최대의 담배창고가 2004년에 문을 닫았고 2011년부터 재활용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이 동부창고가 1960년대 창고의 원형을 유지한 채 새로운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또한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이젠 청주시민들을 위한 문화 플랫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입구부터 세월의 연륜을 덕지덕지 느끼게 해 준다.

아련하다.

매해마다, 매월마다 각기 다른 행사들이 펼쳐지는데 그 주제들이 새롭고 따뜻해서 누구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다. 현재 37동, 38동, 6동, 8동, 36동, 35동, 34동으로 되어 있다.


34동은 커뮤니티 플랫폼으로서 공연 행사 등이 가능한 다목적홀을 비롯해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갤러리, 요리를 할 수 있는 푸드랩, 나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목공예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5동은 청주공연예술 연습공간으로써 대, 중, 소 연습실, 그리고 청주생활문화센터 동부창고 36동은 다양한 생활문화 클래스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다양한 주제와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찾아오고 있다.


이밖에도 동부창고에서는 다양한 전시회는 물론 스타일 마켓, 백일장 등 다양한 행사로 꾸며지고 있으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힐링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부창고에서 걷거나 차를 타고 이동해도 될 만큼 멀지 않은 곳에 수암골 마을이 있다. 택시로 오르니 기본요금 수준이었던 것 같다. 10년 전쯤이던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로 이름을 알리고 나더니 '영광의 재인' 카인과 아벨' 등의 유명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이어지는 곳이 되었다.


본래는 이곳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졌던 달동네다. 또한 과거 청주 제일의 인쇄골목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역 예술가들이 ‘추억의 골목길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려 애환과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동네로 재탄생된 곳이다.



- 가난이란 기억의 길

새벽 거리 날품 팔러 나가시는 어머니 따라

비알길 골목 끝나는 낮은 담벼락

아침해가 떠오를 대까지 쪼그려 앉았던

그 날들이 보인다

논 몇 뙈기 팔아 쫓기듯 더나 온 고향은 보이지 않았지만

산모롱이 끼고 난 작은 길옆

묘들이 자리 잡은 푸른 가난 앞에 서면

얼기설기 판잣집 지붕들이

저녁연기 피어오르지 않던 저 산동네가

찬 이슬일지라도 눈물짓지 말라던 낮은 담벼락이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아득한

저 길이 보인다.

몇 시간 동안 걷고 구경하느라 다리를 쉴 때가 되었다.

높이 위치한 팔봉빵집 이층에 앉아 청주를 조망할 수 있다. 쉼과 여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뜨거운 차 한잔에 푹 쉬며 친구랑 세월 속의 우리를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었다.


- 봄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언덕엔

꽃다지, 민들레, 애기똥풀이 꽃을 피우고

좁은 텃밭엔 어린 채소가 자라고 있다.

애기똥풀 꺾어 손톱에 노란 물들이고

민들레 씨앗 바람에 날리면

따스한 햇살이 어린 채소밭에 내려앉는다.

늘어나는 처마 밑으로

재재재재 제비 날아드는 저녁이면

산 아래 도회지로 돈 벌러 나가신

아버지의 그림자가 멀리 보인다.


우리나라 전통시장 중에서 청주의 육거리 시장은 역사가 깊고 다양해서 널리 알려져 있다.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여서 놀랐다. 동서남북으로 쭉쭉 뻗어 입점되어있는 가게들이 사방으로 이어져 있고 없는 게 없는 시장이었다.


지나다가 한 가지씩 사 먹기도 하고 신기한 것을 물어보면 구수한 말투로 너무나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한 가지씩만 군것질을 해도 금방 배가 부를 지경이다. 사 오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는데 들고 올 생각에 겁이 나서 그러질 못했다. 오곡밥 재료를 한 봉지 샀다. 품질도 좋고 인심도 후한데 집에 와서 펼쳐보니 조금 더 사 올걸 아쉽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나던 육거리 시장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청주였는데 주변 근교 등 아직도 가볼 곳이 무수히 많다. 다음에 또 오기로 하고 청주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아쉬움에 터미널 앞 찻집에 앉아 여운을 좀 더 즐기다가 7시발 고속버스에 올랐다.

여름쯤 우리 여기 또 오자.. 단번에 약속한 청주였다.


고속버스왕복교통비 15400 // 점심(우동)6000

택시와 시내버스비 10000정도 // 커피 등 10000

사만여 원 남짓으로 하루가 충만했던 청주 당일여행이다.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9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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