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를 떠올리다.

뒤늦은 여행기의 변(辯)

by 리즈







도대체 내가 거길 다녀온 게 언제였더라.

사진 폴더를 뒤적여 본다. 아득한 듯하면서도 한 두 주 전에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기억 속의 여행은 혼자만의 기억 속에서 야금야금 즐길 일이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몇 달 전 그 시간들을 끄집어내고 굳이 기록해야 하려는 것인지 싶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친절하거나 장황한 안내정보는 아니어도 그럼에도 나 혼자 꺼내볼 나만의 기록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 여행 중 마드리드를 간단히라도 기록해 두고 싶었는데 그게 어려웠다.

내게 좋았던, 또는 나빴던, 또는 기억해두고 싶었던 여행지이기에 잘 써 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작 이럴 때일수록 그게 어렵다. 그럴 능력도 안되고 머리를 쥐어짜느니 이럴 땐 에라 모르겠다 결국 대충 써 재끼고 만다. 그렇게 기록인지 뭔지 메모일지라도 해두자 하며 몇 번씩쯤 키보드를 잠깐 두리다가 저장하다가를 반복했다.



이런저런 게으름과 귀찮음과 사소한 스트레스들로 뒤늦게 그날들을 꺼내본다.

해야 할 숙제처럼 여행지의 날들을 날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히려 그것이 내 마음에 틈틈이 비타민 제공을 했다는 걸 알았다. 속 터지는 일이 생겼을 때도 차라리 이런 날 마드리드나 써볼까 생각하며 레티노 공원 계단에 걸터앉아 쉬던 시간을 떠올렸다. 미치게 화나는 일이 있던 날도 이런 날 북적이던 산미구엘 시장의 하 이야기나 짧게 써놔야겠다 생각했다. 오랜 숙성기간을 거친 하몬이 주렁주렁 매달린 그 골목 풍경이 뭐 한 가지 되는 일 없던 날의 내 마음을 토닥였다. 숙제 못하는 게으름도 때론 쓸모가 있다.



마드리드는 어딜 가나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고 각자 다른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오간다. 낮이든 밤이든 거리의 노천 테이블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도 노천카페에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아 커피나 맥주 한잔 홀짝이며 몇 시간쯤 망연히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었다. 잠깐 떠나온 여행자에겐 그런 꿈같은 풍경은 그림의 떡이다. 다만 우두커니 솔 광장에 잠깐 서서 그들의 그런 다채로움을 구경해 주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다.



비가 내리던 마요르 궁전 광장이 북적인다.

노천카페 천막 아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만의 인생 샷이다. 이제는 마드리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지만 그 옛날 악명 높은 종교재판이 열리고 요즘도 깃발 들고 집단 구호 외치면서 정치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거기서 그들은 비 내리는 날 감성 어린 한낮의 식사를 하고 있다. 가혹했던 역사를 증명하는 의미 있는 풍경 속에 하루쯤 나도 함께 했다.



중세 느낌의 굵직한 아치 통로 골목을 따라 다시 거리 쪽으로 나온다.

다행히도 고만고만한 볼거리들이 오밀조밀 가까이에 붙어 있다. 다리만 튼튼하면 뚜벅이 여행으로 다닐만한 곳이 마드리드다. 이곳 역시 도보여행에 최적인 유럽의 걷기 여행다. 가끔씩 지하철이나 버스로 연결하면서 무릎 뻐근하도록 걷는다. 구시가지의 오래된 비탈진 언덕길을 걸어 나와 그랑비아길을 지나면서 알무데나 성당이나 사비티니 정원의 감성 채우기도 해 본다. 스페인 광장에 들어 세르반테스의 동상 아래 돈키호테나 당나귀에도 시선 한 번 던져준다.



마드리드 왕궁 앞엔 비가 내려 곳곳에 반영이 그림처럼 이쁘다.

빗물 고인 바닥에 뾰족탑이 비친다. 입장 티켓 구입을 위해 서있는 무리들의 울긋불긋한 우산이나 하늘도 그 빗물에 담겨 있다. 열명쯤 무리 지어있는 청춘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니 환영한다며 질러대는 소리가 경쾌하다. 부러운 청춘!


천천히 바람결에 흐르는 듯한 여행이었다.

그 옛날과 소통하고 또 현재를 마주 보기도 했다. 간간히 비도 뿌리고 활짝 개인 스페인의 태양을 뿌려주기도 하던 날들이었다. 여행 중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 순간이 얼마나 자주 있을까 비로소 당연한 일이 아니란 생각을 한다. 때로 내 삶을 잠깐씩 고마워할 수도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의미 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는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된다는 걸 이렇게 알아간다.

뒤늦은 여행기를 적으면서 일상에 지칠 때 그나마 꺼내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니 다행이다. 이제는 천천히 여행기를 쓸 생각이다. 아껴둔 감동이나 기억들을 비타민처럼 조금씩 끄집어낼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길 서해바다엔 마젠타 레드의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저릿한 것은 가슴에 담아 온 고마운 감성 때문일 런지. 이것만으로도 또한 땡큐다.









추가 사진으로 조금 더 보기~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 앤드류 매튜스



역사 속의 세상이 반영 속으로 나타나 무언가를 전해주려는 듯하다.



2800여 개의 방,

왕궁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했다는 말이 있다. 서유럽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 한다고...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것을 발견한다. - 철학자 조지무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Dream the impossible, Do the impossible love, Fight with unwinnable enemy, Resist the unresistable pain, Catch the uncatchable star in the sky.)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1547-1616)의 소설 '돈 키호테'(1605) 속 대사


돈키호테 뒤의 왕처럼 앉아있는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와 산초, 로시난테의 스토리를 잠깐 생각해 봄.

역사적 광장에 펼쳐진 노천카페, 마요르 광장은 종교재판이 열리던 곳, 화형 고문을 하고 사형장이었던 곳이 이렇게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명소로 바뀌었다. 요즘은 정치행사도 깃발 들고 집단 구호도 외친다. 1층에는 유명한 빵집도 하몽 파는 가게도 있고 관광안내소 상가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 골목골목들을 걷다 보면 그들의 일상이나 삶의 소리와 냄새를 느낄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을 향해 달리는 이 길이 늘 좋다.

마젠타 레드의 노을이 형언키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여행 이전의 일상으로 향해 달리는 중이다.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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