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기억의 도시
가끔씩 헷갈린다. 여기가 어디였더라?
고개 들어 올려다보거나 눈이 돌아가게 번쩍거리는 첨단의 빌딩, 그 골목들이 생경하지 않다. 자본주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기긴 했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들도 거리감이 느껴질 만큼 낯선 모습이 아니다. 지하철 역도 적당히 수수하고 낡거나 더러는 지저분하다. 날씨조차 서울의 그것을 옮겨놓은 듯 익숙하다. 오히려 이전에 가 보았던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는 내 나름의 유럽적인 느낌이 있었다. 거리에서나 사람들이나 날씨 느낌도 이게 유럽이구나 했었다.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선입견이 있었던 건가. 번화한 도시인 베를린이 이렇게 친근할 수가 있구나 하며 편안했던 날들.
드레스덴에서 프릭스 버스로 두 시간 달려서 베를린 동물원 앞에서 내렸을 때도 잠깐 근교 도시로 이동해 온 듯했다. 숙소로 가는 길 주변이 번화했는데도 그저 동네 사람들이 오가듯 유난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기대와 다를 때는 분명 또 다른 것이 나타나 채운다. 이번엔 어떤 것에 내 마음에 꽂힐지 모를 일. 언제 어디서든 실망하거나 기대감이 줄어드는 여행일까 봐 걱정할 일은 없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한낮, 베를린의 반듯한 빌딩 꼭대기에선 벤츠 자동차 로고가 반짝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무턱대고 나섰다가 아, 여기 들어가 볼까 해볼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건물 안에 들어서면 미술관이고 박물관이다. 혹은 무슨 기념관이거나 추모관이다. 마음먹지 않아도 도시 곳곳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전쟁의 피해자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건축물이나 설치물들이 흔하다 못해 길바닥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은 그 모든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인 듯하다.
브란덴부르크 남단의 숲 쪽 방향의 추모공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
도심 한가운데 제각각의 크기와 높낮이가 다른 네모난 사각기둥이 가득 차 있는 동네가 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는 2711개의 비석이다. 줄지어 선 돌비석의 그림자들이 그분들의 영혼인 양 비석 사이사이마다 추모객들을 마중 나온 듯 짙게 패턴을 이룬다. 시간여행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무릎 아래로 나지막한 높이에서부터 나를 푹 파묻히게 하는 비석의 숲으로 들어갈수록 덜컥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광기 어린 시대의 역사 속에서 살다가 사라져 간 희생자들의 존엄에 함부로 만지기도 기댈 수도 없는 마음이다. 그저 절로 묵념이 나온다.
아픔이나 치부를 이렇게 시내 중심의 밝은 햇볕 아래 드러내 놓은 모습.
그 나무 아래서, 널찍한 비석 위에서 자유롭게 앉아 그들을 떠올리고 추모하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다. 아마 설계자의 의도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끔찍한 상처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서울 어느 동네에 세워진다면 주민들은 어떤 반응은 보일까. 아랑곳하지 않고 소중한 생명을 추모하는 것이 이곳 사람들에겐 하등 '문제없음'이다. 오히려 과거사 사죄의 마음으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념물을 세워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있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헬무트 콜 총리가 통독후 이곳 도심의 동베를린 땅을 확보했고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이탈리아 화학자 프리모 레비,
그는 10개월간의 생지옥에서 생환했다. 수용소에서 살아 나와 틈틈이 글을 쓰고 증언 문학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말했다. "이것은 일어난 일이고 또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증언해야 할 핵심이다." 그렇게 과거의 참혹했던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그가 42년이 지난 67세에 돌연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그 모든 이들을 위한 독일의 추모 시설이나 추모비는 다양하다.
독일 시민들의 추모 마음도 남다르다. 내가 갔던 쿠담 거리의 카이저 빌헬름 교회 계단에는 지금도 추모의 생화가 놓여있었다.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일본의 적반하장의 행태와는 확연히 다르다. 자유분방한 일상의 그들에게 과거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기억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누군가 "베를린은 기억의 도시"라고 말한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이 완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거듭되는 사과와 남아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억하는 것, 이것 조차 내 알 바가 아니라는 이웃나라가 있다.
이런 것을 둘러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엄습하는 긴장감이 있다.
어딘가에 역사 속의 혼령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그들이 살아가는 주변의 이런 흔적들을 보며 굳이 숙연하거나 경건한 모습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희망인 듯하다. 나치 학살자의 사진에 적혀있던 '구원의 비밀은 기억에 있다'는 말처럼.
그 도시를 무심히 걷다 보면 그들의 자유분방한 라이프 스타일이 확 느껴진다. 그 모습 속에 역사를 대하는 그들만의 일상이 있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광장의 혼령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게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이 나처럼 무심히 걸어간다.
훌쩍 나서보니 평소에 잊고 살던 것들을 들춰내 준다.
한 번 더 꼼꼼히 들여다보고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 또 다른 관심을 증폭시키고 호기심을 확장시키는 것, 생각지도 않고 살던 것들이 넌지시 다가와 편식이 심한 내 사고력의 균형을 추슬러 준다. 가끔씩 떠난 천차만별의 여행 중에 이렇듯 한 번씩 생각의 기회가 생긴다. 다행이다. 식상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떠들었지만.
https://youtu.be/jQLSTywaaKo아베 면전에서 日 역사 인식 꾸짖은 독일 총리 메르켈 / YTN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13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