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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n 19. 2022

안경을 닦으며





시력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진다. 눈이 나빠지면서부터 걸핏하면 안경을 수집하듯 보이기만 하면 챙겼다. 누진 다초점, 돋보기는 도대체 몇 개인지, 간단한 휴대용, 선글라스... 누진다초점 안경을 주로 쓰지만 집에서는 불편하다. 글자를 읽기 위한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집안 여기저기 돋보기가 흩어져 있다.


어릴 적부터 쭈욱 정상의 시력을 자랑했다. 그러다 보니 시력이 저하되면서부터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거나 읽어대는 게 습관이다 보니 길을 지나다가도 가까이 다가가서 읽고야 만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사용법이나 구체적인 성분 표시를 금방 못 읽으니 안경을 꺼내야 한다. 나이 먹으면 모든 게 한 박자 늦어진다는 게 단지 건강의 노화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우선 남들은 그냥 쓰윽 읽을 수 있는걸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거의 평생 안경을 쓰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늘 안경을 쓰고 지내는 게 편치 않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사용하는 불편함으로 사는 게 문제다.


여행이나 출사를 나가면 쓰는 선글라스는 시력에 맞춘 것이다 보니 꼭 필요하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쓰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음식점에서도 쓰고 있었다. 누군가가 밥 먹을 때도 선글라스냐? 고 말한다. 에구... 그냥.. 얼른 벗었다. 사실 밥 먹을 때도 선글라스든 뭐든 안경을 써야 반찬도 잘 보이고 좋은데 선글라스 쓴 것을 지적받기도 했다. 아직도 선글라스가 겉멋으로 쓰는 것 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이 나쁘니까 거울을 보면서 내 모습을 꼼꼼히 살피지 않는다. 사실 원래도 그랬다. 지금도 그냥 거울 보고 대충 머리 빗고 마스크 쓰면 끝이다. 내 얼굴의 주름이나 잡티 따위에 관심이 없다. 어쩌다 안경 낀 채 거울을 들여다보면 '오모모... 나 이렇게 늙으셨군' 비로소 안다.ㅎ~.


경우에 따라 남들과 함께 할 때는 나 자신의 겉과 속마음을 꼼꼼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럴 땐 자신을 살피는 신중함도 노안과 노화가 주는 장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를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민폐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미리 갖게 된다. '흥, 그러거나 말거나' 하면서 나 잘난 맛에 살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안경 없이 보게 되는 선명치 않은 것들, 덕분인지 남을 볼 때도 디테일한 문제가 잘 안 보인다. 겉모습이든 행동이든 한 번쯤 뿌옇게 뽀샵을 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 이쁘고 사람들은 대부분 무난하다.

그들은 어째 그리 재능이 뛰어난지, 어디서 저런 용기가 솟는지 부럽곤 한다. 오오... 대단하다. 어쩜 저리도 능력자들인지... 참 잘하는구나. 역시 이쁘다. 이뻐. 멋지기만 한 이들이 너무나 많기도 하다. 걱정에 휩싸인 이들을 보면, 괜찮아, 너무 눈앞의 것에만 몰두하지 마. 멀리 봐. 머잖아 좋아질 거야~.


노안(老眼)이 혜안(慧眼)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어느 만큼 긍정적이긴 하다. 나이나 뚝 떨어진 시력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소소한 것에 덜 연연하는 듯하다. 이젠 밉거나 싫은 게 확연히 적어졌다.  혹시 노안(老眼)이 주는 순기능(?) 일지.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마지막 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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