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으로 들녘으로 나가면
"밀과 보리가 자란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
밀과 보리가 자라는 것은 누구든지 알지요.
농부가 씨를 뿌려 흙으로 덮은 후에
발로 밟고 손뼉 치고 사방을 둘러보네~"
어린아이들 목소리로 뱅그르르 돌고 도는 동요가 요즘 노래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정겹다. 그럼에도 요즘 아이들에게는 가요가 더 많이 불리는 현실이지만 이런 동요 한 자락쯤은 귀에 익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씨를 뿌려 발로 밟고'란 부분에서 '보리밟기'를 떠올리는 아이가 과연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 옛날 '보리밟기'는 한 겨울인 12월에서 1월 즈음에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기록을 찾아보면 씨를 뿌려 땅에 묻힌 보리가 잘 자라지만 겨울 동안 보리밭이 얼어서 부푼 흙을 잘 밟아주어 보리가 웃자라지 않고 뿌리가 잘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밀과 보리가 식생활에서 주요 곡식이던 예전에는 겨울마다 꼭 거쳐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이때는 가족단위로 모두 나와 풍년을 기원하며 행하던 노동형태였던 것이다.
지금도 봄이 되면 들판의 파릇파릇한 보리를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이 무렵부터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를 보릿고개라고 했다. 겨우내 끼니를 이어온 양식이 떨어지고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웠던 때를 말한다. 물론 지금은 보릿고개라는 현실을 이해 못 할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근래에 이 말은 여러 가지를 통해서 회자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건강 보리밥을 비롯해서 새싹보리 등의 웰빙식품으로 보리를 많이 찾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즘 트로트 열풍에 힘입어 '보리고개'라는 노래가 자주 흘러나오고 있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노래 가사를 들으며 이만치 나이 먹고사는 나도 어찌 저리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을까 싶은데 나이도 어린가수가 애절하게 부르며 우리 조상들의 그 옛날을 소환한다.
봄이 한창인 전국의 들녘에 보리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 즈음이다. 고창이나 제주 서귀포의 청보리밭, 벌교와 가파도 등의 보리밭을 찾아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러 또는 구경 삼아 떠난다. 물론 그 옛날만큼의 보리농사는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관상용으로 재배되어 추억을 스토리텔링 하는 풍경이 제공되기도 한다.
해마다 각 지자체에서는 계절에 맞는 볼거리를 위해서 밀밭과 보리밭을 조성한다. 그리하여 봄이면 청보리밭을 가을이면 황금색의 누런 수확의 들녘을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찾아볼 만한 곳이 많이 줄었다.
요즘 며칠 사이로 기온이 높아졌고 실내 생활만으로는 답답하다.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조심해야 하는 나날들이다. 누구라도 할 것 없이 각자 주의사항을 지키며 코로나 난국의 슬기로운 생활을 해야 할 때다.
이럴 때 쾌청한 새벽에 한 번 나서보는 것도 좋다. 인적이 드문 고요함 속에서 새벽 공기의 상쾌한 시간을 누려보는 시간이 된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성 목장의 보리밭이 있다.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어두운 새벽길을 달리면 나타나는 안성목장의 보리밭. 멋진 일출이나 안개 속의 보리밭 풍경이 설레게 한다. 연인들이나 사진 촬영을 위해 온 사람들도 간간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갔을 때는 안개도 일출도 한 점 빛도 그 어느 조건도 시원치 않았다. 밤사이 내린 비로 군데군데 물웅덩이를 조심해야 했다. 다만 초록의 보리밭 언덕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다. 차츰 어둠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진다. 산책하듯 보리밭 사잇길을 지나고 풀잎 사이로 반짝이는 물방울이 구르는 것을 들여다본다. 일상의 복잡한 생각은 드넓은 자연 속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코로나19의 일상을 벗어나고 잡념을 떨쳐버리는 시간이다.
그뿐인가. 우리 사는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밀과 보리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지역에 위치한 한강공원을 따라가다 보면 막 패기 시작한 보리밭이나 밀밭이 나타난다. 선유도 공원 아래쪽으로 양화 한강 공원엘 가면 바람에 일렁이는 밀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원이 있었다. 현재 생활 속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는 때다. 이럴 때 인근의 한적한 공원이나 들녘이라면 비대면 외출지로 좋다. 공기 밀도를 걱정할 일도 없다. 멀리 떠나지 못해도 가까이서 계절을 누릴 수 있다. 양화 한강공원엔 이미 여유롭게 이 계절을 즐기는 시민들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거기엔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 밀밭 속에 들어본다. 도심 속에서 볼 수 있는 전원 풍경이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초여름의 햇살이 제법 뜨겁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시원하게 일렁이는 밀밭이 반짝인다. 푸릇푸릇 한 밀밭 사잇길로 우리의 이웃들이 지나간다. 초록의 생생함이 더없이 좋다.
https://50plus.or.kr/ssc/detail.do?id=8187925
https://50plus.or.kr/ssc/detail.do?id=8761945
https://50plus.or.kr/ssc/detail.do?id=9028507
https://50plus.or.kr/ssc/detail.do?id=9089856
https://50plus.or.kr/ssc/detail.do?id=9854259
https://50plus.or.kr/ssc/detail.do?id=10371182
https://50plus.or.kr/ssc/detail.do?id=10378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