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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n 12. 2020

북적이던 곳, 한가롭게 누리는 청정함

- 덕유산 향적봉의 건강한 자연에 흠뻑 빠져 보기




   

무주라고 하면 무조건 따라붙는 말이 구천동이다. 나제통문에서 덕유산 향적봉까지 36km 사이는 무주구천동의 33(景)을 모두 품고 있는 곳이다. 그 산자락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우리나라의 희귀한 동식물이나 태고의 원시림, 맑은 물과 폭포가 무주구천동을 이루고 있다. 지금 이 모든 것을 감싸 안은 덕유산은 푸르름이 한창이다.    


요즘처럼 답답한 시대에 산과 숲을 먼저 떠올려 보게 된다.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올라 힘들인 후에 맞이하는 뿌듯함을 쾌감이라 말들을 한다. 그 뿌듯함을 위한 고단한 과정이 반갑지 않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덕유산에서는 1500미터가 넘는 드높은 설천봉까지 등산을 하지 않고도 날개를 단 듯 곤돌라가 가뿐히 나를 이동시킨다. 고맙게도.



어둔 새벽길을 달려 도착한 덕유산 곤돌라 매표소는 직원들이 아직 출근 전이다. 조금 서두르니 이렇게 여유롭다. 겨울엔 스키장이었던 드넓은 설원이 이젠 마냥  푸르다. 푸른 잔디 위로 아침 해가 쏟아지는 걸 바라보며 즐겨보는 시간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야외 테이블 파라솔 아래 앉아 그저 느긋하게 앉아 조을고 있는 고양이와 눈 맞추고 놀아본다. 잔디밭에 나가 키 작은 꽃들을 렌즈에 담아보기도 한다. 산 정상에 올라 만끽하는 시간보다 더 여유롭고 행복하다.     


사시사철 핫플레이스였던 곳이었는데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겨울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타기 어려웠던 곤돌라였다. 이젠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 서지 않아도 된다. 탑승장 앞에 서니 빈 채로 운행되는 곤돌라가 연달아 다가온다.    


곤돌라를 타고 내다보니 완연한 초록빛으로 변해가는 덕유산 숲이 발아래 울창하다. 덕유산을 떠올릴 때마다 멋진 계절의 변화와 함께 북적이는 인파였다. 이렇게 한가할 수가 있는지. 유유히 흔들거리면서 숲 사이를 오르는 곤돌라가 15분쯤 지나 가뿐히 설천봉에 내려앉는다. 힘 안 들이고 1520m 산정에 올랐다.   


혼자 힘으로 정상에 오른 양 기분 좋게 둘러보고 향적봉으로 향한다. 현재는 설천봉에서 향적봉 구간 탐방은 6월 말까지 예약제를 시행 중이다. 봄철 번식 및 개화시기 멸종 위기종, 특산종 등의 서식지 보전을 위해서다. 건전한 탐방문화를 위해 기꺼이 서명 등의 협조를 했다.  

 

설천봉 ~ 향적봉 0.6km 구간 탐방로 예약제 시행

봄철 번식 및 개화 시기 멸종위기 특산종 등의 서식지 보전

탐방객 이용 조절을 통한 건전한 탐방문화 정착

5.20일 ~ 6. 26일.

 

놀며 쉬며 사진도 찍으며 올라도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그 길에 철쭉이 봉오리를 맺었거나 분홍빛으로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산 아래와는 생장이 다르다. 데크로드엔 발걸음마다 돌 틈의 바람꽃이 반기고 군데군데 곰취와 당귀, 그리고 괭이눈과 모데미풀이 숲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게 보인다. 고산지역의 청정한 숲 속에서 볼 수 있는 온전한 성장 모습이다. 사람도 그 산에 오래 있으면 사람도 그 산을 닮을까.


이해인 시인의 시 '내 안에서 크는 산'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좋아하면 할수록 / 산은 조금씩 더 / 내 안에서 크고 있다

엄마 / 한번 불러 보고  / 하느님 / 한번 불러 보고

친구의 이름도 더러 부르면서 / 산에 오르는 날이

많아질수록 / 나는 조금씩 / 산을 닮아 가는 것일까?


향적봉이다. 1614m에 서서 사방을 빙 둘러보면 적상산이 보이고 멀리 지리산도 보인다.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산하를 굽어보는 짜릿함, 참 쉬운 호사다.


인증숏을 찍거나 연인들의 연애 놀음의 모습을 뒤로하고 대피소와 중봉을 거쳐 오른 후 돌아오면서 비로소 산이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산을 내려가는 자의 여유로움이다. 무엇보다도 새소리가 어찌나 맑고 청아한지. 마침 요즘이 숲 속 새와 곤충들의 산란기여서 특히 더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내려오며 설천봉 주변의 삐죽삐죽 뻗은 주목나무의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고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이다. 유난히 덕유 산정에서 긴 세월 꿋꿋이 서 있는 모습이 나무의 꼿꼿한 그 마음을 느끼게 한다.


살아 천년 죽어서도 천년 간다는 주목이 지금 몇 년째 서 있는 걸까. 겨울이면 설국의 눈꽃이 얹혀 수정처럼 빛나는 멋진 상고대가 신비롭던 나무다. 또한 덕유산은 한 겨울의 설산과 새해의 일출 또한 명품이다. 그래서 겨울산의 진수로도 알려져 있다.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서너 시간 땀 흘리며 숲길을 오르거나, 손쉽게 곤돌라 승차를 택하기도 하며 산에 올랐다가 다시 그 길을 내려간다. 우리 사는 인생과 뭐 다를 게 있는지. 그 길에 눈과 비가 내리고 햇살을 뿌리거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 날들이 있었다. 요즘은 생활 속 거리를 두고 매사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상이다. 이럴 때 한적한 산정에 올라 청량한 공기 속에서 코로나 블루를 다스려보는 건 어떨지.  


산길을 걷고, 부근의 높은 사찰을 향해 오르며 뚜벅뚜벅 자연 속에 들어갔다. 단련되지 않은 안일한 몸인지라 다녀온 후 온몸이 뻐근할지언정 기분은 뿌듯하고 가뿐하다. 갑갑하기만 한 날들이다.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말하는 ‘혼산’으로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니 훌쩍 나서볼 만하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 1로 159

*곤돌라 탑승 이용요금: 성인 왕복 16,000원, 편도 12000 // 소인 12,000원, 편도 9,000원  


                  




- 주변 명소 & 맛집

*덕유산 주변의 호국사찰 안국사(安國寺)

적상산 능선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아늑한 사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고 전한다. 산 정상에 위치해 있어서 숨차게 오르게 된다. 오가는 이 없는 조용한 사찰 안에 수국과 작약이 피어났고 다람쥐도 쉴 사이 없이 돌아다닌다.  


*맛고을 회관 : 덕유산에서 내려오면 가까운 마을에 버섯전골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능이와 송이, 노루궁뎅이 버섯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다. 육수의 깊은 맛과 갖가지의 산채나물은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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