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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Oct 25. 2020

당진 필경사로 떠나본 가을 이야기

가을에 만나는 심훈의 "상록수"와 "그날이  오면"

                                                                                          


영신은 창문을 말끔히 열어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 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장에 매어 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 바락바락 지르는 그 소리는 글을 외는 것이 아니라 어찌 들으면 누구에게 발악을 하는 것 같다.

-심훈의 '상록수' 본문 중에서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도 너무나 잘 아는 작품, 학창 시절 교과서로 배웠던 소설 <상록수>의 일부분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당시 농촌계몽운동을 소재로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한 것이다. 열성적인 노동운동가 채영신과 박동혁 두 주인공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


< 상록수>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우리들에게 잘 알려졌지만 1935년 당진의 필경사에서 작품이 집필되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심훈은 1901년 서울의 노량진에서 태어났고 당진의 부곡리로 낙향해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다가 1936년 장티푸스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  일제 강점기에 농촌계몽 소설을 쓰고 항일운동을 했던 심훈의 정신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 기준으로 서해안 고속도로 서해대교를 지나 두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곳에 충남 당진의 필경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적하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아서 호젓하게 차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수도권에서 당일 언택트 여행으로 손쉽게 다녀올 수 있는 문학 유적지 필경사(筆耕舍)는 가을볕을 듬뿍 받고 있다.


필경사를 돌아보기 전에 심훈의 면면을 충분히 알고 보는 게 좋을 듯해서 바로 옆의 심훈 기념관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그날이 오면' 시비 옆에 심훈의 동상과 여러 작품들이 조형물로 눈에 바로 들어온다. 길가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  그 시절을 함께 호흡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하루...

코로나 여파로 잠정적 휴관 중이었는데 마침 다시 막 열기 시작해서 열 체크와 손 소독, 그리고 마스크 착용을 하고 기념관에 들어섰다.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와 심훈 기념관으로 들어가면 그의 문학 세계와 그의 일대기를 살필 수 있는 전시가 기다린다. 이곳의 유물들은 심훈의 후손과 관계된 사람들의 기증이나 위탁으로 모은 것으로, 뜻깊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이해하기 쉽도록 시대별 분야별로 분류되어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작가 심훈의 활동 전력이 다방면으로 두드러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당대의 유명한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시인이었고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또한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1931년에는 경성방송국 조선어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그 시절에 방송 중 '황태자 폐하'라는 부분에서 불편한 기분을 참지 못하고 어물거리곤 해서 입사 3개월 만에 해고되었다고 전한다. (*기념관에서는 해설사의 해박하고도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  너른 앞마당에 상록수의 정경을 그려볼 수 있는 조형물들이 가을꽃들과 함께 있다.

결국 낙향을 결심하고 1932년 서울 생활을 청산, 부모가 살고 있는 당진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전통적인 외관의 초가지붕 한옥을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 바로 필경사(筆耕舍)다. 충남 기념물 제107호로 필경사의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집으로 대문이 없는 단독 건물이다. 넓은 들이 앞으로 펼쳐지고 서해바다가 바라다보이도록 자리 잡아서 탁 트인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린다.


▲  심훈 선생이 직접 설계했다는 필경사는 농촌 마을 풍경과 잘 어울리고 한국의 전통적인 외관이 친밀함을 전한다.


당시 건축으로는 드물게 집 안에 화장실과 욕실이 있으며 크지 않은 실내지만 생활에 편리하도록 설계된 내부 구조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마루와 사랑방 창밖으로 베란다 선반처럼 작은 발코니가 붙어 있다. 꽃 화분이나 장식을 할 수 있도록 했던 심훈의 로맨틱하고 섬세한 마음도 엿보이는 듯하다. 필경사(筆耕舍)라는 옥호는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농촌 소설인 <상록수>가 탄생되었다.


지금은 들어가 보지는 못하지만 필경사 내부의 벽에 걸린 사진틀에는 여러 장의 가족사진과 함께 한 노인의 사진이 들어있다고 한다. 심훈 선생이 글을 쓰면 그 원고를 들고 십 리도 넘는 먼 길을 걸어 나가 우체국에 들러 원고를 부쳐주는 일을 했던 이웃 지인실 할아버지의 사진이다. 그 시절의 어려운 현실과 함께 또 다른 의미를 전하는 사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집 앞으로 넓은 들이 펼쳐지고 서해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필경사에 쏟아지는 가을볕이 눈부시다.

기념관 옆으로 따사롭게 가을볕이 쏟아지고 있는 필경사, 이곳에서 되살아난 심훈의 문학적 활동으로 <상록수>를 비롯해서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의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앞마당에는 소설 <상록수>를 떠올리게 하는 몇 개의 조형물들이 자연 속에 있다.


필경사와 심훈 기념관을 돌아 나오면 뒤편으로 개방되지는 않았지만 심훈 가문의 후손이 살고 있는 심재영 고택이 있다. 이 마을 일대와 주변의 포구가 <상록수>의 배경이 되었으니 지나는 길에 들러볼 만하다.


초가집 뒤편으로는 그가 심었다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서 가끔씩 바람 소리를 내며 일렁인다. 나지막한 뒷산이 차분히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대숲 쪽으로 걸어가니 잔디를 관리하시던 분이 '숲에 들면 요즘도 가끔씩 뱀이 나오니 조심하라'라고 해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기어 다니는 뱀 이야기에 어쩐지 그 시절의 뒷산이 더욱 연상되는 건 뭘까. 


이곳 당진시에서는 1977년부터 매년 심훈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도 9월 17일 이곳 필경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개최되어 작가의 예술혼과 <상록수> 정신을 계승하고 나라사랑과 항일정신을 기리는 일이 지속되고 있음을 전했다.



▲  돌에 새겨진 '그 날이 오면'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읽어본다.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중략 )...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암울했던 빈곤 속의 농촌 활동을 통해서 민중을 깨우치며 희망을 찾는 노력을 했던 사람, <상록수>의 산실 필경사 마당은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하기만 하다.


살아서 그 희망이 실현되지 못했으나 묵직한 돌로 듬직하게 얹힌 시비에 쓰인 시를 읽어보면서 그 실현의 의미를 인식해 볼 수 있다.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뜨거운 피를 가진 예술가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당대의 지식인 심훈의 자취를 따라 그 시절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고즈넉한 당진의 산하에 가을볕이 쏟아지고 있다. 


*필경사: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 길 97(부곡리 251-12) / 041-360-688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85110&CMPT_CD=SEARCH


https://50plus.or.kr/ssc/detail.do?id=9735581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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