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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r 10. 2021

감성 충전, 수분 충전, 삼척 바닷가 마을 이야기

'정라항그리go작은 미술관'

         





예고도 없이 찾아든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멈춘 듯 움츠러들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다. 여전히 여행은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갑갑한 일상에 갇혀있는 자신을 가끔씩은 끄집어 내주어야 할 때가 아닌지.         

물결이 비단처럼 고운 바닷가.

삼척을 대표하는 항구 정라진(汀羅津)은 말 그대로 비단처럼 잔잔하다. 그 수면 위로 반영된 바닷가 마을이 고요하다. 한때는 동해의 최대 항구이기도 했던 삼척항이었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소박한 어촌 마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강원도 지도에서 가장 아래 녘에 위치한 삼척, 한때는 동해를 대표하는 무역항 중의 하나였다. 최고의 호황기였던 1970~1980년대, 수많은 어선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노가리와 대구, 정어리, 오징어가 풍년이었다. 그 무렵의 삼척항은 몰려든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는 밤새 잡아온 오징어 손질에 바빴고 햇볕 좋은 나릿골 마을은 온통 오징어 건조장이었다.   

  

그뿐 아니라 태백 산지의 지하자원으로 시멘트 공장과,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까지 들어서서 돈이 넘쳐나던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시멘트 공장은 남아있지만 옛 영화가 사라진 소박한 풍경이다. 그리고 향수 어린 친근한 이름 정라항(汀羅港)은 여전히 어민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정라항은 삼척시에서 2Km 정도의 거리에 있다. 마을과 가까이 맞닿아 있어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비릿한 갯내음과 함께 곰치국이나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거리에 들어서니 조용하다. 가끔씩 통통배의 시동 거는 소리, 어선의 깃발이 바람에 살랑대는 모습이 보일뿐이다. 머잖아 활기찬 항구의 소란함을 고대한다.   


조용한 항구를 뒤로 하고 입구의 말랑이 슈퍼를 지나 나릿골 마을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 한적하다. 그 길로 좁다랗게 비탈진 골목이 미로처럼 쭉 이어진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눈비가 내릴 때는 어떻게 다녔을까 걱정될 정도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나릿골은 예전엔 층층이 골은 낮지만 물이 풍부해서 습기를 받은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나리골에서 볼 수 없는 꽃이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리꽃처럼 정감 어린 감성마을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지나가는 담벼락엔 듬성듬성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심심치 않다. 몇 년 전부터 정라항 주변 마을인 나릿골을 '오감이 피어나고 웃음이 번지며 걷고 싶은' 감성마을 조성에 힘쓴 결과 언덕마을에 표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동해안 여행자들의 한 달 살기 등과 연계하기 위한 빈집 6동을 사들여 게스트 하우스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그 골목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숨차게 오르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   


 

'정라항 그리go 작은 미술관' 

나릿골 마을의 작은 집 4개 동을 삼척시로부터 지원받아 교육관 1동, 전시관 및 체험관 2동, 외부 작가가 거주할 작가의 집 1동을 리모델링하여 마련한 미술관이 언덕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유휴시설을 활용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문화 공간이다.      


나릿골의 좁다란 골목길 걷기 여행의 맛도 있지만 미술관을 편히 가려면 산등성이까지는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차량통행이 어려울 만큼 비좁았던 길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조금 넓어졌다. 걷기가 용이하지 않을 경우엔 택시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으니 누구라도 가파른 그 언덕 끝까지 오를 수 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오르는 길에는 잘 가꾸어진 작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시설들이 소소하게 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 보니 작은 공원이 있을 뿐 주변 공터는 한산하고 깔끔하다. 요즘 많이 알려진 벽화마을처럼 이쁘거나 요란한 카페, 또는 포토존과 같은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원하건대 더 이상 부대시설을 늘리지 말고 지금의 단순함을 유지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하늘과 바다와 바람 속에서 머릿속이 청량해진다. 저 멀리로 정라항의 잔잔한 물결이 충분히 비단처럼 살랑거린다. 


소박한 도시 삼척과 시멘트 공장을 감싸 안은 봉황산의 능선이 부드럽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처럼 보인다. 산언덕 드문드문 알록달록한 색감의 지붕들 사이로 그들의 애잔한 삶이 엿보이고 텃밭에는 보송보송 파꽃이 피어났다.     

  


미술관은 조붓한 골목길을 따라 다시 몇 걸음 더 내려가야 한다. 길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뉘 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올망졸망함이 문득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바닷길 건너 산동네, 군데군데 빈집들이 보인다. 마실을 간 것일까. 나릿골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났을까.        



바다마을 사람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정라항 그리go 작은 미술관'.

나릿골의 감성과 바닷가 마을이 만들어낸 멋진 소통의 공간. 제1 전시관과 2전시관은 하얀 담장을 두고 각기 몇 걸음 정도 떨어져 있지만 앞 면이 모두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어서 바다와 마주한다. 


그리고 전시 작가가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 작가의 집이 전시장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신선한 물빛 감성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다. 어둠이 내리면 더 멋질 것 같은 곳.     


      

바이러스를 피해 더 이상 방구석 랜선이니 하는 것만으로는 미쳐버릴 듯 지쳐가는 겨울이었다. 정라진 항구 마을의 정취 속에서 향수 어린 시절을 향한 맹렬한 그리움에 잠깐 젖어보는 것도 괜찮다. 해풍에 오징어가 마르고 있는 자연 속의 건강함으로 수분을 채우고 위로를 받는 하루, 기꺼이 만들어 볼 일이다. 바닷길과 감성마을 골목을 천천히 오르고 작은 미술관에 들어 버석하던 일상에 감성을 채우고 에너지를 얻는다.      


어디쯤엔가 와 있을 봄, 첨단의 휴대폰이나 TV, 잠시도 쉴 새 없이 인터넷 세상을 뒤적이는 시간에서 벗어나 하루쯤 호젓한 바닷가 산등성이에 올라 비단물결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하루, 더할 나위 없다.     


                          


    



주변 볼거리    

여행 중에 잠시 휴식을 주는 곳죽서루

동해가 아우르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는 죽서루. 

시간 여행하듯 삼척 읍성 성곽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난다. 누각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삼척시의 서편으로 오십천(五十川)이 절벽 아래로 흐른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竹西樓)는 삼척 시내에 있어서 삼척 주변을 여행 중이라면 잠시 들러 쉬어가기 딱 좋다.          


죽서루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이기도 하다. "진주관 죽서루 아래 오십천의 흘러내리는 물에 비친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 차라리 그 물줄기를 임금 계신 한강으로 돌려 서울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여정 중에 누각에 올라 바스락 소리 내는 대숲을 바라보며 시인 묵객처럼 쉬어봄 직도~  

            



평온한 마음의 휴식성내동 성당

삼척의 성내동 성당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천주교 발전사에 의미가 있는 곳이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을 살필 수 있고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진 야고보 신부님의 순교기념비와 기념 건물을 볼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피살된 진 야고보 신부의 족적을 되짚어보는 것은 의미 있다.     

    

성전을 한 바퀴 돌면서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가져보면서 성당 둘레의 풍경에 잠겨보는 것도 특별하다. 성당이 삼척시의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서 시내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시원하다. 특히 예수님이 온 시내를 품을 듯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이국적인 풍경이 인상적이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도경리역

삼척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도경리역이 있다.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그곳을 향해서 가는 길은 꼬불꼬불 산길을 달린다. 예전엔 아주 깊은 산골이었을 듯싶다. 삼척과 동해시의 경계에 위치했는데 두 도시는 이웃마을처럼 아주 가깝다.      


1939년에 지어진 도경리역은 현재 영동선에 남아있는 가장 오랜 역사(驛舍)로 근대문화유산 298호다. 일제 강점기에 자원수탈의 도구로 만들었던 역사나 터널들이 있는데 이 역도 그중의 하나다.   

      

숲 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도경리 역이 정갈하다. 현재는 열차가 서지 않아 폐역이 되었고 역무실도 잠겨있다. 역 안으로 들어가면 가끔씩 코레일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는 있다.     

 

폐역 앞에 서면 어쩐지 오래전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온 듯 절로 추억 소환이 된다. 기차 시간에 맞추어 책가방 움켜쥐고 죽기 살기로 뛰어가서 올라타는 남학생의 모습이 영화 장면처럼 떠오르고,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하는 노래도 떠올리는 신파스러움도 뭐 그리 나쁘지 않다. 아무도 없는 강원도 폐역에서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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