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가다 만난 나무처럼, 맑은 고을 청주(淸州)

-예술과 위로가 깃든 호젓한 아트투어

by 리즈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다. 막연하게 이 시절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기에는 투명한 햇빛이 너무 눈부시다. 팍팍한 일상에 느낌이 있는 시간이 언제였나. 마음을 채우고 자신을 살펴주는 일을 잠깐 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지도상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교육의 도시로 알려진 청주,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서든 교통과 지리적 접근성이 좋아서 하루쯤 후딱 달려가 볼 수 있는 예쁘고 단아한 도시, 무심한 듯 알찬 쉼과 여유로움이 가능하다.

도시지만 시끌벅적하지 않아서 좋다. 한가한 한낮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귀하게 시간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 이렇게 네 곳에 있다. 한때 연초제조창이었던 넓은 부지를 2018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으로 오픈했다. 예전의 담배공장이 그 모습을 뒤로하고 이렇게나 멋진 발상의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다니 놀라울 수밖에.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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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을 보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물론 주말엔 현장에서 수시 입장도 가능하지만 인원 제한이 있다. 그렇지만 여기선 기다리는 시간도 멋질 수가 있다. 모던한 미술관 앞의 넓은 잔디 광장을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바람과 햇살의 평온함을 즐기는 것이 이곳에서는 특별하다.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미술관은 재미있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옆으로 이어진 건물에 핫한 초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있어서 잔디광장을 내다보며 느긋하게 맛있는 시간도 가져볼 수 있다.



-소통하는 수장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5층 기획전시실, 4층 특별 수장고 (미술은행 소장품), 3층 개방 수장고 및 라키비움, 보존처리실 2층 보이는 수장고 및 관람객 쉼터, 1층 로비 및 수장고, 프로젝트 영상, 아트존으로 미술관이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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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술관의 소장품을 보관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수장고, 그곳에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하여 '개방'과 '소통'을 위한 '열린' 미술관을 지향한다고 되어 있다. 덕분에 백남준, 이중섭, 배병우, 김세중, 니키 드 생팔 등 뛰어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엄청난 예술 작품들의 위용에 압도되어 처음에는 마구 흥분된다. 미술관을 충분히 둘러보고 나면 상상력을 자극받고 알 수 없는 위로와 풍성함으로 뿌듯해진다. 평일 한낮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도시 속에 이렇게 품격 있는 미술관을 품고 있는 청주 시민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입장료가 무려 무료다)




미술관 바로 옆쪽으로 나가면 1960~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옛 청주 연초제조창의 담뱃잎 보관창고였던 7개 동이 시민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된 동부창고다.

그 시절 청주와 그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져온 청주의 대표적 산업체였다. 이제는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높은 건물로 시민들에게 열려있는 문화공간이다. 그 뒤편의 미로처럼 경사진 골목으로 올라가면 드라마 촬영지로 SNS 명소로 이미 유명세를 치렀던 청주의 마지막 달동네였던 벽화마을 수암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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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함께 한 역사, 무심천과 상당산성

청주를 감싸고 있는 상당산성으로 가는 길에 도심을 동서로 구분하는 예쁜 물길 무심천에서 문득 브레이크를 밟는다. '마음을 비운다'는 뜻의 무심천은 봄이면 벚꽃이 눈부시고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휴식처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곳 출신인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속에서 청주 무심천을 건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청주를 품고 있는 상당산성 앞에 서면 길게 이어지는 성벽과 함께 계절의 푸르름에 가슴이 뻥 뚫린다. 백제시대 방어시설로 처음 축성되어 조선 시대에 다시 개축된 상당산성은 12.6ha의 면적, 4,400m의 둘레, 4.7m의 높이, 사적 제212호다.


산성마다 나름의 역사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이 길은 과거 영호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역시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자연스러웠던 풍경이다. 그 견고한 성벽길을 걸어보자. 완만한 4km 순환형 둘레길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도 더할 나위 없다. 이 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풍경들이 청주를 알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분명 도심 속의 산길인데도 확실히 도심을 벗어났다는 기분이 든다. 걷기에 따라 1~2시간 정도의 길이다. 지난 4월엔 이달의 추천길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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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으로, 운보의 집

이제 나들이하듯 가까운 근교로 잠깐 나가 본다. 청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운보의 집'이 있다. 동양화가 운보 김기창 화백은 어릴 적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했지만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화가로서의 역량을 나타냈다. 특히 아내 박래현 화가와의 러브스토리는 전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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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구 내수읍에 위치한 운보의 집은 김기창 화백 어머님의 고향이다. 마음의 고향 같은 이곳에 정착하여 노후를 보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했던 곳이다. 전통 한옥으로 안채와 행랑채,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에 정자와 돌담이 운치 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미국 대사관 건물이었던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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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아내 우향 박래현 화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 운보미술관은 규모가 제법 크다. 미술관을 둘러싼 야외 정원의 조각 작품이나 수석은 자연 속에서 품격을 더한다. 멋스러운 문화예술공간이다.

부부인 듯 점잖은 커플이 뒷짐 지고 작품 속으로 몰두하는 모습을 본다. 두 분의 뒷모습이 여유롭고 아름답다. 그들을 앞지르기 조심스러워 그림 앞에서 한참씩 걸음을 멈추곤 했다. 비로소 주변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작품 앞에서 따뜻한 위로를 선물 받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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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의 옛 청주역에서 오래된 도시 청주를 보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청주에 청주역이 있었다. 청주 시청 부근의 옛 청주역이 '옛 청주역사공원'으로 복원된 것이다. 도심 속의 일반적인 공원이 아닌 철도공원이다. 기차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설렘이 생긴다. 교육도시 청주답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기차역으로 달려오는 풍경이 와락 연상된다.


아담한 역사(驛舍)가 마치 자그마한 옛날 국민학교를 연상케 한다. 민트 색감의 창틀이 옛 느낌을 더한다. 주변 풍경들마저 옛 건물들로 즐비하다. 문이 닫힌 시간에 들렀기에 청주의 역사와 과거의 모습이 전시된 내부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옛 청주역의 바깥 풍경만으로도 시간여행을 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듯한 역 광장에 서니 추억의 흑백 필름이 휙휙 지나간다. 어쩐지 가슴 뭉클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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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의 전시, JIKJI 고인쇄 박물관

문화도시 청주다. 예향(藝鄕)이라 할 만큼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많다. 또한 20년 넘도록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숲으로 둘러싸인 고인쇄박물관을 빠뜨릴 수 없다. 1377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간행한 고장이다.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8년이나 앞섰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기억해야 할 긍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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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 발상지인 청주, 고인쇄박물관 → 흥덕사지 → 금속활자 전수교육관을 순서대로 돌아보면 된다. 본관의 1,2,3관과 쉼터, 홍보영상실. 귀중한 소장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위대한 역사의 순간을 느껴보게 된다. 금속활자부터 목활자까지의 변천사와 직지심체요절이 지니는 깊은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약 6백여 년 전 고려 공민왕 시절에 세워진 직지의 요람인 흥덕사, 인쇄문화의 이해를 높이는 금속활자 전수교육관이 함께 있어서 차례대로 둘러보며 직지의 위상을 비로소 알게 되는 시간은 소중하다.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 많은 청주다. 미호천변의 성곽 정북동 토성은 요즘 일몰 시 멋진 실루엣 컷을 위해 사진가들이 찾아든다. 템플스테이와 석가모니 진신사리로 유명한 사찰 용화사,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 휴가지이자 대청호반의 산책로 청남대, 로하스 해피로드 대청호 오백리길,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 오창 호수공원,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마무리와 안질 치료를 위해 머물렀다는 초정행궁(椒井行宮), 청주 역사의 산 증인 성안길과 중앙공원, 청주만의 맛집 삼겹살거리, 사람 냄새 물씬한 전통시장인 육거리 시장, 점점 핫해지는 감성 가득 운리단길... 곳곳이 갬성 넘치는 핫스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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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두리번거리면 보물 찾기처럼 다가갈 곳이 나타났다. 시종일관 흥미롭고 은근히 끌렸다. 마음도 말랑해지고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기댈 곳 없어 혼자 우두커니 서성일 때 어쩌다 하루쯤 떠났다가 결핍을 채우고 흐뭇하게 돌아올 수 있다. 이곳 청주 출신 도종환 시인이 그의 시 '동행'에서 말했듯 '먼 길 가다 만난 나무처럼 / 지친 몸 기대게 해 줄 푸른 그늘 있다면' 그럴 때 떠올려 보는 곳, 맑은 고을 청주.





-5월에 다녀온 사진임.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1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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