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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Nov 22. 2022

은근함의 깊이 깃든 인문학 여행지 청주

-공감 가득한 생명문화도시 청주


          




그곳에 가면 무수한 이야기들이 녹아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도시의 거리와 골목과 이야기가 켜켜이 스며있는 담장과 오래된 창고 벽면의 낙서가 그리움을 자극한다. 세상은 빠르게 흐르는데도 그곳에 들면 어수선했던 마음이 마법처럼 차분해진다. 요란하지 않고 살갑게 다가온다.        

- 소로리 볍씨와 생명문화도시


생명문화도시 청주라고 말한다. 지역마다 일컫는 상징적 수식어가 있듯 이곳은 명칭마다 생명이 함께하는 걸 본다. 청주시 청정자연의 푸르름을 뜻하는 '생이'와 미래창조의 빛을 머금고 있는 '명이'가 결합된 캐릭터로 생명과 창조의 도시 청주를 상징한다. 이렇듯 청주에서 생명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공원도 생명누리공원이고 정자는 생명정이다. 생명과학단지는 바이오산업 전문으로 첨단의료 복합단지다. 가을이면 청원생명축제가 열린다. 생명과 연결된 것 중에 당연히 먹는 것이 빠질 수 없다. 청원 생명쌀은 전국 최초로 15년 연속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인정을 받은 고품질의 쌀이다. 이제는 대한항공 기내식 밥으로도 공급되어 전 세계인이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최근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밥은 한국인의 일상에 아주 밀접하다. 인사나 만남 등의 경우에도 꼭 밥이 등장한다. 밥은 먹었니, 밥 한 번 먹자... 이런 밥. 밥 이전 벼농사의 기원이 중국이 아닌 한국일 거라는 관련 사실이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된 것이다. 2003년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국제적 검증 끝에 거의 1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고 고고학자 콜린 렌프류도 쌀의 기원을 한국으로 수정했다고 전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충북 옥산의 소로리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 농경문화 중심지로 떠올랐다. 국토 중심지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충북 청주는 생명문화의 고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부근의 오창읍엔  쌀의 일생과 역사를 알려주는 단아한 한옥의 벼 전시체험관과 미래지 농촌테마공원이 있다. 이곳에서 소로리의 유적인 볍씨가 소개되어 눈여겨 볼만하다. 옛날 옛적 벼농사를 지었던 우리 땅에서 출토된 소로리 볍씨 59알을 통해서 한반도 고대국가의 형성을 이해할 수 있다니,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알고 먹는다면 밥맛이 다를 터.     


무엇보다도 올 초에 세상을 떠나신 이 시대의 문화 지성이라 일컫는 이어령 교수는 청주를 사랑하고 응원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로리 볍씨가 출토된 것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와 함께 청주가 세계적인 생명문화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더불어 친환경 두꺼비 생태공원과 가로수길, 초정 약수 등의 문화원형을 분석하며 가치 발굴에 관심을 보였다. 또한 청주의 한 무덤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젓가락이 출토되었는데, 쌀과 젓가락은 생명문화의 원형이라 하며 지구촌 유일의 생명문화도시 청주에서 젓가락 페스티벌을 열도록 제안했다는 것이다. 청주를 향한 깊은 애정으로 청주 명예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간 김에 오창 호수공원도 한 바퀴 쓰윽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예전에는 청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씩 가야 했던 오창이었다. 이젠 길이 달라졌고 교통수단도 좋아져서 드라이브 삼아 자동차로 20분 정도 휘익 달리면 된다. 핫한 카페나 맛집은 물론, 자연친화적 생태놀이터와 등산로가 건강한 시간을 제공한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하루를 누릴만한 문화휴식공원이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호수가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저수지 준설공사로 인해 모두 물을 뺀 상태였지만 물을 가득 채워 호수에서 뿜어내는 분수가 솟아오르면 가슴 후련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옛날 문전옥답에 물 대주던 방죽이 지금은 멋진 호수가 되어 현대인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휴식처로 변모한 오창호수공원이다.              



-세종대왕이 가끔 쉬던 곳에 나도 간다. 초정행궁


이제 또 한 군데 들러본다면 초정행궁이 있다. 청주나 오창에서 약 20분 정도의 거리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 끝에 늘 초정 약수의 눈병 치료가 따라 나오곤 한다. 바로 그곳 초정이다. 과거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행차하여 머물며 한글 창제를 마무리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초해서 조성되었다. 옛 임금의 행궁이나 이전 대통령들의 전용 휴양지인 청남대를 청주로 택했던 걸 보면 사색과 휴식의 환경에 적당한 도시였구나 싶다.



초정 행궁마을은 도심에서 뚝 떨어져서 아늑하다. 조선시대 옛 거리를 걷듯 그냥 한옥마을을 느릿하게 거닐다가 투호를 던지거나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에 참여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독서관에서 책을 읽다 전통찻집에서 보약처럼 진한 대추차 한 잔으로도 좋은 시간이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물론 초정리에 갔으니 세계 3대 광천수로 탄산과 칼슘,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했다는 초정약수를 느껴볼 일. 한동안 코로나의 여파로 중단되었던 초정원탕 행각에서는 야외족욕체험장이 개방 운영되고 있다. 땅속 깊은 화강암층에서 퐁퐁 솟아나는 광천수로 이색 체험까지 알차게 챙겨보자. 한옥스테이는 예약 필수다.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조용한 공감


청주는 그동안 진입로의 가로수길이나 도심을 둘러싼 상당산성과 중심부를 흐르는 무심천으로 이야기를 시작을 하는 걸 본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육거리 전통시장은 더 말할 게 없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일 듯하면서도 빠뜨리면 섭섭할 중앙공원도 청주의 역사 속에서 중심 잡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청주 중앙공원이 이제는 탑골 공원이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괜히 중앙공원(中央公園)이 아니다. 전국 각 지역마다 하나씩 있음 직한 중앙공원은 그 지역을 대표한다. 이름 그대로 센트럴파크다. 한쪽 코너에는 시민극장이 있었다. 청주 극단인들의 연극도 올리던 곳이었다. 유형문화재인 목조 2층의 누각과 구석구석 유적들은 제각각 옛이야기들을 품었다. 무엇보다도 천년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전설을 지닌 채 계절마다 압도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중앙공원 골목으로 지금은 쫄쫄 호떡이 유명하지만 그 이전엔 할머니의 빈대떡이 유명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옆으로 50년이 훌쩍 넘은 공원당 우동은 특히 청주를 떠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소다. 오래간만에 찾은 고향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약속 장소로 지정되기 좋은 곳,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공원당에서 만나자'라고 할 수 있는 점포다. 도시가 사람을 품어주는 맛이 있고 따뜻하다. 이젠 어딜 가나 나타나는 거대한 관광 콘텐츠, 덕후들의 핫플이나 힙하다는 맛집 풍경의 인증샷은 지겹다. 어느 여행지를 말할 때 노잼이나 핵잼 타령으로 섣부르게 구분 짓는 이들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그 골목을 나와 바로 보이는 용두사지 철당간, 시내 중심에 우뚝 서있지만 늘 그 자리에 있으니 다들 무심한 듯 지나간다. 고려시대의 귀중한 문화 유적이라 하며 여행자들이 찾아와 올려다보곤 한다. 바로 앞으로는 청주극장과 현대극장이 기역자로 거의 붙어 있었다. 학생들의 단체 영화 보기가 있는 날은 그 앞이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바글거렸다. 지금은 영플라자 뭐 그런 것들이 새 옷을 입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성안길이 된 본정통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핫한 거리다. 입구부터 시네마 거리다. 청주가 의외로 영화관이 많았고 유명 연예인이나 문화예술인을 다수 배출했다는 사실, 또한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들이 촬영된 곳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이 가깝고 역사와 현재가 공히 고루 존재하는 특이한 장소가 꽤 있다는 것. 제빵왕 김탁구의 수암골은 이미 성지가 된 지 오래고, 태양의 후예, 덕혜옹주, 은교, 베테랑, 국가대표, 프리즌...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청주를 떠나기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건 뭔지. 갈 때마다 들르지만 이번엔 시간이 늦었다. 그렇지만 미술관 앞마당에서 서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릿하다. 오래전 담배공장이었던 곳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 근대문화유산 동부창고,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눈앞에서 조금씩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미술관 광장에서 바라보는 코끝 찡한 저녁노을, 운이 좋았다. (지난 8월 원고임)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13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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