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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an 27. 2023

생명력 넘치는 제주 동쪽의 겨울 이야기

-제주의 동쪽으로 간 까닭은









모든 계절을 아우르는 곳으로 제주를 따를 만한 곳이 있을까 싶다. 거긴 도대체 비수기가 없다. 흔히들 겨울을 비수기로 꼽지만 제주는 그럴 리가 없다. 이 땅에 제주 섬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바다 건너편에 뚝 떨어져서 오가는 수고와 경비가 든다고는 하나 그래서 더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쉽게 오갈 수 있는 것보다는 평소에 '거기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가 설렘을 지닌 채 날아갈 수 있는 제주여서 더 좋다.   


제주는 한번 가면 욕심껏 많이 돌아보고 싶어지는 곳이다. 볼거리도 많고 천천히 쉼을 누리거나 단 한 군데서 오래 머물고 싶기도 한 제주다. 그래서 알차게 돌아볼 생각이면 꼼꼼한 계획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제주는 동쪽과 서쪽으로 구분해서 여행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편리하다. 이번에는 제주 동쪽의 겨울여행으로 몇 군데를 소개해 본다. 




-바닷바람 상쾌하게 함덕 해변부터~ 

비행기 타고 훌쩍 날아왔으니 가장 먼저 제주의 푸른 바다 앞에서 가슴속까지 시원한 바람을 먼저 만나고 싶다. 제주 공항에서 약 20km 정도 거리인 함덕 해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떠나왔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국적인 바다 물빛 때문이다. 


보석을 품고 있는 듯한 에메랄드빛 바다는 마치 남태평양이나 동남아 어드메쯤을 잠깐 상상해 보게 한다. 이것만으로도 제주에 왔구나 싶다. 피서객으로 붐비던 여름철이 아니어도 겨울바다를 거니는 여행자들을 제법 볼 수 있다. 겨울이라 하지만 제주의 바람결은 부드럽고 햇살은 온화하다. 산책로를 따라 걷거나 바로 이어지는 서우봉에 올라 멀리 마주 보이는 한라산과 오름들을 바라보는 전망 포인트도 매력적이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제주의 아픔, 4·3 평화공원

제주가 더없이 아름다운 여행지임에도 아픔의 땅이란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래서 신나는 액티비티나 계절별 피어나는 꽃과 오름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크 투어의 지점으로 꼽기도 한다. 제주 근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4·3 사건, 기록에 따르면 1947년 3월 1일 벌어진 집회를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곳을 맨 나중에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먼저 앞세우기로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4·3 사건 기록의 초반 부분을 옮겨보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3·1 사건에 항의하여 1947년 3월 10일부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민·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됐다. 제주도민의 민·관 총파업에 미국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했다. 본토에서 응원경찰이 대거 파견됐고, 극우 청년 단체인 서북청년회(서청) 단원들이 속속 제주에 들어와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 등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빨갱이 사냥’을 한다는 구실로 테러를 일삼아 민심을 자극했고, 이는 4·3 사건 발발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당시 4·3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곳, 4·3 평화공원 안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비롯해서 위령제단, 위령탑, 봉안관이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참배를 한다. 공원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당시의 비극적 참상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분들의 처절한 삶을 위로하고 기리도록 공원의 외부와 내부 모두 공들여 마련된 느낌을 준다. 잔혹했던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평화 공원은 드넓고 한적하다. 공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부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엄숙해진다. 위령탑을 중심으로 각명비에 새겨진 이름과 성별, 당시 연령 하나하나 읽기도 마음이 무겁다. 연령 1세, 이런 위패 앞에서 마음이 부르르 떨렸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올라간 너른 위령 광장이 마음을 토닥여 주는 듯하다. 


광장 입구의 반원형 부채꼴 대형 제단으로 이루어진 위령 제단을 지나 열린 문으로 위패봉안실이 보인다. 희생자 1만 4,533명 중 1만 4,412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공간이다. 



공원 입구 왼편으로 자리 잡은 제주 4·3 평화기념관, 건물 모습은 4·3 역사를 담은 그릇의 형태를 차용했다고 한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4·3 사건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총 6개의 특별 전시관이다. 특이한 점은 예술가들의 참여가 많아서 역사적 서술만이 아닌 경직되지 않은 마음으로 당시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다큐와 예술의 전달 방식이 희생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관람자들에게는 따뜻한 이해를 돕는다.  


4·3 평화공원은 잠깐씩 들렀다가 지나가는 여행지는 아니다. 일단 넓이나 규모도 만만치 않다. 시간을 여유롭게 잡고 들르는 게 좋다. 쭈욱 돌아보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는 물론이고 우리의 현재를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마음에 그냥 후딱 훑어볼 수 없는 곳이다.


 

-제주의 고요한 겨울 풍경, 1100 고지 

이젠 온통 새하얀 세상, 제주에도 눈이 내렸다. 겨울의 찐제주를 만끽할 수 있는 곳, 1100 고지는 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 이용을 할 겸 잠깐 들러보아도 좋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나무 데크를 걸으며 제주의 자연과 1100 고지의 겨울을 즐길 만한 풍경이 나타난다. 


한라산을 못 오르면 그나마 이렇게 고도가 높은 1100 고지에 가도 좋다. 휴게소 위편에서 내려다보니 건너편으로 넓은 들판과 한라산이 시린 겨울 속에 고요하다. 입구의 사슴 동상과 산악인 고상돈 동상 또한 겨울 산을 실감시키기도 한다. 눈이 잔뜩 쌓였을 때는 신비로운 겨울 왕국을 느낄 만한 곳이 제주의 1100 고지이다.  




-신성함이 뿜뿜 사려니 숲

제주 1112번 지방도를 달리다 보면 하늘로 쑥쑥 솟아오른 나무들로 빽빽하게 숲을 이룬 길을 만나게 된다. 훼손되지 않은 청정 숲인 사려니 숲은 지난 200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 보전지역(Biosphere Resev)이기도 하다. 


본래는 트레킹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요즘은 갈 때마다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들이 숲 속에서 간간이 보인다. 짙푸른 나무숲에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선녀가 나타나는 듯하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비밀의 숲처럼 신비롭기만 하다. 숲길을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져 내리는 빛내림으로 눈부시다. 사려니 숲길에는 물찻오름과 붉은오름 노선이 있는데 약 세 시간 이상 소요된다. 단순 탐방은 두 시간 이내로 가능하다.   


-제주의 겨울을 알리는 짙붉은 동백 

제주의 겨울은 동백꽃이 한몫한다. 남원의 위미리는 제주의 동백 명소다. 위미리 동백군락지는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된 곳으로 우리 고유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받아다 이곳에서 키운 토종 동백으로 사유지이다. 동백 수목원의 사탕 모양으로 잘 가꾸어진 동그란 꽃나무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수형의 동백나무다.


처음엔 제주의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조성했는데 이제는 우리의 고유종으로 가치를 보여준다. 근처의 동백수목원, 동백포레스트, 동박랑까지 12월에서 1월까지 피고 지고를 거듭하는 붉은 동백에 취해볼 만한 제주의 겨울이다. 동백꽃 숲에 들어 꽃 속에 파묻혀도 보고 레드 카펫인 양 발아래 떨어진 동백도 즐기는 계절이기도 하다.  



화산섬 제주의 모습을 간직한 동백 숲을 보고자 한다면 원시의 숲을 연상케 하는 선흘리의 곶자왈 동백동산에 가자.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물이라는 뜻의 ‘먼물’과 끄트머리를 이르는 제주어 ‘깍’이 합쳐진 이름의 먼물깍은 동백동산의 대표적인 습지다. 4·3 시절에 주민들이 숨어 지내던 은신처가 되어주기도 했던 숲이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동백동산은 10여만 그루의 동백나무와 난대선 수종들이 함께 숲을 이룬다. 자연 생태보전의 오래된 숲은 붉은 동백꽃을 많이 매달고 있지는 않지만 겸손한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의 깊이를 보여주는 곳이다.  




-바다 전망 군산오름

군산오름은 제주의 동쪽에서 이어지는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제주 여행 중이라면 한 번쯤 오름에 올라볼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을 많이 내야 하거나 오래 걷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라면 군산 오름이 딱 좋다. 자동차로 오름 중턱까지 갈 수 있는데 주차장은 협소하다. 특히 좁은 언덕길과 후진 등의 난이도가 높은 길이어서 운전이 능숙한 사람이면 좋을 듯하다. 차에서 내려 10여 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하고 다시 오름 끝까지는 완만한 편이다. 올레길 9코스이기도 하다.  


군산오름에 오르면 눈앞의 바다에 송악산과 형제섬이 내려다 보인다. 오름 계단 중간에 일제 수탈의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는 진지동굴도 만난다. 오름 끝까지 오르면 아찔할 정도로 제주의 자연이 탁 트인 사방으로 보인다. 탄성이 절로 나올 만하다. 화산 쇄설성(碎屑性)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기생화산채로는 제주도에서 최대 규모라고 한다. 대평리의 넓은 들을 감싸고 있는 군산오름에서  바다와 한라산을 동시에 볼 수 있는데 일출과 일몰의 조망이 멋진 곳이다.   




 -제주는 어디라도 좋다.

드넓은 초원과 원시림과도 같은 숲이 날것의 자연으로만 가득 채워진 한남리의 숲길, 생명력 넘치는 머체왓 숲길소롱콧 길도 하루쯤 따로 날을 잡아야 한다. 소가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붙여진 지명 쇠소깍은 계곡인 듯 골짜기인 풍광이 빼어나다. 2022 대한민국사진대전 대상 수상작 '청옥빛의 쇠소깍'에 그 빼어난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권모술수와 봄날의 햇살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배우가 드라마 속에서 밤길을 걷던 세연교의 멋진 야경도 볼만하다. 제주공항에서 가까운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고려 원종 때 몽고에 최후까지 항전한 삼별초의 조국 수호의 충정의 교훈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계절마다 광활한 꽃밭이 인상적이기도 하며 공항 주변이라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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