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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넓은 한밭, 숲을 걸으며 위로받다. 대전(大田)

-느림의 미학 속에서 그들만의 평화로움, 대전(大田)

by 리즈







계절이 깊어졌다. 더불어 숲도 깊어져 간다. 쾌청한 공기와 햇빛은 사람들을 불러낸다. 이런 계절을 벗 삼아 천천히 여유 있게 숲길을 걷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호숫가를 걷는다. 자연을 품고 있는 숲속 모든 곳이 정원이고 모든 게 휴식이다. 느림의 미학 속에서 보내는 크고 넓은 한밭, 대전에서의 하루는 건강하고 평화롭다.



-노을이 내린 듯 붉은 숲, 장태산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주로 가로수 길의 나무로 많이 알려졌지만 장태산의 메타세쿼이아는 신비로운 숲을 이루었다. 삐죽삐죽 잎을 내민 연둣빛 봄부터 초록 절정의 여름을 지나 장태산의 가을은 불을 켠 듯 붉디붉다. 장태산의 시그니처 시절은 누가 뭐래도 깊어진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즈음이다.



대전 서구 장안로의 장태산 메타세쿼이아 숲은 단순한 단풍 명소를 넘어선다. 6,000그루가 넘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숲길은 붉은 숨결 속을 걷는듯하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나무 꼭대기의 색감이 유난히 붉다. 햇살이 숲을 뚫고 나무 사이사이로 쏟아질 때는 신비로운 빛줄기에 전율한다. 겨울을 앞둔 이른 아침 불그레한 장태산 숲속에서 숲의 고요를 온전히 누리는 힐링의 시간은 가히 몽환적이다.



숲속어드벤처 길을 지나 높이 27m의 스카이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대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간의 메타세쿼이아 나무숲 사이 스카이웨이. 여길 걷다 보면 키가 커서 도무지 손에 닿을 수 없던 메타세쿼이아 나뭇잎을 만져볼 수도 있다. 하늘길은 마치 공중 부양한 채 걷는듯한 착각 속에 빠진다. 빼곡한 숲을 사진에 담으려고 잠깐 누워서 프레임을 마주하면 하늘을 향해 끝없이 치솟은 메타세쿼이아 숲을 고스란히 실감한다. 숲에 묻혀있다 보면 이미 노을이 내린 듯 사람들의 어깨 위로 불그스레한 기운이 얹혔다. 그 나무 아래서 아이들은 밑동을 돌고 나무를 부둥켜안는다. 자연을 품고 있는 하늘과 땅의 모든 곳이 숲이다. 나무가 주는 평온함이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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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산이 오늘날 이처럼 압도적인 숲을 이루는 데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데 평생을 바친 한 독림가(篤林家)의 뜨거운 인생이 함께한다. 1970년대 충청권의 최대 재력가 중의 한 분이었던 故 임창봉 선생은 “나는 전 재산을 나무 심는 데 쓰겠다. 너희는 너희 힘으로 살아라.” 자녀들에게 전하고 장태산에 2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적처럼 숲을 이루고 자연휴양림을 열었다. 지금은 대전시가 관리한다. 나무를 사랑하는 독림가의 숨결이 깃든 숲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에게 휴식과 치유를 선물하는 중이다.



-여유롭게 걸으며 힐링, 대전 계족산 황톳길

요즘 산책하면서 이른바 어싱(Earthing)이라 하여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본다. 맨발로 땅을 밟으며 몸과 지구의 에너지를 연결한다는 의미의 어싱은 맨발 걷기의 효능을 강조한다. 대전의 계족산에 가면 임도에 조성된 가장 긴 황톳길을 만난다. 14.5km에 이르는 전 구간에 황토가 깔려있다. 이제는 이런 황톳길을 걷기 위해 연간 100만 명이 넘게 찾는 곳이 되었다. 걷다 보면 간간이 소주 그림의 현수막이 펄럭인다. 대전·충남 지역의 소주 회사인 선양소주의 조웅래 대표는 단순히 기업 운영에만 치중하지 않고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쳤다. 그중에 이곳 계족산에 황톳길을 조성해서 시민들에게 건강한 휴식 공간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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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길 조성의 시작도 흥미롭다. 마라톤과 걷기를 즐기던 조웅래 대표가 계족산 임도를 걷던 중 하이힐을 신고 힘들어하는 여성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 산길을 걸었다. 그 후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 온몸의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밤에는 깊은 숙면하는 등의 몸의 변화를 느낀 것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힐링 산책로 계족산 황톳길 조성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덕분에 대전의 황톳길이 오늘도 전국적으로 ‘열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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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까지 내렸던 비 때문에 발바닥 닿는 촉감이 촉촉하면서도 찰지고 쫀득해서 걸으면서도 재미있다. 깊어지는 계절답게 길 위로 낙엽이 수북하다. 계족산은 423.6m의 높지 않은 산이면서 험한 오름길이 없어서 걷기에 무리가 없다. 계족산(鷄足山)은 말 그대로 닭발처럼 뻗어나간 산의 능선을 따라 그 길을 걸으면서 수목을 마주하고 자연 생태를 살핀다.



울창한 숲에는 참나무 밤나무가 가득해서 도토리가 구르고 밤송이가 널려있다. 걸으면서 계절의 맛을 누리기도 한다. 기다랗게 이어진 산책로 양옆으로는 온통 빽빽한 숲이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정자가 나타나고 벤치가 보이기도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톳길 산책로는 산길인데도 의외로 넓다. 황톳길과 인도가 나란히 함께하고 있어서 맨발의 시민과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걷는다. 막바지 메타세쿼이아 길을 좀머 씨처럼 묵묵히 걷는 이의 뒷모습이 사색의 길인 듯 알려준다. 조용히 걷기 좋은 길 양옆으로 들꽃이 피어났다.



아침에 내린 비로 숲에 운무가 서렸다. 숲의 운치를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낀다. 숲속 산허리를 돌 때마다 잊힌 세월 속의 옛길을 떠올리게 된다. 계족산 안에는 계족산성도 있다. 백제시대의 석성인 계족산성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 서성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산성에 올라서면 대청호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대청호 명상 정원

계족산에서 멀지 않은 대청호 오백 리 길을 연계해서 걷는 코스는 매력적이다. 대청호 명상 정원은 대청호 오백 리 길 총 21개 구간 중 4코스인 호반낭만길에 속한다. ‘사람과 산과 물이 만나는 곳'이라는 대청호 오백 리 길 슬로건처럼 물 위를 느긋하게 걷기만 해도 오감이 청량해진다. 이제는 호수 위로 데크가 조성되어 수변 탐방로 걷기가 수월하다. 수량이 많아져서 호수가 넘실댄다. 작은 섬들은 물속에 잠겨있다. 1980년대 대청댐 완공으로 마을 담수화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대청호수가 이제는 휴식과 위로를 건네는 공간이 되었다. 데크 위 휴식 공간에 멈춰서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물멍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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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한가운데 오롯하게 서 있는 나무는 그 옛날 뉘 집의 것이었을까. 지금껏 마을의 이야기를 지닌 채 물속에서 보낸 세월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명상 정원은 쉼터와 함께 물속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한 옛집의 담장이나 장독대와 쉼터 등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이제는 '슬픈 연가' 등의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많이 알려져 사람들이 찾아든다.




-동네 책방, 머물다가게

여행 중에 지역의 동네 책방을 들러보는 것도 의미 있다. '머물다가게'라는 대전 동구 자양동 골목에 자리 잡은 동네 책방이다. 동시에 머물 곳을 대관하기도 한다. 때로는 시인과의 만남 시간도 있다. 여행 중에 책방에서 시인과 함께 시를 이야기하고 시의 세계를 탐미하며 시를 통해 내 삶과 연결해 보는 건 어떨지.


무엇보다도 복잡한 세상을 사느라 지친 마음이 책방의 빼곡한 책들을 마주하며 쿵 하는 두근거림의 소리를 듣는다. 복합문화공간이면서 아늑한 쉼을 주는 공간,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못하던 동네 골목의 책방에 잠시 머물며 차도 마시고 책장을 넘기며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은 특별한 여행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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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중간쯤의 지점인 대전은 떠나보기에 부담 없다.

더 쉽고 편리한 방법으로, 이번에는 -인문학과 함께하는 숲 여행이라는 이름의 '소담행 투어'-를 이용했다.

서울을 출발해서 대전의 숲과 호수 찾는 당일 힐링여행 코스다. 말 그대로 소수 인원이 천천히 걸으면서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며 떠나는 여행이었다.



대전은 우리나라 어디서든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자동차로는 약 두 시간이면 닿는다. 대전엔 그들만의 평화로움이 있고 고요한 풍광의 산책길엔 자연의 깊은 매력을 살피며 걷는 이들이 있었다. 조용하고 따뜻한 정서의 대전을 사람들은 어쩌자고 노잼이라는 말과 맛있는 빵 이야기에만 함몰되었는지. 한 해를 보내면서 복잡한 머릿속 비우고 싶다면 하루쯤 가볍게 대전으로 떠나볼 일이다. 돌아올 땐 기차가 떠나기 전 대전역점 성심당으로 달려가 빵 한 보따리 담아와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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