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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Aug 03. 2021

다짐하다

2021년 8월 3일 오늘의 나

2021년 8월 3일  오늘의 나


다짐하다     


어제의 출장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다시 출근을 해서 책상에 앉았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출근이라는 단어는 좋던 기분도 나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출근하느라 기분이 나쁜데 일도 많아 기분이 더 나쁘다. 아무튼 이래저래 기분 나쁜 화요일이다.    

  

오전 내내 모니터를 보며 힘차게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잠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숨을 내쉬었다를 반복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거쳐 오늘 해야 할 중요한 기획안의 얼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내 맘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던 내가 가진 자원을 총동원한 결과물이기에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그것을 보는 상대방의 만족은 그 이후의 문제이다.      


이렇게 내 월급의 값어치를 하며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번 한 달이 얼마나 바쁠지 가늠이 되면서, 다시 또 기분이 나빠졌다. 거기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에 급기야 코가 막혀버렸다. 오후에도 여전히 기분 나쁘게 한 숨을 내쉬던 내가 신경 쓰였는지, 옆자리의 후배가 조용히 묻는다.    

 

“커피 드실래요? 저 시원한 거 한 잔 사러 가려고 하는데...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세요.” 

“나도 그럼 달달한 거 한 잔 마시러 갈까? 코도 막혀갖고 괴로워. 달고 따뜻한 거 한잔 마셔야겠다.”     

건물 아래 카페에 둘이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내일 미팅하고 나서 방향 정해지면 당장 다음 주부터 섭외하고 해야 될 수도 있어. 다음 주부터 일정이 어떻게 돼?”

“하... 다음 주도 거의 외부로 나갈 것 같은데요. 이날 이날은 아직 일정이 없긴 해요. 여기에 표시된 휴가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휴대폰으로 달력을 보여주며 후배가 말했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정 안되면 오전에 다른 일 처리하고 오후에 나랑 합류해야 돼.. 캬캬캬캬캬” 약간 놀리듯이 웃는 나에게 후배는 너그럽게도 

“뭐. 어떻게든 되겠죠.”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근데 휴가는 가~ 아무리 바빠도 쉬어야지. 그날 가족이랑 일정 맞춰놓은 것 아니야?”

“그렇긴 한데, 일정 보고 하루 정도 휴가 낼까 하고 있어요.”     

어른스럽게 말하는 후배를 보자 징징대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더 열심히 놀아서 후배가 휴가 내는 것에 당당해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8월 말에도 휴가 낼 거고, 9월 추석 연휴에도 휴가 내서 놀러 갈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바빠도 내가 꼭 휴가 낸다!!”

“하하하. 그러세요. 꼭 휴가 내세요. 일이 너무 많으니 휴가 내셔도 되죠~”

“음.. 그래그래. 꼭 휴가 낼 거야. 그러니 OO도 꼭 휴가 내~!! 알았지?”

“네네~”     


그래. 기계처럼 일해도 시간은 항상 모자라고 일은 차고 넘치는 것. 


어차피 기계가 될 수는 없는 노릇. 놀고 보자. 후배에게 본이 될 수 있도록 내 남은 휴가를 열심히 쓰자.    

  

다시 한번 굳은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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