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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Aug 24. 2020

시작: 간호사를 다시 시작한 이유

정신과 간호사로 간호사를 다시 시작했(었)다.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출간하고도 마음에 응어리는 남았는지 팟캐스트를 하면서도 다시는 간호사를 안하겠다고 많이도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필요에 의해 다시 간호사를 시작했고 또 그만두었다. 사실 내게 진로 고민을 하면서 간호사라는 패를 생각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내게 좋은 기억이 없거니와 쓸모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은 정보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뉜다고. 

  그러나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생각지도 못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얻을 게 없을 거라는 초기의 생각과 달리 정보가 많아지며 인식의 틀이 넓어지는 나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간호사는 충분히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아니 매력적인 면허였다. 나 또한 탈임상, 탈병원, 탈간호를 부르짖으면서 막상 병원 밖의 간호사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했었다. 그래서 몰랐다. 간호사 면허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을. 언제든지 취직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건 요즘과 같은 취업난에 굉장한 메리트였지만, 간호사들에게는 당연한 점이기는 했다. 차이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간호사를 직업으로 할 수 있는 곳과 간호사 면허를 쥔 자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의 차이.   

  이것을 몰랐을 때의 나는 단순히 병원을 생각했다. 고민하고 고민해 아무리 먹어도 살이 빠지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결론을 내렸다. 병원에 다시 가자! 그간의 말과 행동, 책에서의 글까지 나의 자존심을 붙잡았지만 그 때의 나 또한 나이기에 인정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정신심리보건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정신전문병원에서의 경험은 매우 소중할 터였다. 다행인지 아닌지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와 인식 때문에, 로컬 정신과는 언제나 간호사 인력난으로 허덕였고 오랜 기간 무직 상태로 지친 나를 쉽게 정규직의 세계로 끌어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였다. 






  세 번째 직장을 퇴사하고 휴식을 가지기 위해 돌아온 본가에서는 황송할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가족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몇 년 전 휴학 했을 당시 고학력 가정부라며 놀리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내려놓았다고 해야 할까. 하고 싶은 것들 하겠다며 안정적인 직장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독립출판에, 모아놓은 돈들 다 써버리고 전혀 상관없는 분야인 회사에 들어갔다가 역시 안 맞다며 뛰쳐나온 큰딸. 누구네 집 아들딸은 뭐가 됐고 뭘 해줬다는데 등등의 말이 분명 엄마아빠에게도 들려왔을 것인데 엄마도 아빠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며 (실제로는 아니었는데도)마른 것 같다면서 양껏 먹였다. 일 주일 간 그렇게 많이 먹을 수도 있구나, 내 위와 장은 언제 비어 있는가 싶도록 배부르게 먹고 쉬고 잤다. 

  신체적으로 안정이 들자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 아빠는 그냥 내려와서 아무 일이나 하면서 골프나 치러 다니자며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말을 했지만, 괜히 미안했다. 아빠가 동창회를 갔다가 아들자랑 딸자랑 하는 친구들에게 큰소리로 우리딸은 작가라며 외쳤다고 하는 일화를 엄마에게 듣고는 더 미안했다. 삶의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부모에게는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은 게 우리네 마음이 아닌가.  


  계속해서 고민했다. 지금껏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하고 일을 선택한 적은 없었다. 하고 싶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바로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나이와 여건이었다. 누군가는 직업과 진로를 선택할 때 기준이 필요하다 했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좀 더 미래를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스물 한 살 때처럼 책상에 앉아 펜을 들었다. 흰 종이를 보며 막막해하다가 이내 한 자 한 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최소 10년 이상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인가?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지속할만 한 일인가?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인가?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꼭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얻고 싶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 일을 하는 내 모습은 어떠한가?

1년 후,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떠하기를 바라는가?

앞으로 내 옆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가?

어떤 집단에 있어야 하는가?

...


  나는 늘어나는 흉악범죄와 자살률이 싫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마음이 아팠다. 공감을 잘 한다는 친구의 말마따나 흉악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자살한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해서였을까. 기본적 생존권에 대한 활동과 단체는 많지만 정신과적 문제에 대한 정책이나 활동은 미흡해서 소외받고 있다고 느껴서였을까. 어찌 되었든 나는 문제라고 생각했고 여타 문제들보다 더욱 해결과정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선진국형 문제일지도 모른다. 보다 더 큰 선은 없을까. 내가 진정 가야 할 길이 맞을까. 몇날 며칠을 머리 싸맸으나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그냥 내가 재미있고 할 때 행복하면 된 것이었다. 잠깐 독립출판을 하고 스타트업계에 발을 담그면서 다른 길로 새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심리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자체로 불행했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의미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의미없다고 느껴지는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에게는 정신심리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문제가 정의되니 생각의 갈래가 하나로 모아졌다. 스타트업 아카데미에서 하도 문제, 문제를 닦달당해서 그랬는지 문제를 정의하다보니 많은 것들이 정리됐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 무엇을 할 것인가. 먼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관련된 일을 하려면 현장경험과 정확한 지식은 필수적일 것이었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예방을 위한 일은 분야 자체도 매우 좁아 보였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교육과 함께 정책이 뒷받침되는 등 다수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했는데, 현재로서는 보건복지부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다. 보건복지부 외에는 의학,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았고 간호사는 거의 찾기 어려웠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TV에 자주 등장하는 분이 예방의학과를 전공했다는 것도, 보건복지부 장관도 눈에 자꾸 보여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병원에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더욱 불명확해졌으나 영향을 미치는 일의 조건은 뚜렷하고 확실했다. 지식과 경험. 간호학적 지식도 아주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학사를 졸업하고 2년 간의 경력이 있으며, 간호학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해서 이제 다른 분야로 나아갈 차례였다. 예전부터 고민했던 심리학을 배우자. 조급하게 생각해서 자격증을 따려고 했던 때도 있었지만 장기적 계획을 세우니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심리학을 배우자고 마음을 먹고 학교를 찾고 나니 현실도 살아야 했다. 나에게는 간호사라는 면허가 있었다. 정신보건간호사라는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또다른 정신과적 자격증도 딸 수 있는 면허였다. 정신보건간호사를 딸지 안 딸지는 이후의 문제지만, 취할 수 있다면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병원에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만 나이로 스물 여덟 살. 서른까지 2년만 하기 싫어도 간호사로서 경력을 더 쌓자고 마음 먹었다. 따지고 보면 완전하게 하기 싫은 것만도 아니었다. 결국 하고 싶은 것으로 가기 위한 길이었으니. 하고 싶은 것을 위한 약간의 포기는 누구나 하고 사는 것인데 나라고 다를 것은 없지 않나. 돈을 모으면서 경험도 하고 자격도 얻자. 무엇 하나라도 더 얻어두어야 나중에 도움이 되고 지역사회에서도 일할 수 있다.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병원을 찾으니 이후부터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모르니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정신병원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낯선 경험들을 잔뜩 마주했다. 공고를 찾아보고 지원하고 입사하고, 간호사로서 일하고 또 그만두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105일+a의 시간 동안 나는 감히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경험을 하며 알지 못했던 현실에 눈떴고, 정신과 환자와 의료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생각을 담는 틀이 커졌다. 



  나름 관심이 있다고 했지만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알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매거진 '날카로운 첫 정신과 간호사의 추억'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점점 정신과 환자들의 경험이 세상에 많이 공개되고 있다. 의료진의 경험, 간호사의 시각으로 서술해봐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순전히 내 기록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지만, 부디 세상에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되기를. 


※ 같이 보면 좋을 이야기

▶  2년간의 내과계 중환자실 간호사로서의 기록

▶ 직접 겪은 Real 병원 라이프│나씨나길 반모인터뷰 ep.3 간호사편

본 인터뷰는 반말모드라는 컨셉으로 진행한 것으로 시청 전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한 저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에 기반하여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평소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소 껄끄러운 시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시청을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한 편의 영상저작물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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