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채용과 경력무관, 낮은 급여의 콜라보
처음 병원에 입사할 때는 서울에 위치한, 자대 병원이 있는 간호학과 학부생으로서 크게 어려운 점이 없었다. 이미 빅파이브니 빅쓰리니 유명한 곳들이 있었고, 극성맞은 친구들로부터 알음알음 들은 정보들도 많았다. 그래서 직접 알아본 정보는 거의 없이 멋모르고 지원했는데 덜컥 되어버렸다. 2년 동안 방학을 제외하고 매주 계속한 1000시간의 실습만으로도 충분히 지쳐 있었기 때문에, 노력 없이 채용된 것에 대해서도 별 느낌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
다시 간호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무려 4년 만에 병원을 찾으려니 막막했다. 흔한 채용공고 사이트도 알지 못했다. 사이트에 접속하면서 스스로에게 조금 어이가 없었다. 문과 선배가 자소서만 150개 이상 썼다는 말을 흘려들었는데, 처음에 내가 참 쉽게 취직했구나 싶었다. 학부생으로서의 삶이 그네보단 훨씬 힘들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자기합리화만으로 무마되기 어려울 정도로 쉽게 채용된 편이기는 했다.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접속한 간호사 채용공고 사이트는 어지러웠다. 너무 채용공고가 많아서. 단순히 간호사 채용공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과장 섞어서 최근의 헬스케어 트렌드를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요새는 디스크를 비롯한 신경척추질환이 심각하구나. 고령자가 많아 요양병원도 많구나 등등... 쏟아지는 일반 병원 공고들 사이에서 '정신'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추려졌다고 해도 꽤 많았는데 이전까지의 공고들과는 차별점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몇날 며칠을 보면서 깨달은 정신과 간호사 채용공고를 정리해 보았다.
1. 상시채용
일반적인 채용 공고는 거의 기한이 정해져 있다. 인사팀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없더라도 회사 자체적인 스케줄 조정을 위해 서류 접수 기간과 면접 기간을 정한다. 그러나 정신과 병원의 경우 상시채용인 공고가 꽤 많았다. 다른 과의 전문병원들도 상시채용이 있었지만, 정신과의 경우 정도가 더 심했다. 잘 모를 때에는 정말 인력이 부족해서 상시채용을 하는구나 생각했지만, 정신과 병원 퇴사를 고려하면서 상시채용 중인 타 병원에 연락했을 때 다소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며칠 부로 퇴사 예정이니 이후에 입사가 가능할까요?" 라고 담당자에 연락하자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나중에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상시채용이라고 다 바로 채용은 아니구나 생각하고 선택지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3일쯤 지났을까. 같은 번호로 문자가 왔다. 자리가 났는데 바로 면접 볼 수 있냐고. 내 소개도 이력서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그저 타 병원 근무 중이며 퇴사 예정 날짜만 이야기했는데 면접을 볼 수 있냐며 묻는 것은 무엇일까. 따지지 않고 사람을 쓴다는 말일까. 어찌 되었든 입퇴사가 굉장히 잦은 편이고 일이 힘들거나 사람이 힘들거나 등의 문제가 있다는 뜻인 것 같아서 결국은 거절했다. 상시 채용인 병원들의 후기를 보면 대다수가 후기도 좋지 않았다. 내게 상시 채용이라는 말은 영 좋지 않은 느낌으로 남았다.
2. 경력무관 혹은 경력 1년 - 심지어 정신과 경력을 요하지도 않는다
정신병원 간호사는 지원자격 요건에 경력무관 혹은 경력1년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급여와 처우, 환경과 사람 등 많은 조건들이 종합적으로 낳은 만성 인력부족의 결과. 게다가 경력 1년의 경우 정신과 경력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어디서든 간호사 업무를 해보기만 하면 되었고, 경력무관의 경우 갓 졸업한 신규간호사이거나 타 병원 웨이팅하는 간호사도 본 적 있다. 하지만 나는 중소병원의 정신전문병원에 쌩신규가 일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아래 근무체제 항목에서 말하겠지만, 중소병원 정신과 병동에서는 5-60명의 환자를 1명의 간호사가 보는 시스템이 허다하다. 신규 선생님도 물론 일이야 해내겠지만 진정 환자한테 적절한 간호서비스가 제공될 지 의문이다. 보통의 신규는 윗 연차와 함께 근무하며 일하는 법이나 환자를 위하는 법을 배우기 마련인데, 고작 며칠의 교육 후 다수의 환자를 윗 연차 없이 맡긴다는 것은 도박과도 같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정신과에 뜻이 있지 않은 이상은 경력무관인 상태에서 신규 교육을 정신과 병원에서 받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내과 병원이나 훨씬 큰 병원에서 신규 교육을 받고 일하는 것이 간호사 스스로의 건강과 앞으로의 실무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큰 병원에서 경력을 쌓아야 이후 이직을 하더라도 인정받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작은 개인병원들에서 경력을 쌓은 후에 큰 병원에 가려고 하면 가고 싶어도 경력직이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감염관리나 환자 및 보호자 응대, 서류나 연구 참여 부분에서 큰 병원에서 배우는 것들이 더 정확하고 상위 교육이기 때문에 스킬적으로도 많은 이점이 있어 조금이라도 큰 병원 혹은 정신과가 아닌 일반 분과 병원에 가는 것을 추천드린다.
3. 낮은 급여
정신과 병원의 급여는 일반적으로 2000만원 ~ 3000만원이다. 내가 찾아본 공고 위주로 본 것이기 때문에 예외도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썩 나쁘지 않은 급여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간호사는 4년제 대학교 졸업 후 1000시간의 실습시간을 이수하고 국가고시를 치르고 면허를 따 전문직이라고 불린다. 실습비용과 시간, 노력 등을 차치하고서 하는 일만을 살펴보면, 사실상 희생을 강요받고 전문직의 스킬은 당연하게 여겨지며 서비스까지 요구받는다. 친절하지 않으면 깎아내리고 조금의 실수도 기사화될 수 있을 뿐더러 항상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도 똑같은 직업이라는 분류에 속하고 금전적 보상을 받는 일인데,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써가면서 받는 급여가 너무 적은 것 같다. 정신과 신체 중 어느 하나만 쓰면 또 모를까. 특히 정신과 폐쇄병동의 경우 힘세고 충동적인데 병에 대한 인지가 없는 환자가 많아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고 신체적인 위협도 큰 편이다.
문제는 적은 급여가 사측의 탓만은 아니라는 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의료법 상 의료기관의 분류에 정신병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 말로는 정신병원이고 정신건강의학과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정신병원이라는 분류가 없어 수많은 정신병원들이 요양병원으로 분류되어 있는 실정이다. 의료기관으로도 분류되어 있지 않은데 수가가 잘 정립되어 있을 리가 없다.
일반적인 의료기관은 환자에게 병원비를 청구할 때 일반적으로 행위별 수가 적용 기준을 따른다. 간호, 처치, 수술, 약제 등 각각의 행위에 따른 수가를 적용해 환자에게 병원비를 청구한다는 뜻이다. 수가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말인즉슨 치료는 하는데 치료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며, 반대로 생각하면 최소한의 치료만 할 수도 있고 (이런 경우는 없어야겠지만) 필요한 치료도 줄이고 수가에 맞춰서만 치료를 할 수도 있다는 말도 된다. 즉 간호사의 간호행위도 수가적용에 포함되는데, 간호행위 하나하나가 전부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정신과 뿐만의 문제는 아니고 간호사 직군만의 문제도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초점은 급여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 의료법 3조2항에 따르면 정신병원은 요양병원에 포함된다. 정신병원의 수가는 급여 환자에 한해 정액제를 따른다. 의료급여 환자와 건강보험 환자의 비율은 평균내기 어렵지만 내가 있던 병원의 경우 급여 환자가 과반이었다. 급여환자들은 정액수가에 따라 치료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의료인력 기준 충족도에 따른 분류와 입원일수에 따라 분류된 금액이 1일당 최소 28,200~ 최대 55,300원이다. 검사, 간호, 치료, 상담, 격리치료 등을 모두 하루에 시행할 경우 병원 입장에서는 초과분부터 무조건 손해인 셈이다. 이것도 2018년도 이전에는 정액수가에 약제비가 포함돼 있었으니 정말 너무한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정신병원은 병원의 입장에서도 소위 말해 돈 벌기가 힘든 곳이라는 것. 사실 당연하게 행위별 수가, 즉 한 일에 따라 돈을 받고 벌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정액수가를 적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이 또한 정신과만의 문제가 아니고 간호사 직군만의 문제도 아니다.
4. 신기한 교대근무&근무시간 체계
아래는 정신과 병원 채용에서 자주 보이는 근무 시간이다.
- D/E만 가능
- D keep / E keep / N keep
- 24hr 근무 / 더블 듀티 / 12hr 근무
정신과 간호사 채용공고 중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교대근무의 시간과 체계의 범위가 굉장히 넓었다. 사람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 나는 D keep을 하겠다고 입사했다가 결국 그렇게 되지는 못하고 E을 달에 며칠은 해야 했지만 3교대만 해본 입장으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인력이 부족하기에 어떻게든 맞춰주려고 하며 관행처럼 여기저기 많은 병원들이 하고 있는 체계였다.
가장 놀라운 건 세 번째 줄이었다. 아니 더블 듀티에 24hr 근무가 가능한 것이라니. 24시간 동안 혹은 더블이나 12시간 동안 일할 수 있을 만큼 근무 강도가 낮은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신과 병원이라고 일의 강도가 낮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타 병원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정신과 병원의 특성 상 확실히 신체를 다루는 병원만큼(오직 나의 중환자실 경험에 비한 것이다) 신체를 쓸 일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없지는 않지만 신체를 쓸 일이 적은 만큼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매일 똑같은 주의를 주고 교육해도 반복적으로 행동 교정이 되지 않는 사람들, 단순 정신과만이 아닌 신경과적 문제를 지닌 사람들의 낙상, 치매 환자의 고성과 옷에 잦은 방뇨/배변, 알콜 폭력 환자들의 폭력적 문제 행동과 심각한 수준의 욕설과 끝없는 반복적인 민원 등등... 매일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몰라 긴장 상태인 것은 어떤 부서의 간호사나 똑같다. 여하튼 개인이 24시간을 견딜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남는 궁금증이 있을 수 있는데 24시간을 온전히 근무하냐는 것이다. 첫 병원이 중환자실이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병동이기 때문에 급성기의 환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잠을 자기에 간호사도 타 간호사와 교대하여 수면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정신과 환자들의 경우 상태가 항상 같지 않고 때에 따라 안정적인 경우도 있어 괜찮을 때도 있다고 했다. 물론 어떤지 나는 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겠지만.
어쩌다보니 정신과 간호사의 업무 환경을 설명한 것 같은데 한 가지 추가적으로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있다. 채용 공고에는 없지만 정신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한 병동을 간호사 한두 명이 차지를 보며 액팅까지 하는 것이다. 한 병동에는 보통 4-50명의 환자가 있다. 대형병원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질 지 몰라도 중소 정신과 병원에서는 흔히들 있는 일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나도 첫 달은 두 명이서 일했지만 적응한 후부터는 혼자서 일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섞여 눈치 보며 일하던 것과 달리 혼자 일하니 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하며 나의 판단력을 믿어야 했다. 정신과적 케어도 케어지만, 정신과라고 해서 신체적 문제가 전혀 없는 환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약간의 긴장은 항상 놓지 못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당뇨 환자였는데 평소 약은 당연히 잘 먹고 있었고 식사도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점심 먹을 시간에 나오지 않아 병실로 데리러 가니(정신과의 경우 환자의 식사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본인이 먹거나 먹지 않은 것을 기억 못 하기도 하고, 당뇨약을 먹고 있음에도 모르는 경우 등 아주 다양한 케이스가 있기 때문에) 본인 병실이 아닌 타 병실에서 수면을 하고 있었다. 깨워 식사하자며 나오도록 하니 횡설수설하며 비틀거리고 졸려하는 등 평소와 달라 혈압을 재고 혈당을 재보니 혈당이 34로 매우매우 낮았다. 눈도 뜨지 못하고 의식도 저하되는 게 뚜렷해서 굉장히 당황해 헐레벌떡 혈관주사로 포도당 수액을 주입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이런 일을 겪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데다가 간호사를 쉰 지도 1년 정도 되어서인지 놀란 가슴 진정시키느라 혼났다. 막상 환자는 드라마틱하게 깨어 멀쩡한데 주사를 왜 찔렀냐며 화내고 뽑으려고 해 달래느라 애먹었지만, 응급 상황을 마주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 어디나 병원은 병원이고 간호사는 간호사다.
+ 사족
이렇게 정신과 채용공고를 보다보니 병원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도 보게 되었다. 병원 이외에 정신과에 관심있는 간호사 혹은 정신과 간호사가 일할 수 있는 정신기관도 혹시 몰라 찾아봤는데 그 숫자가 매우 적었다. 보통은 공공기관이 많다. 또한 경력과 전문요원 자격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재미있는 건 경력과 자격은 더 요하는데 급여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 전문요원 자격은 정신보건간호사라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의 분류에 해당하는 자격증이다.(정신건강전문요원은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가 수련을 통해 자격을 취득한 사람을 뜻한다.) 본 자격의 경우 1년간 정해진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실습을 수료하면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 지역사회에서 두루 쓰일 수 있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기타 공공기관에서 일할 때 인정받을 수 있다. 사실 정신보건간호사 자격이 없으면 센터나 기관 취직은 어렵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아닌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 자격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문간호사와는 다르다. 특정 영역에 있어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간호사 자격증이 있다는 것은 간호사나 간호학생들에게는 흔히 알려진 정보다. 전문간호사는 석사과정 이상을 수료하고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며 장루전문간호사, 종양전문간호사, 마취전문간호사 등등 종류도 많고 꽤 인정을 받는 편이다. 전문간호사의 경우 대부분 임상에서 활동하며 임상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 있어서, 지역사회에서 일하고자 하는 정신과 간호사들은 대부분 정신보건간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