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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Sep 18. 2019

꿈에 네가 나왔다.

나는 언제 너와 헤어질 수 있을까

 꿈에 네가 나왔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꿈에 네가 자꾸 나온다. 네가 사준 드림캐쳐를 아직도 침대 맡에 붙여두어서 그럴까.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헤어진 지, 얼마나 됐더라. 마우스를 움직여 달력을 넘겨봤다. 꼭 두 달하고도 열흘이 되었다. 그 사이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너와 헤어지고 난 뒤의 일이다. 속 썩였던 8주짜리 아카데미도 끝났고,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독립출판 및 펀딩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퇴사를 했고, 3년 만에 가족들과 추석을 보냈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시간이 많아졌다. 네가 떠올랐다. 시간이 많아지면서 너를 생각하게 된 건 다분히 이기적이고 못된 마음인 것 같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아직 너와 완전하게 이별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도 내 마음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바빠서,라고 말하면 이해해줄까.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누가 나를 이해해줄까. 나는 지금에서야 너와 이별하고 있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너는 어떨까.


 아직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했다. 사진첩 여기저기 네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리하지 못한다. 정리하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조금 더 두고 싶은 건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 너를 보내고, 내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지금 쉬고 있다. 내 삶과 너를 생각하고 있다.


 조금은 무기력하면 무기력해하고, 졸리면 잠을 자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무기력하면 짜증내고, 졸리면 잠을 자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적은 없었다. 명상을 하다가도 문득 할 일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고, 할 일은 계속해서 증식한다. 몇 달 전 지금과 같은 백수일 때도 엄마가 그랬다. "백수가 과로사한다." 그때의 너는 그랬다.

이제 좀 쉬어도 돼.


 이제야 난 쉬고 있다. 일할 때도 쉴 때도 또 일할 때도 계속 나는 바빴고 너와 자주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일 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에게는 안 본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다고 소개를 거절하는 것은 나답지 않았지만 그렇게 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해하고 있다. 사람은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면서 성장해간다고 하는데, 나는 너를 만나면서 성장한걸까.


 내가 이런 고민을 할 거라는 걸 너는 알까, 알면 뭐라고 말할까. 아직도 너는 네 생각만 하는구나,라고 말하려나. 아직도 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려나. 아니면 이 모두 내 자만이려나. 나에 대한 건 까맣게 잊고 새로운 사람과 행복해하고 있으려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너와의 추억을 모두 헤다 보면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그만 해야지.


 언제나 나의 이별 뒤에는 내 마음에 대한 자해가 이어졌다. 이별을 하고 문득문득 떠올라 아프게 하는 기억들이 싫었다. 그래서 헤어지고 난 뒤에는 그 사람에 대한 생각만 몇 날 며칠 계속했다. 부러 슬픈 노래를 듣고 그와의 기억들만을 헤집으며 온 마음의 방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울고 울고 더 울 수 없을 때까지 울고 나면 괜찮아졌다. 그러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 마음의 자해는 아주 많이 아팠지만 효과는 매우 좋았다. 문제는 헤어지기 전에 생각했던 것이 없다면 꽤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



너에게서 회복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담담한 척 쓰고 있지만 마음이 아리다. 좀 많이 아리다. 이제 그만 내 꿈에서 나타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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