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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Oct 07. 2019

부러 걱정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건

안과 밖의 경계 안에서

 머리가 아팠다. 왜 이렇게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지 하다가 어제 잠을 꽤 늦게 잤던 것 같아서 그런 탓이지 생각해버렸다.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어 요거트를 마시면서, 이제는 먹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그것, 언젠가 고향의 친구가 말했던 간헐적 단식을 성공하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은 식사라는 행위, 몇 번은 신체의 부분들을 움직여 음식을 차려내고 씹고 삼키며 부지런히 손과 입과 위장을 움직이다가 일어나서 치워내고 설거지까지 무사히 마치는 일이, 귀찮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꽤 그것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지끈거리는 뒷목을 부여잡다가 어쩌면 이건 혈당이 떨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젯밤 9시에 밥을 먹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새벽이 되고 난 후부터 배고픔에 괴로워했던 내가 떠올랐다. 도대체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잊어 버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배고팠었고 지금은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아팠다. 지난 몇 년 간 배운 지식에 따르면 이 증상은 혈당이 떨어져서 발생한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차게 얼굴을 휘감는 냉기를 휘휘 고개를 돌려 지워내면 언제나처럼 얌전하게 냉동실에 자리한 닭가슴살 소세지가 눈에 들어왔다. 또 언제나처럼 소세지를 꺼내어 물 속에 담갔다. 꾹꾹 눌러도 물에 의한 부력, 부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는 그 어떠한 힘에 의해서 반은 잠기고 반은 잠기지 않는다.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눌러 딱딱한 것을 확인한 후, 배가 고픈 것과 머리가 아픈 것과 딱딱한 소세지의 상관관계를 중얼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몸을 더 많이 움직인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허기가 덜해졌다.


 며칠 전 시작한 프로젝트가 자꾸만 아른거려 잠을 못 잤고 그렇다고 그것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있다. 프로젝트 자체보다 결국은 글을 잘 퇴고하고 책이 잘 나와야 먹고 살 걱정을 줄이게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눈앞의 성과에만 집중하게 된다. 30일, 50일을 고심하다가 여행 일정과 겹치기에 더 긴 일정을 선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빠른 결정력, 실행력에 지인들은 박수쳤고 고마운 사람들로 인해 빠르게 성과를 이뤘지만 그것 또한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성과였다. 내가 목표한 성과는 아니었다. 내가 목표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을 뿐. 비슷한 것 같지만 천지차이였고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내가 좋아하고 아마도 나를 좋아해서 응원했을 사람들은 자꾸만 축하한다는 말로 나를 두드렸고 나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고맙다고 해야할 지 실은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라 더 높은 금액이었다며 그들을 맥빠지게 해야할 지 혹은 순간의 기분에 따라 행동해야 할 지, 어차피 내키는 대로 행동할 것이면서도 연락이 올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생각의 고리를 되돌아갔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나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그들이 나로 인해 이후에 속상해하거나 조금이라도 신경쓰여 할까봐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된다. 사람은 생각만큼 남에게 신경을 안 쓴다고 누가 말했던가. 당장의 내가 남을 신경쓰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는데.


 오래 보지 못했던 친구 J를 만났다. J를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는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은 콜록댔고 기사님은 꿉꿉한 냄새가 나는 히터를 틀었다. 창문을 열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상쾌한 공기를 맡기 위해 세 번이나 몸을 일으켜야 했다. 천장이 높은, 수영장이 있어야 했지만 비가 와서 채 한 뼘도 안 되는 높이의 빗물이 넘실거리는 파랗고 거대한 타일상자가 보이는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각종 빵과 커피로 속을 달랬다. 결국 소세지는 먹지 않았다. 추울 때 보고 못 봤는데 다시 추워지니 보게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따뜻한 이야기를 나눴다. 매번 달라지는 것 같은 내 모습을 생소하게 여길까봐 두려운 마음 반, 나도 모르게 J를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하는 나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하는 마음 반으로 나를 꽉꽉 채워두고. 장장 세 시간 동안 온갖 부담들로 삐죽대는 나를 J는 믿을 수 있는 배려의 울타리 안에서 잠재웠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해야겠다며 웃으며 인사하고 멀어지는 친구를 잠시 바라봤다. 트렌디한 것을 좋아하고 남을 잘 배려하고 귀여운 J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주는 게, 하얀 네트백이 아니라 따스한 사람의 손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데자뷰같았던 히터바람에서 빠져나와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걷는 것도 1, 2분이면 충분했다. 집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았다. 걸어갈 힘도 안 나는데 집에 들어가면 밥은 먹겠냐는 생각을 하며 집 앞 식당에 들어갔다. 여느 때와 같은 편안한 분위기와 저번에 왔을 때는 처음 일하는 날이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 보이는 웃음을 보이는 식당 이모, 그리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사장님이 있었다. 멍하니 물 한 모금 마시고 기다리다가 나온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넣은 순간 울컥했다. 곧, 이라고 하지만 한 달 후쯤에나 유형의 물건이 되어 눈앞에 당도할 내 책의 색깔과 꼭 닮은 노란색의 콩나물국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갑자기 오늘 하루가 소화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나를 하나도 안 챙기고 있었구나. 편안하게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국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건 나였다. 항상 그랬듯이 나의 일순위는 나이고 아마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괴롭게 하는 거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나였지만 하나의 순위도 쪼개질 수는 있었다. 일을 우선으로 놓고 몸을 챙기지 않는 나였다.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진 게 없었다.  


 부러 걱정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건 또다른 걱정일 뿐. 상도 벌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냥 현재의 것과 비슷한 무언가에 대한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이다. 굴레 안에 있을 때는 내가 어느 정도 크기와 무게의 굴레 안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별 다르지 않은 생각과 고민을 지속하면서 하염없이 나를 옥죄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안에 있는 걸까, 밖에 있는 걸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꽁꽁 싸맸음에도 나는 여전히 추운 것 같다. 빨리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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