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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Sep 23. 2018

딸네동네 새벽공원

- 산토끼, 부쉬터키, 코카투, 이름 모를 새 한쌍

새벽 6시다.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한다.


겨우내 춥고 낯설어 움츠려 있던 몸을,  
봄흙처럼 풀기로 한다. (시드니는 지금 봄 Spring.)

언덕을 올라서니 공원이 있다.
새벽에 벌써,
열댓 명의 다국적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서너 살 정되는 중동 남아까지 나와서 아빠하고 공차기를 한다. 지나가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제 아빠의 다리를 기둥인 듯 꼭 붙잡고 방글방글 웃는다. 귀엽다.



역시 골방에서 광장으로 나오니,  진기한 광경이 나를 기다린다.
혼스비 제임스 파크


한 자그마한 중국 여인은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몇 바퀴째 걷고 있었다. 매일 열한 바퀴를 돈다고 해서 놀란 내가 입을 헤 벌렸다. 그렇게 서로 핼로 하며 아침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펜스 너머로 깡충깡충 산토끼가 출현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도 아닌 이 도시의 공원에.
(이 동네가 예전엔 산이었다고는 해도 지금은 아파트로 상전벽해된 곳인데.)

토끼를 처음 목격한 내가 눈이 휘둥그레지니까, 들토끼들이 이 주위에 꽤 산다고 그니가 일러 준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토끼의 까맣고 동그란 눈도 동공이 벌어져서 더 동그래진다.
긴 귀를 더 기다랗게 쫑긋 들어 올린다.
그러다가 바로 시침을 뚝 떼고 먹는 데만 치중한다.  헤칠 자가 아니라는 걸 느낌으로 아나보다.

마른풀을 뜯던 토끼, 든든하게 배를 채웠는가. 고목나무 밑으로 깡충깡충 뛰어가서 고양이처럼
두 발로 세수를 한다. 앙증맞다.
호주 토끼도 역시 토끼라서 인지, 몸짓이 신속하다.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즉,



이 나라 토끼는 굼뜬 이 나라 사람을
안 닮았다.
세수하는 산토끼
야생토끼 한 쌍?
부쉬터키
부쉬터키는 닭의 성질을 닮았다. 잘 날지도 않고, 발톱으로 검불을 닭처럼 흩는다.

공원을 한 바퀴 더 돌고 온 중국 여인이  저쪽에서 나를 부르길래 뛰어가 보았다. 공원 담 밖에서 노란 벼슬을 단 부쉬 터키 한 마리, 먹이를 찾는지 발톱으로 검불을 헤치느라 분주하다.
노란 벼슬이 명왕성같이 환하게 돋보인다. 수탉에도 붉은 볏이 있으니, 아마 수터키일 듯.







공원 안에선 하얀 날개에 노란 깃을 단 코카투랑,
연분홍의 이름 모를 새들이 아침식사를 하느라 고개를 숙인 채 부지런히 부리를 놀리고 있다.
어떤 새는 발톱을 걸어 파헤치고, 어떤 새는 억센 부리로 땅을 쿡쿡 쪼아 모이를 찾아 꺼내먹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어떤 새는 소녀같이 가지런히 찍어 먹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 새들
한테도 통하는 듯.
코카투
무명씨


 
새벽 산책 첫날치곤 꽤 소득이 크다.
이들 동무들에게 이름을 붙여본다. 토끼씨, 터키씨, 카투씨, 새씨.
다정하고 이쁘다. 씨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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