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5. 새벽 5시 26분.
11개월 1주차 재영인 제 부모 침대에서 엎드려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할미가 감청색 바지랑 노란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혀도 잠에 푹 빠져 있어서 한쪽 팔은 그대로 남겨둔 채, 할미 손으로 우리 아기의 머리카락을 세듯이 쓰다듬다가 아기 방을 조용히 나왔다.
5시 55분까지 재영인 옷을 입다 만 자세로 그렇게, 그대로 꿈나라에 폭 빠져 있었다.
공항 픽업차를 6시에 예약해놓아서, 자고 있는 재영이를 조심조심 할미의 가슴과 양팔로 들어 올려 꼬옥 품었다. 할미 어깨에다 얼굴을 묻은 재영인 그래도 눈을 뜨지 않았다. 재영에미가 받아서 픽업차의 카시트에 앉힐 때까지 꿈나라였다.
"다른 때는 금방 깨더니 오늘은 우리 재영이가 웬일 인공." 하는 재영에미 목소리 사이에서 우린 큭큭 웃었고 재영인 그 소리에 눈을 떴다.
픽업차가 시동을 걸었다.
"재영아, 바이 바이. 우리 재영이 할미가 사랑해요." 하며 할미 머리 위로 두 손을 올리자, 재영인 그저 씨익 어른 아이처럼 점잖게 웃는다. 할미가 우리 재영이를 다시 한 번 포옹 안았다가 팔을 풀었고, 대신 차가 떠날 때까지 할미의 뜨거운 손을 나뭇잎처럼 흔들었다.
차 안에서 사위와 딸이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고, 재영이는 현 시추에이션의 영문을 알 듯 모를 듯 한, 예의 그 멈칫멈칫을 표현하며 씨익 어른 아이처럼 또 웃었다. 먼 헤어짐이 어떤 감정인지 아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아기 앞에서, 할미의 가슴이 찡했다.
차가 언덕을 올라가고 안 보일 때까지 멍하니, 차의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머문 시간에 비해, 떠난 시간은 짧았다.
우린 6개월 반 동안, 망고 상자 속처럼,
그렇게 향기나던 삶의 시간과
작별을 했다.
적절히 잘 익으면 달달한 향기가 몸안에 번져와 미감을 자극하고, 방치하면 물러서 먹지 못하는 망고는, 우리의 삶을 닮았다.
우리 재영인 그 달달한 망고 한 알을 단숨에 다 먹어치우곤 했다. 미끌미끌 미끄러질 듯 겨우 잡히는 노란 망고껍질까지 뒤집어서, 고 이쁘고 작고 말랑한 손가락 사이에다 꼭 집어넣어 주면, 그것의 무게와 질감을 성실히 들고 쪽쪽쪽 망고의 단물을 잘도 흡수하곤 했더랬다.
나의 외손주 재영인 때로, 망고를 더 빨리, 더 많이 안 준다고, 못난이 인형처럼 오만상을 찡그리고, 막무가내로 보채며 채근하기도 했지. 할미는 그때마다 우리 재영이가 한없이 이쁘기만 했지.아구아구 이쁜 우리 재영아. ♡
여운을 남기고 자식들이 떠난 자식의 집앞 골목길에서 재영이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나는 좀더 서 있었다.
가로수로 서 있는 보랏빛 자카랜다 꽃잎이 투둑 눈물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내게 맡겨졌던 열쇠를 따서 텅 빈 딸 집에 다시 들어왔다.
보름을 기약하고 서울로 떠나면서 분주하게 흩어놓은 짐의 이 부스러기들에서, 딸네의 삶의 냄새가 났다. 딸과 사위의 옷과 양말과 속옷들, 그리고 재영이의 장난감.
어질러 진 것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전에, 할미가 늘 재영이를 입혀주던 재영이 옷가지, 개울물처럼 흐르던 침물을 연신 닦던 가제 손수건, 존 윌리와 프레기 맥기 동화책, 재영이 장난감 바구니.
이 모든 재영이 물건들에다 할미 코를 킁킁 갖다 대 보았다. 그리고 재영이를 껴안듯 재영이 물건들을 하나하나 꼬옥 껴안아 보았다.
그리고 울었다. 조금 많이.
비디오를 보다 다시 울컥했다.
재영아, 나의 외손주!
할미가 사랑해. ♡
그러다 정신을 번쩍 차렸다.
나도 오늘 이 집을 시간 안에 떠나려면 그래야 하니까. 또 하나의 마무리 할 일이 이 친정 어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더구나 서울에서 사돈이 딸 가족과 같이 오신다니까 뒷정리에 신경을 좀 더 신중히 써야 한다.
부엌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소위 친정에미의 바디는 맹렬하고, 손발을 빠르게 딸그락딸그락 작동을 시켰다. 사위의 와이셔츠랑 속옷, 양말, 딸의 옷가지들... 을 모아모아서 세탁기에 먼저 넣고 세탁기도 작동을 시켰다.
딸네 방, 반년 동안 내가 머물던 방, 거실, 베란다 순으로 청소를 해나갔다. 재영이랑 함께 보면서 재영이한테 이름을 알려주었던 알로에, 게발선인장, 들깨, 파, 제라늄, 한련이 담긴 화분에 물을 주고,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
끝으로 재영에미 자동차를 파킹장으로 옮겼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땀에 흠뻑 젖어 동분서주했다. 대단원으로 공항에 있을 재영에미한테 전화를 걸어 경과보고를 했더니, 아이고 우리 엄마 힘들었겠다, 하며 엄청? 고마워했다. 그 한 마디에 에미의 몸 마디마디에 쌓인 온 피로가 다 녹았다. 딸의 행복은 엄마의 평강이리니.
재영아,
할미 안 보인다고 울지 마, 응?
할미 마음 알지?♡
이제 재영이 외할미도 드디어 이곳 시드니에서 하비 베이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 1 시간 45분 동안에, 재영이가 그랬던 것처럼 꿀꿀꿀 꿀잠을 푹 잤다.
번다버그에서 둘째 딸이 차를 가지고 하비 베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왔다. 1시간 45분을 달려서 왔다. 공교롭게도 시드니서 하비 베이로 날아오는 하늘의 시간과 번다버그에서 하비 베이로 달려오는 땅에서 소요되는 1시간 45분이라는 시간이 똑같았다.
둘째 딸은 그동안 엄마 밥을 못 얻어먹어서? 살이 빠져있었고, 나는 재영이랑 열렬히 노느라? 뱃살이 쑥 들어가 있었다. 우린 마주 보며 크게 하하 호호 웃었다. 서로 더 이뻐졌다고 헛말?도 했다. 그리고 재회의 포옹을 했다.
아으나, 그동안 수고했어.
엄마동. ♡
프레져 아일랜드로 가는 길목인 이곳 하비 베이 바닷가의 조용한 리조트에서 우린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말하자면, 엄마가 돌아왔다는
웰컴 파티로.
"빈야드"라는 바닷가 예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예쁘게? 먹고, 숙소에 돌아와서 나는 또 잠에 골아 떨어졌다. 덕분에 웰컴 파티는 잠만보 파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둘째딸은 그런 엄마를 보고 베시시 웃어주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웃음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빛깔 다른 사랑의 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