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날 내 서사를 파헤쳐 보면
실수한 일들이 티끌처럼 나부대고, 그때마다 부끄럼이 소녀의 볼처럼
홀로 붉는다.
할 수만 있다면 내면의 티끌에다 딜리트 키를 클릭하고 싶다. 지난 일들을 들추어내는 건 부질없다며 가슴 안쪽에다 꾸깃꾸깃 욱여넣을 때도 있다. 회상하지 않았기에 회오리바람처럼 꽁무니를 빼며 사라졌거나, 얼음처럼 스스로 녹아버렸거라 여긴다.
안 보인다고 과거의 묻힌 서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 편하자고 질끈, 아가처럼 눈을 감는다. 아가가 두 눈 꼭 감으면 안 보이는 데로 숨었다고 여기듯 아가를 따라 해 본다. 하지만 내 시간의 때가 묻은 사람으로서 아가를 흉내 내기엔 너무 멀리 와 있다.
그래도, 가슴 가만히 더듬어 보면
돌덩이 같은 날들보다, 꽃잎 같은 날들이
더 많았다.
우리는 희로애락 애오욕 같은 날들을 지킬 특권이 있다. 몸의 지체처럼 안겨온 오욕칠정은 다 내 것이다.
그것을 밀어내지 않고 내 것으로 품고 보듬어 매만지다 보면, 점점 더 온화한 온전함에 다가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이 동그스럼하게 조약돌처럼 닳아,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손끝의 때가 묻은 나만의 '돌꽃'이 된다.
가난한 날이라고 어여쁘지 말란 법은
없을 터,
돌이켜보면 가난 속에서 더 애틋하고 향긋한 서사가 묻어났다.
뜨개질할 때 보풀과 매듭이 생기거나 한두 코 빼먹었다고 따스한 감촉까지 잃진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있어 더 따스할 터, 코를 빠트린 실수에 대하여 너무 안타까워하지는 말 일이다.
완전체보다 불완전체에서 온유가 배어날 때가 많지 않던가. 실수할 때 빚어내는 진솔한 인간미가 얼마나 훈훈하던가. 실수나 실패를 겪으며 용기가 얹힌 무언의 갈채를 받고, 스스로에게 꿈을 잃지 말자며 다짐하고, 그러면서 또 하나의 단단한 정신의 근력을 획득할 수 있기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한다.
어쩌면 신은, 우리를 권태에 빠진 클리셰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후회와 성취와 부끄러움과 아픔과 기쁨과 아름다움과 상실... 을 마구 뒤섞어서 우리 앞에다 휙 던져 놓은 건지도.
우린 그걸 주워 들어 게임하듯 하나하나 각을 맞추다 보면, 시간이 저만치에 가 있다. 때론 실수하고, 때론 실패하고, 때론 부끄러운 게임을 한다. 그런 것들이 맵고 짠 양념처럼 섞여있어 생은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하여 맛깔스럽고, 거칠고, 그래서 어여쁜 게임 판이된다.
아무리 그래도 게임에는 원칙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예의, 질서, 정직, 진실, 믿음, 신뢰... 도덕... 뭐 이런 거. 이걸 고스란히 지킬 순 없어도, 늘 염두에 두고는 살 일이다. 그때마다 곁에 있는 자연을 바라보면 된다.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면서도 우린,
파이팅하듯 더 크게 웃는다.
맞손바닥 치듯 치기 어린 그
청명한 웃음과 웃음 사이에서
시너지가 생긴다.
꽃이 피고,
새가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