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와 짐
금요일 오전이면 집에서 15분 거리에 사는 마리와 짐을 만나러 간다. 집을 나서 타운 쪽으로 가다 말고 우회전하여 번다버그 브리지를 건넌다. 철길을 넘으면서부터 100킬로 속력으로 달리다가 또 한 번 핸들을 외길로 꺾어도 양옆은 여전히 드넓은 들판이 이어진다.
오른쪽엔 이웃한 마카다미아 농장이 마리네 푸른 펜스처럼 늘어서 있고, 맞은편엔 끝 모를 고구마밭이 있다. 그 중간 즈음에 작지도 크지도 정하지도 어설프지도 않은 마리네 집이 있다.
우리 세 사람은 늘 뒷베란다에 놓인 테이블로 가서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새소리 바람소리 사이로 알을 낳은 암탉들이 꼬꼬댁 꼬꼬 거리며 울 때도 있다.
처음엔 어린이 영어성경을 내가 띄엄띄엄 읽고 마리가 그 바이블 속에 담긴 스토리를 쉽게 풀어주었었다.
그러나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한 주 사이에 할 이야기가 흰 눈처럼 소복 쌓이곤 했다. 하얀 눈 뭉치 같은 나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간 나는, 그 일상에다 눈과 코와 입이 달린 서사를 눈사람처럼 어설프게 그들 앞에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두어 시간이 금방 지나고 딸랑딸랑 시계 방울이 흔들린다.
그래 리딩 바이블은 소리 없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나는 자동차 시동을 건다.
마리와 짐, 그들은 내가 갈 때마다 일관되게 행하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우리의 약속시간이 되면 마리가 현관문을 열어놓고, 짐이 찻물을 끓여 커피나 녹차를 타고, 내가 일어날 즈음이면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나의 가정을 위해 기도를 하고, 그리고 마당으로 나와 한국말로 "안넝", 하며 손을 흔든다.
아 p.s.; 짐은 운전 조심하라는 말을 꼭 한다.
그렇게,
그들을 만나 온 지 3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지층처럼 쌓여가면서, 나는 영어 어순이 안 맞아도, 말이 안 되는 말을 지껄여도 그들 앞에서는 잠시 머쓱해하긴 해도 오래 창피해하지는 않게 되었다. 서로 상대의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그저 후훗 거리거나 잠깐 멈춘 시간을 목구멍으로 쿨컥 넘긴다.
그동안 그렇게 함께 웃고, 때로 내가 우리 민구 생각이 나서 울먹이고, 주고 받고, 챙기고 섬기는, 조금조금 깊어지는 마음을 나누어 와서인지, 이젠 내가 '아' 해도 그들은 '어'로 곧잘 해석해 낸다.
이처럼 매주 금요일, 노부부의 코와 코가 서로 닿을 듯 이마를 맞대고 있을 그 즈음, 나는 그들을 만나러 그들의 집을 향하여 간다. 들판이 끝없이 이어지는 들길 위에서 또 하나의 풍경이 된 내 마음은, 풍경이 빚어내는 하늘과 들과 길의 푸르고 넓은 이미지에 물들어 평온하고 그윽~해진다.
- <현대수필> 2019. 가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