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 ; 솔직쟁이 그녀

- 자네트

by 예나네
자네트, 그녀가 이사한 곳은 해 질 녘 펜스 너머로 캥거루 사촌 왈라비가 출몰하여 풀을 뜯고, 망고나무와 아보카도 과원, 그리고 사탕수수 밭이 드넓게 내려다 보이는 호주의 전형적인 초원지대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6월 어느 날 그녀의 파인애플 농장에서다.

그녀는 파인애플을 따다 말고 나를 트럭에 태워서 투어 가이드처럼 자기의 땅을 보여주었다. 파인애플 외에 땅콩 밭과 새들이 그림처럼 떠 노는 두 곳의 운치 있는 호수가 밭 뒤쪽에 더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우리 집에 살고 있어서인지, 처음 보는 나를 진심으로 반겼다. 어미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동서양을 불문코 동일하다는 게 느껴졌다. 이웃한 사탕수수밭은 자기네 땅의 사이즈보다 25배가 넘는 초대형 밭이라 했다.


대형 댐 같은 게 보여서 뭐냐고 물었더니 그들의 저수지라니, 우리 농장 사이즈와는 클래스가 다르다고나 할까. 이십여 년 전 평택 우리 배 과수원은 만 육천 평이었으니까, 이 나라 땅 면적을 세는 단위로 치면 고작 13 에이커이고, 그녀의 파인애플 농장은 우리 땅의 25배가 넘는 376 에이커다. 그러니 그녀의 25배인 이웃한 사탕수수 밭은 내 안목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저쪽 땅끝이 지평선을 이루는 가물가물한 거리였다.


대평원의 농장주이던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커피와 샌드위치 값을 어김없이 더치페이하였고, 텐 테너스나 러시안 발레 공연도 더치페이로 같이 보러 갔다. 내가 번다버그로 이사 오고 두 번을 보낸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땡큐카드와 초콜릿, 달력, 바디크림 같은 작은 선물을 서로 교환했고, 김밥과 불고기 같은 음식을 한 두 접시씩 요리하여 그녀의 파인애플 농장에 가져가서 그녀의 가족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브리즈번에서 그녀의 아들 로스와 1년 반 동안 같이 살았다. 서른두 살이던 그 총각은 유큐 대학 공대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브리즈번에 와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휴일이면 자전거를 즐겨 타는 그는 마운틴 바이크를 끌고 나가 대여섯 시간씩 글로리아 마운틴을 타다 오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며 "위대한 캐츠비"가 왜 그리 유명한 명작인지를 이해가 안 된다며 내게 물었으나 나는 대답을 명쾌하게 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 영어가 짧은 이유도 있었고 그 작품을 명색이 작가라는 내가 책으로 자세히 읽지도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내게 친절하였다. 아니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평화의 전도사였다. 게라지에 방치해두었던 잔디 깎는 기계를 손수 고쳐서 우리가 외출한 사이 잔디를 말끔히 깎아놓았고, 내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오븐에 구워주었으며, 호주 생활에서 불편 커나 궁금한 사안이 그에게 닿으면 술술 풀렸다.


나는 매사에 따듯하고 친절하고 성실하며 총명한 그가 내 사위가 되면 했으나, 두 딸은 그 백인 총각에게 하등의 관심이 없음을 비쳤다.


브리즈번에서 네 시간을 운전하여 자네트, 그녀의 농장을 방문했던 첫날, 그녀는 시동을 거는 내 자동차에다 고작 파인애플 두 개를 달랑 얹어주고 시 유 레이터, 하며 포옹을 했고 손을 흔들었다. 스무 해 전 내가 과수원을 하던 시절에 우리 동네 사람들과 나는 수많은 배를 나누어 먹었었는데, 우리 땅의 25배가 더 큰 이 주인의 손 작음에 내심 충격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아들 로스에게 파인애플 두 개를 모두 줘 버렸다.

살아가는 건 때로 신비롭거나 신기하다.
그래 신선하다.


이태 전에 내가 둘째 딸의 직장을 따라 그녀가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될 줄 몰랐다며, 나보다 그녀가 더 호들갑이었다. 아는 사람은 단지 그녀밖에 없었으니 꽤 자주 그녀를 만났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깊은 속내를 알게 되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는 해마다 농사가 잘되지 않아 은행에서 융자를 하여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농장을 부동산에다 내어놓았으나 선뜻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팔게 되었다.


그래도 수중에 들어올 돈은 없었다. 다만 메이드 인 코리어인 대동 트랙터 같은 농기계 판 돈으로 집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나도 내 일인 듯 반갑고 좋았다.


그 돈으로 그녀는 중고자동차도 한 대 샀다. 그리고 이력서를 사방에다 뿌린 1959년생, 그녀가 인근의 패션푸룻 농장에 취업을 하여 열심히 일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저께는 과일 넝쿨 밑에다 짚을 깔고 구덩이를 손수 파는 노동이, 어깨와 허리 통증을 불러와 너무 힘들었다며 얼굴을 찡그리며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사람을 부리며 대농장을 운영하던 그녀가, 사심 없이 나에게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고, 과거의 자신을 비워 지금의 자신에게 맞는 일거리를 찾아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는 참 좋다.

살빛 다른 그녀와 나 사이에 앵프라맹스 같은 엷은 감정의 막 조차도 생기지 않음은, 그녀 스스로 진솔하고 정직한 자기의 이야기를 당당하고 담담히 꺼내놓아 그렇다.

뭔가 더 돋보이려고 더 부풀려서 이야기하게 되면 자신의 품위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임을 알아간다. 매우 진솔하고 정직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게 정갈하고 따스한 관계가 더 오래 지속된다는 진실을, 자네트의 삶의 자세에서 배운다. 그렇다고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은 없다.


남편의 치매로 10여 년 동안 홀로 도맡아 농사를 지으면서, 경제적 타격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심신의 고통을 얻었을까,를 생각하다니 내 고충의 고체적 질감은 사르르 액체가 되어 간다.

새 출발하는 그녀 앞에 빛의 등잔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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