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캥거루와 내 차 사이에 일어난 어메이징 엑시던트
- 캥거루와 달밤과 자동차
보름달을 보고 귀가하다가 자동차 부품
한 점을 탈취당했다.
저녁 8시도 안됐는데 평야 사이로 난 달빛 속 도로는 고적하고 어둑했다. 사탕 수숫대 흔들리는 실루엣만이 자동차 헤드라이트 속으로 들어오고, 소들이 풀을 뜯는 광경이 우리가 탄 차창에 설핏 담겼다가 비워지며 차가 달리고 있었다.
저 소들이 갑자기 내 차 주위로 몰려들까 내심 두려워지기 시작하면서, 호주에 처음 와서 들은 팁들을 오래된 물건 뒤지듯 하나, 둘 내 머릿 속에서 떠올리고 있었다.
팁 하나, 재수가 없어 만일 저 소들이 울 바깥으로 몰려나온다면, 나는 헤드라이트 불을 끄고 차를 멈춘 채 잠잠이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동물들이 놀라지 않고 슬며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니까.
팁 또 하나, 만일 야생동물이 내 차 앞으로 갑자기 뛰어들거나, 도로를 가로질러 지나간다면 그 동물을 내 차가 치더라도, 달리던 속력 그대로 유지하여 계속 가던 방향으로 주행하여야 한다. 뒤에서 따라오던 뒤차가 들이받아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잠재되어있기 때문이다.
호주 외곽을 여행할 때는 위의 수칙을 마음에 담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될 수 있으면 밤 운전을 삼가는 게 좋다고 하여 나는 그 원칙을 준수하여 왔었다. 더구나 여기 번다버그의 도로에는 야생동물이 자주 출몰하니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보름이니 까짓 거 오늘 하루쯤이야 뭐, 하필, 오늘 야생동물이 내 차에 뛰어들진 않으리라고, 스스로를 위무하고 단정했다. 그래, 달덩이가 구르는 등처럼 따라오는 은은한 달밤의 운전대를 담담하게 조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인생엔 '단 한 번쯤이야 어때'라는 그 일말의 요행이 잘 허락지 않는다. 여고시절에도 시간마다 떠드는 친구들은 안 걸리는데, 나는 입만 한 번 벙긋해도 선생님이 앞으로 불러내곤 하셨다.
사건사고는 순식간에, 불현듯, 불꽃처럼 내 인생을 침범해 오곤 했었다.
와, 진짜 저 달덩이 크다.
하는데, 캥거루가 내 차 앞으로 돌진한다.
차가 있는 걸 본 그는 빛의 속도로 놀라고, 비켜서 획 달아난다. 캥거루의 꼬장꼬장한 꼬랑지가 내 차를 슬쩍 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그래 내 감각엔 잠시 뭔가 스치듯 한 게 느껴졌다. 쿵, 들이 받진 않았다.
휴~, 다행이다.
그 소리가 꼬리 하나 스치듯 가벼운 걸 보니 아무도 안 다쳤어. 캥거루도, 내 자동차도.
아~, 나 오늘 제대로 복 받았다. 아마도 계속 우릴 따라오는 저 둥근 달덩이 덕일 거야. 아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무심코 내려보다니,
복 받았다던 내 차 몰골이 하 수상하다.
우째 이런 일이! 캥거루 꼬리가 내 애마의 '포그 라이트 커버'를 감쪽 같이 낚아채어 가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내게 있더라니.
이 만월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캥거루와 내 자동차의 절묘한 접점, 그리고.
나는 나대로, 캥거루는 캥거루대로 화들짝 놀라 서로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던, 그 짧디 짧은 순간의 간극. 순식간에 일어났던 사건 치고는 경미하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사고의 경중을 따져보기 전에, 절묘한 시간의 접점에 더 신경이 쓰였고 신기하기만 했다. 80킬로로 달리는 자동차의 '포그 라이트 커버'를, 어쩜 저토록 깔끔한 솜씨로, 캥거루는 떼어내 갈 수 있었단 말인가. 우연의 실수인가. 필연의 실력인가.
내가 온종일 이걸 떼내려고 온몸과 온정신을 다하여 조물딱 거려도, 이처럼 고도의 기술을 발휘하진 못했을 게 분명할 터.
세상에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니.
이 어메이징 한 사건이.
어제 그 캥거루와 맞부딪친 장소에 가서 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보려다가, 그 안타깝고 절절한 마음을 고이 접고 인터넷 쇼핑몰 '이베이'에서 새 물건을 주문했다. "2006년식 도요타 코롤라 세단, 왼쪽 사이드 포그 라이트 커버." 랩탑 앞에 정숙하게 앉아서 $63.50를 카드로 페이 했다. 세상 편하긴 하다.
하늘이 바다에 알을 분만하듯, 노른자같이 따끈따끈한 보름달을 우리 홀로 독차지하고
본 거에 비하면, 관람료가 그리 비싸진 않다.
새똥 하나만 보여도 초 단위로 반짝거리도록 닦아재끼는 새로 뽑은 딸의 뉴 카가 아니어서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그래, 내 오래된 차는 한쪽 눈알이 뻐끔한 채로, 새 물건과 조우할 날을, 내 머리의 세치 세듯이 세며 기다린다. 일주일 안에 도착할 거라는 그 물건을. 그런데, 내 차에 오래 붙어 있던 그 부품은 지금 어디쯤 있을지, 여전히 궁금하고 안타깝긴 하다. 그와 나 사이에 쌓인 정이 얼마던가. 12년이면 강산이 변하고도 2년이 더 남는 세월인데. 191,021km의 거리를 함께 달려 왔는데.
더 중요한 건, 그 캥거루의 안부가
못내 궁금하다는 거다.
허허벌판에 마땅한 병원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