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웃사촌 맥신이 자기 집에서
차 한잔 하자고 했다.
그런데, 낮은 촛불이 나란히 켜진 가지런하고 아늑한 그녀 집안에서 음식 내음이 났다. 내가 물었다. 차만 한 잔 하자더니? 오, 미안. 저녁 먹고 왔어? 순간 맥신의 푸른 동공이 둥글게 확장되며 걱정스레 내 얼굴을 살핀다. 아니, 아니, 아직 안 먹었어. 난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맥신이 우리의 디너를 위해 준비한 요리는, 밥솥과 냄비와 프라이팬에서 끓이고 지지고 볶아서 탄생하는 나의 집 부엌과는 달리, 모든 게 오븐 안에서 뜨겁게 나오고 있었다.
주키니, 고구마, 초록 콩깍지?, 감자, 펌킨을 듬성듬성 썰어 버터와 페퍼를 뿌려 200도로 맞춰진 오븐에서 한 가지씩 따로 굽고, 호주의 대표 해산물인" 바라문디"를 10분 동안 뒤집어가며 구워내더니, bbq 소스처럼 걸쭉한 소스를 얹어서 준비된 접시에 담아내었다.
음식을 담아내는 맥신의 손끝은 차분했고, 손길은 따스했다. 내가 가도 하나 흐트러지거나 서두르지 않고 자연스러운 미소로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급한 게 없긴 하다. 아참, 그리고 마늘빵도 있었다. 전반적인 음식 맛이 주인인 그녀처럼 편하고 깊고 맛있었다.
난 이럴 때 사진 찍는 게 어색하여 후다닥 찍고 만다. 그리고 업로드 하고있는 지금은 후회한다. 쓸만한 사진이 없어서.ㅜ
난 와인을 비롯한 주류를 못한다.
나로 인해 맥신도 화이트 와인을 안마시기로 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국에 살 때, 어느 선배가 한 말을 맥신한테 들려주었더니 하하하 웃었다. 모든 주류의 향만 내 콧속으로 맡거나, 와인 같은 술 한 젓가락이 내 혓바닥에 묻어도 취한다던 그 선배의 우스개 소리가, 맥신을 유쾌하게 웃도록 해주었다. 그나마 면이 좀 서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녀는 디저트로 애플 크럼블까지 만들어놓았다. 사과를 잘게 썰어 달콤하게 불 위에서 졸이고, 위에다 바삭한 크럼블(소보로)을 얹어서 커스터드 소스를 부어서 같이 먹는 요리였다. 어릴 때부터 즐겨 먹던 그녀의 패이브릿 푸드라 했다. 예전엔 커스터드를 직접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마켙에서 구입해서 사용한다고.
사진을 엉거주춤하게 후다닥 찍는 바람에 실물보다 훨씬 어설프게 나와버렸다. 다음부터는 좀더 차분히 찍어야겠다. 글 공간, 브런치를 떠올리며.
맥신은 장애우 학교 교사다. 천천히 말해주는 습관이 생활화되어 있어서인지, 내가 그녀의 꼬부랑 영어를 알아듣도록 친절하게 전해준다. 그녀도 후루룩 대던 나의 발음을 착착 알아듣기도 하고, 양념 같이 바디 랭귀지도 서로 첨가하여 밤 9시까지 진득하게 놀다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귀가했다. 맥신은 내 볼에다 쪽 하고 입을 갖다 대었다. 난 아직 그건 못한다. 아니 내 사전엔 그게 없을 것 같다. ㅎ
그다음 주엔 맥신이 우리 집에 왔다.
그동안 파악해둔 서양인의 입맛,
딱딱하지 않고 무른 음식, 따스한 것(겨울이니까), 맵지 않게, 담백하게, 생마늘 냄새 안나는 음식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그녀에게 맞춰서 한국요리를 하기로 했다.
샛노란 배추 속을 삶고, 시금치도 삶고,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을 뜨거운 물에 잠깐 담갔다가 건져내어 한국에서 동서가 준 참기름을 필두로, 깨소금, 맛소금, 국간장을 넣어 쪼물쪼물 맛깔나게 무쳤다.
또, 애호박을 볶고, 버섯도 볶고... 노란 호박 부침개, 소갈비찜, 생선전... 을 접시에 정성스레 담아내었다. 내 손끝에서 한국 전통음식이 하나하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오래간만에 우리 집 부엌에서 구수하고 고소한 한국 음식 내음이 그윽이~ 풍겨 나왔다. 한국에서 명절 때마다 다 같이 모여 동서들과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하던 시간들이 소환되어 잠시 그리움에 잠기기도 했다.
고추장 대신 깨소금 간장을 사용했다. 리오네 부부는 오직 김치만은 맵다며 아예 못 먹었고, 맥신은 김치를 한 젓가락 겨우 먹는 시늉을 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내가 건네 준 생선과 갈비를 잘라먹고, 고추장 대신 깨소금 간장에 참기름을 떨어뜨려 준 비빔밥을 든 맥신은, 판타스틱을 거듭 외치면서 진실로 진실로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맥신이 내가 만든 코리언 비빔밥을 너무나 애정 해주는 것에 용기가 퐁퐁 솟았다.
그래, 사흘 후에는 남아공에서 온 친절한 리오 부부를 초대하여 똑같은 레시피와, 똑같은 코리언 메뉴를 대접하였다. 리오와 밸러리는, 나의 비빔밥 요리에 대하여 그다음 날까지 엄지 척을 하며,
판타스틱을 연거푸 외쳐주었다.
나의 비빔밥이 우리우정의 다리가 되었다.
이러다 내가, 비빔밥 장인이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