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소녀이던 나는,
밤송이 툭툭 떨어질 계절을 기다리곤 했었다.
알밤이 밤나무 밑으로 투덕투덕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새벽마다 앞다투어 알밤을 주우러 다니곤 했다. 윗마을 내 친구 종숙이는 알밤 줍는 실력이 월등했다. 내가 겨우 하나를 찾을 때 그 아인 열개를 주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평소 자기 집 알밤을 많이 주워 본 경험 덕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람 속에 쌓아둔 경험은 보배보다 더 값진 게다.
새벽에 눈 비비며 집을 나서면, 요즘 여기 번다버그 계절처럼 쌀쌀한 기운이 살갗을 스쳤지만, 다른 아이들이 주워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주워 담기 위해서, 날이 붐하면 일상처럼 일어나곤 했다. 그건 일종의 신나는 게임이기도 했다. 뭔가 순수 소녀의 마음속에 뜬 별빛 같기도 한 그런 거.
어느 날은 급한 마음에 고무신까지 짝짝이로 신고 간 적도 있었다. 한쪽은 깜장 고무신을, 다른 한쪽은 흰 신을 걸치듯이 끌고 나가, 수줍어서 봉숭아 꽃물같이 산골소녀의 보드라운 볼살이 붉어진 기억은, 그래서 더 다정한 시간으로 남아있다.
유년에 우린 그렇게 목마른 사슴이 물가를 갈구하듯, 밤송이만 한 주먹으로 한알 두 알씩 알밤을 저금하듯 모으러 다녔다. 최초의 재물을 스스로 축적했던 그 일은 보람도 느껴졌다. 착한 종숙이는 내 손에 들린 밤알이 궁하면 슬쩍 제 것을 내 손에다 얹어주기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던 그 일은 새벽마다 산골소녀를 얼마나 꿈에 부풀게 했는지 모른다. 오늘은 몇 개나 주울까. 누가 다 주워가진 않았을까. 그러다 어느 날은 알밤이 소복 광주리에 담긴 꿈을 꾸기도 했더랬다.
알밤이 어느 정도 모이면 우린 돌을 수북 모아놓고, 그 속에다 밤을 넣은 후 젖은 풀을 덮은 채로, 은근하게 불을 지펴서, 한 구덩이에서 다 같이 군밤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어느새 다 먹고 나면 너도나도 얼굴에 검은 재가 묻어있던 기억은, 지금도 훈훈하다.
풀 속에 숨을 듯 말 듯 툭 떨어진 알밤은, 오리지널 밤색으로 반들반들거리고 해맑았다. 난 새벽이슬 맺힌 고 이쁜 알밤을 볼 때마다, 알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느껴졌다.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시고부터는 좀 엉뚱한 생각도 잠깐 했더랬다.
밤하늘에서 별로 반짝이다가, 새벽이 되면 밤송이에 에워싸인 알밤이 된 엄마가, 나를 만나러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도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마음이 가는 밤을 몰래 주머니 속에다 넣고 만지작만지작 대기도 했더랬다.
가시를 제 보호막으로 하여 그 속에서 몇 달을 거주하며 자라는 알밤. 보늬를 까면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밤. 더러는 덜 익은 풋내가 나기도 하던 밤. 고소하고, 달큼하게 잘 익은 알밤을 꼭 깨물면, 오도독, 오도독, 거리던 그 소리까지도 난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호주에 근 10년을 살고 있었지만, 마카다미아 나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번다버그로 이사를 하고서야 이 나무를 바로 곁에서 흔하게 보게 되었다.
3년 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방문하는 마이 프렌즈, 마리와 짐 부부의 정원에서
이 나무를 처음 보았다.
호주 분디(번다버그)에서 흔한 마카다미아 열매,
3년 전 6월의 어느 햇살 좋은 날에,
우리는 온갖 과일나무와 새를 보기 위해 마리네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 키 큰 세 그루 나무 밑에 알밤이 연상되던 열매를 발견하고 내가 물었다.
이게 뭐야?
마카다미아.
왜 안 주워?
시간이 없어서.
바로 그날부터 한 해에 서너 번씩, 나무 밑에서 허리를 굽혀 마카다미아를 줍는 일은, 나의 일이 되어야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마리와 짐은 한국사람처럼 온돌에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허리를 유연하게 잘 굽히지 못한다.
내 몸이 유연한 버드나뭇가지라면, 그들의 바디는 마른 참나무였다. 나의 손가락 빠르기가 제트기였다면 그들은 거북이었다. 더구나 내겐 유년시절 알밤을 줍던 실력이 있지 않은가.
나는 동양과 서양의, 입식과 좌식이라는 생활습관에 의해 비롯된 몸의 변화가 다른 걸 그때 똑똑히 목격했다. 신기했다. 마리도 쏘 인터레스트 하다며 자꾸만 웃었다.
내가 유연하게 몸을 굽히고 땅에 엎드려서 젓가락질하던 손가락을 재빠르게 놀려 세 양동이의 넛을 주워 담을 때, 마리와 짐씨는 한 바켙스도 넛을 채 못 채웠다. 굼뜨고 그만큼 둔하다고나 할까. 그러니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수밖에. 더구나 이들은 내가 극한 사별을 겪고 나서 죽을 만큼 힘겨웠을 때, 내 곁을 말없이 지켜주시던 나의 은인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내가 그들보다 손이 빠른 또 하나의 이유를, 쇠 젓가락질하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자, 마리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또 웃었다.
어제도 우린 마리네 마카다미아를 주우려 했는데 비가 와서 줍지 못했다.
나는 이제 다음 주 화요일이면 시드니에 사는 우리 재영이를 돌보러 가야 한다. 마이 프렌드, 마리가 마음이 급해진 모습이 역력했다. 넌 시드니 가야 하고, 비는 오고, 이걸 누가 다 줍누, 하는 마리 얼굴에 엷은 근심의 빛이 어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 짐은 팔순이 넘은 데다 암수술까지 하여 회복 중이고, 팔순을 바라보는 마리는 혼자 추수를 할 실력이 안된다.
오늘 새벽에 눈을 뜨니 6시.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운전을 하여 마리네 마카다미아 나무 밑으로 타박타박 걸어 들어갔다. 이전 주에 이미 절반은 주워놓아서인지, 나 혼자 주워도 한결 쉬웠다. 아니, 이국의 어느 마카다미아 나무 아래서 서양 넛을 혼자 줍던 나는, 내 고향의 밤나무 아래서 어느 새벽에 살금살금 기어 다니며 알밤을 줍던 한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알밤 한 알씩 내 손에 보태주던 속 깊은 아이 종숙이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만큼은 순수로 푹 젖어 있었다.
올해의 마카다미아 추수를 어렵사리 마무리하게 된 마리는 내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밤나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마리와 짐은, 내가 알밤에 대하여 아무리 설명을 하고 알밤 예찬론을 전해도, 그 정취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내가 뭐, 마이 굳 프렌즈를 위하여 큰일이라도 하나 거뜬히 마무리해준 듯, 마음이 괜히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우리 이야기가 마음의 곳간에 쌓이고 있었다.
동서양의 우정이, 알밤과 마카다미아처럼 한 겹씩 더 단단히 영글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