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에서 소소하고 소탈한 댄스파티

by 예나네


너 시드니 가기 전에 파티 한 번 하자.
거기, 미각에서.



마리가 말한 "미각 Meekak" 은 2년 전쯤 호주 번다버그에 오픈한 한국 뷔페 음식점이다. 샐러드 뷔페점 시즐러를 폐점하고, 그 자리에다 오픈한 꽤 괜찮은 코리언 레스토랑이다.

딸과 난, 짐과 마리 외에 친분 있는 몇 서양사람과 그곳을 찾을 때가 있다. 그들은 석쇠에 불고기를 굽는 걸 처음 봐서, 그들과 갈 때는 우리가 불고기 먹는 법과 굽는 법을 시범을 보여줘야 한다.




이걸 어떤 서양인은 재미있거나 맛있어하며 즐기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돈을 이만큼이나 지불하고서 왜 우리가 음식을 손수 갖다 나르는 심부름에다, 고기까지 직접 구워 먹어야 하냐면서 의아해한다. 스테이크를 프리티 하게 세팅해서 서빙하는 식사에 익숙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긴 하겠지만, 난 때로 그러는 그들이 더 의아할 때가 있다. 이렇게, 생각은 자유다. 그래서 세상은 더 생기 있고 아름답다. 그래도 나의 친구 마리와 짐 노부부는 그곳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이번엔 우리가 쏠게.
너네는 고기 굽는 법을 가르쳐만 줘.


1인분 30불이면 총 120불을 지불하겠다는 마리 부부에게 난 심적 부담이 느껴졌다. 23년을 파퓨아 뉴기니에서 선교를 하다 돌아온, 금전적으로는 가난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늘 부자지만..

그렇다고 살림이 쪼들리는 삶도 아니다. 다른 주에 사는 간호사 딸과 수학선생 큰아들, 비즈니스 맨 인 둘째 아들이 있는 다복한 부모이다.




2주마다 노인수당을 1인당 600불씩, 다달이 2,400불을 정부로부터 받아 생활한다는 이분들의 삶의 내면은 그저 탄하다. 그래 마리는 나라에 뭔 돈이 이리 많아서 우리를 이렇게까지 용돈을 주는지 모른다고 가끔 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 나라에선 가진 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높은 세금 또한 부담이 만만찮다. 그들은 그게 생활화되어 있겠지만.

이 노부부는 2주에 한 번씩 청소 도우미를 부르는데, 15불만 마리네가 지불하고 나머지는 정부에서 지불한단다. 도우미는 한 시간 반 동안 청소해준다고.


이 나라의 좋은 노인복지 수급으로 봐서 한 번쯤은 식사대접을 받아도 될 법도 하지만? 아무래도 내 맘은 편치 않다. 잘 버는? 나의 딸을 놔두고 펜션으로 살아가는 팔순의 마리네에게 우리 점심값을 맡기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불편한 진실이다. (타인의 친절을 받아주는 일 또한 하나의 예의라는데, 난 그쪽으로 너무 숙맥이다. 내가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랄까.)

난 불편해하는 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야 했다.



너네 두 사람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비빔밥 해줄게.


마리네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은 입식과 좌식의 충돌이 현관에서 잠시 머뭇거리곤 한다. 마리는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걸치고 들어왔는데, 짐은 군화 같은 신발이라서, 우리가 그냥 안까지 신고 들어오셔도 된다고 하자 성큼, 들어왔다. 그러다가도 주춤, 한다. 눈치가 보이나 보다.ㅎ


소파에 앉더니
신발 끈부터 풀기 시작한다.


신발 끈을 풀다가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포즈를 취한 짐, 암수술을 한 지 얼마 안된 짐의 눈이 아직은 퀭하다. 그리고 마리.


이날도 우리 집 손님 밥상은
비빔밥, 생선전, 갈비찜이었다.




마리와 짐의 입맛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소한 한국 참기름 향에 비벼진 비빔밥이 어매이징이라며 무척 좋아했다. 내가 이러다 비빔밥 전도사가 되는 건 아닐지. ㅎ

또 올해는 음력으로 지내던 나의 생일이 마리 생일과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딸이 케이크를 준비했고 우린 선물을 주고받았다.

마리와 짐은 내게 카드와 "영감을 주는 호주 풍경을 성경구절과 함께"라는 컬러풀한 그림책을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양초와 카드를 전하였다.

마리가 내게 준 카드와 선물.
우리 댄스 댄스 타임 해볼까.
오우 케이!


쿨하게 대답한 마리 덕분에?, 딸은 텔레비전 화면에다 우리가 평소 운동삼아 하던 댄스 댄스 게임기를 켰다.

먼저 나와 마리가 두어 판 몸을 풀었다. 아바 노래에 맞춰 댄스를 따라 하며 두 몸치의 몸을 풀었고, 곧이어 마리와 짐이 서너 판 춤을 더 추었다. 마지막 춤은 마리와 내가 장식하였다. 부끄럼쟁이 딸은 그냥 화면 조절만 친절하게 잘해 주었고, 그들이 부끄러워할까 봐 뒤도 돌아보지 못했단다.


우린 하하하 호호호 푸하하하!!

만국 공용어의 웃음을 한바탕 집안 가득히~ 풀어헤쳐 놓았다. 음악과 춤은 동서양의 남녀노소를 하나로 묶어내는 데 더 끈끈하였고, 그래서 우린 더 유쾌 상쾌 명쾌하였다. 날이 어둑하여져서 그들은 손을 흔들고 만면에 웃음을 한 보따리씩 들고 돌아갔다. 파티가 끝난 집안 정리를 돕던 내 딸은, 여태 그 웃음을 만면에 가득 달고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파티는 진짜 쿨했어!
마리는 역시 쿨해!

큭큭쿡!
우린 또 한바탕 웃었다.


이전 01화한국에선 세탁소에 맡길 걸 종일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