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참 이쁘다

- A와 두 자녀

by 예나네

옆집엔 다섯살과 세살 된 남매랑 89년 생 A가 사는데, 주말이면 아가들의 웃음과 칭얼거림과 울음소리가 사라진다. 아빠한테로 보내지는 것 같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어린 아들내미가 밤중에 울면 우리도 잠을 깨곤 했는데, 요즘은 밤이 고요하다. 아기가 긴 수면에 들 만큼 아가로 자랐다는 걸 게다. 지붕 위로 별밭이 뜨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동일한 풍경 속에서 우린 꿈나라로 빠진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A네 잠 안 자는 밤이,
우리에겐 잠 못 드는 스트레스였다.


새벽에 아가가 우는 건 이해하는데, 밤 깊은 줄 모르며 보이 프랜드랑 와인 마시고, 떠들고, 웃고, 울고, 노래를 불렀다. 내가 염려되는 건, 내 딸이 밤새 잠을 설치면 이튿날 새벽일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러다 두어 달 전 어느 새벽에 나의 심통이 봇물처럼 터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날도 A는 보이 프랜드와 새벽 세 시가 넘도록 떠들고 있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봤지만 도무지 잘 생각을 안 했다. 울다가 웃다가 노래하고 춤추고.... 무법자처럼 우리 침실을 침입하는 소음으로 인해 우린 뒤척이고 있었다.

참다말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그녀 집 쪽으로 난 내 방 창문을 톡톡톡 두드리다가, 핸드폰으로 랩을 틀어 열린 창가로 내 보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 개가 짖는고였다. 잠 못들어 몽롱해 진 나는 약이 오른 고추처럼 점점 속이 타들어 갔다.


끝내는 깜깜한 바깥을 더듬더듬 휘저어 담을 더듬거려서 그녀와 우리 집 사이의 담장을 붙잡고 정식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이, 에이, 에이..!! 지금 몇 시인 줄이나 아니? 알지. 3시 43분....! 그녀의 대답에 진한 와인 향이 섞여왔다. 우린 서로 말 화살이 몇 번 오갔고 그 사이에서 보이 프랜드는 나한테 와인 한 잔 할래? 까지 말하고, 비아냥거리고, 욕까지 한번 했다.



난 그날 이 나라의 잘난, 잉글리쉬의 결핍이
훅 엄습했다. 서러웠다.



나의 딸이 눈을 비비고 나와서 조곤조곤 이야기하여 사과를 받긴 했는데, 그때가 벌써 새벽 4시 반이었다. 자는 둥 마는 둥하고 그날따라 딸은 새벽 6시 10분에 출근을 했으니, 엄마로서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수많은 손님의 약을 조제하는 사람은 정신이 맑아야 하기 때문이다. 딸이 피곤하면 행여 실수라도 할까 봐 평소에도 나는 노파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5그람 넣어야 할 약 성분을 빼먹거나, 더 많이 넣으면 큰일이 아닌가.


한 달에 한번 텀으로 밤 소음을 내오던 A가
다른 날보다 더 야속했다.



다음날 A와 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웬수처럼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가들과 걸어오는 A를 보고 내가 먼저 차창을 열었다. 침을 꿀꺽 한 번 삼킨 후, 최대한 차분하게 물었다.
우리 어젯밤에 잠 못 잔 거 알고 있니? 그래, 알아. 미안하다고 했잖아. 하더니 쌩 하고 겨울바람처럼 돌아서 아가들 손을 거두어 자기 집 쪽으로 홀라당 가버렸다.

출처 :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


89년생이면 내 딸과 같은 또래인데, 적반하장이 따로 없는 서양산 딸이 얄미워졌다. 점점 자존심이 공처럼 바닥을 치고 있었다. 사람이 미우니 화가 나서 손이 떨렸다. 휴우~. 난 A처럼 술도 못 마시고, 그렇다고 다른 이웃이 있어서 함부로 소리도 못 지르니, 망할 가스나, 하고 혼잣말을 하며 찬물만 벌컥벌컥 들이 마셔댔던 것 같다.

그래도, 결국엔, 명색이 에세이를 쓰는 코리언 라이터이고 코리언을 대표? 하여 이역만리 여기까지 와 있는데, 개인적으로 화가 난다고 그 외의 것까지 인상을 구겨서는 안 되겠다는, 애국심? 같은 책임감에 이르렀다.(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판단을 잘했다는 결론.)




쇠뿔은 단 김에 빼랬다고 나는 그날 저녁식사 시간 즈음에 A네 현관문을 노크했다. 퇴근하고 보이 프랜드와 저녁 상을 차리던 A가 후덜덜 놀라는 기척이 역력했다. 어이쿠, 저 중늙은 동양 아줌마 때문에 큰일 났구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딸이 새벽 일찍 출근을 하는데, 너네가 떠들어서 내 딸 일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내 딸 같은 너네들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 하지만 결코 내가 너네들을 미워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거 한국 떡인데 맛보라고 가져왔다며, 전자랜지에 따끈하게 돌려서 먹기 좋게 썰어 간 시루떡 접시를 A의 손에 고이~ 들려주었다.


그때, A가 얼마나 반색을 하던지. 의외였다.



그래 팥고물이 당개당개 묻은 한국산 시루떡을 매개로 하여, 동양 엄마표와 서양 딸표의 두 손이 화해를 했다.
긍정적인 말을 트게 되어서 그랬을까. 정면에서 가만히 보니 살색이 뽀얗고, 키가 늘씬한 A는 눈동자까지 동그랗게 맑은 게 꽤 이뻐보였다.
나도 모르게 너 참 이쁘네, 라는 말이 저절로 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러자 그녀는 진짜로 이쁜 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주었다. 그녀는 아직 순수한 처녀였다.

참, 그날 같이 떠들던 남자의 목소리는 A의 아빠였단다. 그날이 자기 아빠 생신이었다고.
내 딸의 나이에 이혼을 하고, 친정엄마는 곁을 떠나간 A, 어린 두 남매를 홀로 양육하는 A. 그녀가 자기 아이들한테 고함을 치거나, 함부로 다루는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다만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그 밤에 웃고, 울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면서 가볍게 떨어내고 있었던 것을.


그날 이후로 A네 밤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어쩌면 요즘 나는, A네 집 한밤중의 소음이 우리 집 담을 슬~ 쩍 넘어오길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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