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이 살림에 숙맥이었던 이유를 대자면 이렇다.
천성적으로 요리에 관심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쪽으로 젬병이었는 데다, 설상가상이었던 건 천부적으로 요리 즐기는 푸근한 언니를 둔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요 몇 해전 까지만 해도, 제 언니의 라면부터, 입으로 들어가던 요리란 요리는 거의 다 받아먹기만 했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이 아이가 변하고 있다. 서른 즈음의 대기만성 천재형까지는 아니더라도, 괄목할 만큼 살림살이 실력이 늘고 있다.
그것에도 명백한 이유는 있다.
한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한 덕이다.
아이는 작년 한 해의 절반을 혼자 집을 지키고 살았다.
제 엄마가 하던 살림을 바통처럼 이어받은 아이는, 엄마가 하던 일상의 트랙을 대신 자근자근 밟고 살아가야만 했다. 엄마 대신 밥하고, 스스로 한 밥을 먹고,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빨래와 청소를 실시하고, 겨우 화단에 물 주고(꽃이 누렇게 고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본연의 업무인 직장을 꼬박꼬박 다녔다. 말하자면 1인 2역을 해야 했다.
아이의 살림 솜씨가 처음엔 서툰 정도의 도를 넘었드랬으니, 홀로 두고 먼 길을 떠나던 날, 어미는 걱정스러웠고, 짠했고, 미안했었다.
엄마, 내 나이가 낼모레 서른이야, 걱정 말고 가기나 잘하셔, 사랑하는 나의 조카 재영이랑 재밌게 지내고 오셔라고 키득거리며 제 어미 등을 떠밀어놓고선, 아인 퇴근하자마자 전화를 하곤 했었다. 작년 이맘때.
엄마, 참기름이 안 보이네?
엄마, 김치찌개 어떻게 해?
엄마, 쌀 다 떨어졌다. ㅜ
그러다가,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부터인가 질문의 수위가 낮아지고, 슬그머니 자랑 모드로 급수가 상승해가고 있었다.
엄마, 나 다이* 무선청소기 샀어.
엄마, 부엌에 쓰레기통 봐라, 내가 샀지렁. 짜잔!
엄마, 나 게임기 사서 댄스 따라 한다.
엄마, 나 퍼즐 잘 맞췄지. (방석 서너 개 크기만 한 퍼즐을 꼼꼼히 다 맞춰놓았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긴 그림자 속에 든 시간을 헤아려보다.그뿐이던가.
엄마가 6개월 반이라는 먼 시간을 마치고 무사히 귀가한 날, 아이는 김치찌개를 끓여주었고, 그게 어미가 끓인 맛보다 월등하게 좋아서, 아이의 그 레시피를 어미가 전수하고 말았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붓는 게 아니라, 물에다 김치와 돼지고기와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동시에 떨어 넣어야 맛이 구수하게 어우러져서, 통합적인 국물 맛이 우러난다고. 백**요리를 보고 또 봐서 요리를 공부처럼 달달달 외워 낯선 요리를 손수 선사하던 서른 즈음의 딸이, 어미는 대견했다.
어미랑 같이 살 땐 설거지도 하나 못? 하던 내 딸이, 이토록 자발적으로 어미를 능가하기까지 살림에 이바지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궁하면 변한다던가.
그런데 여기서 '궁하다'는 궁색한( poor) 게 아니란다. 주역의 원리에서 도래했다는 이 "궁즉통"의 "궁"은 "궁구하다" 즉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연구하다"라는 의미란다.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변화가 생기고, 변화가 생길 때 길이 뚫리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라야만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의미를 지녔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딸이 변한 이유의 실마리는 처지가 "궁해서 poor "에 더 가깝다.
엄마 없이 사는 집에서 하루하루 최소한이라도 먹고살자니? 최선을 다했을 테고, 최선을 다하니 변했고, 변하니 통했을 게 자명하다. 주역의 원리에 의하면 그렇게 터득한 도가 오래간단다. ^^
올 7월 중순에 딸의 어미는 또, 2차 원행을 떠날 테고, 딸은 또 집을 오롯이 지킬 게다.
아이는 또다시 저 깊고 오묘하고 신비로운 우주 자연의 법칙이라는 "궁즉통"에 들 차례다.
어미는 그저 두 번째 외유 후, 아이 속에 든 궁하고, 변하고, 통하고, 지속될 주역의 원리라는 이 향방이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다. 가벼이 설렌다.
처음엔 도무지 안될 것 같아도,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그렇게 통하면 오래 지속된다는 주역의 원리가, 우리, 아니 아이의 몸속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우리 몸속에서 그 혈맥이 돌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고 감사하다. 그래,
우리 몸이 곧 신통한 우주다.
* 궁즉통의 사전적 의미 : 궁하면 통한다. 어떤 곳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