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값이 푹 주저앉듯이 쑥 내려있다.
배추한테 용돈 받은 듯 반갑다.
며칠 전만 해도 7.5불 하던 배추가 오늘 아침엔 3불로 태그를 예쁘게 달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품질이 들쑥날쑥한 배추가 자판대에 수북 올라와 있다. 난 이럴 걸 미리 알고 이른 아침에 여기, 콜스가 오픈하자마자 쇼핑을 하러 왔다. 정보는 자본이라더니. 맞다.
일찍 온 덕에 여유롭게 배추를 고를 수 있다.
속이 노랗게 차고, 색감이 이쁘고, 이파리가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배추 여섯 포기를 맘껏 선하여 카트에 실었다. 양념으로 들어갈 마늘, 양파, 사과, 부추도 골랐다.
이전 가격의 절반보다 더 저렴하게, 것도 가장 맘에 드는 배추를 골라 트렁크에 가득 실었으니, 마음이 세상을 다 품은 듯 그~득해진다. 이렇게 세상을 품는다는 건, 하늘을 다 품지 않아도 된다. 오직, 별빛 하나만 품에 있어도 마음 반짝이니까. 지금 내겐 그 별이 이 배추다. 운전대를 잡고 내가 구입한 배추 모습만 떠올려도 배추 고유의 고소한 향내가 난다.
출처 : 네이버 배추 이미지.
어여쁜 배추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치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렇듯 기쁘면, 손맛도 그만큼 더 맛깔스럽게 버무려진다. 더구나 자식을 오랫동안 혼자 두고 떠나는 어미 마음이니, 정성이 더 들어갈 터.
오, 바로 이 맛이야.
김치 킬러 서른의 내 딸은, 오늘도 엄마 김치가 최고라며 나를 추켜세우면서, 퇴근 후 저녁 그릇을 말끔히 비운다.
딸의 말에 힘이 난 어미는 그다음 날부터 비좁은 냉동고를 말끔하게 대청소하고, 그 텅 빈자리에다 또 다른 유의 음식을 보너스로 채워 넣었다.
딸은 자기 나이 서른이라고, 엄마표 김치만 있으면 퍼펙트 하다고, 그 시간에 영어공부나 더 하다 가라 지만, 어미 마음이 어디 그런가.
오늘은 육개장, 다음 날은 갈비탕, 다다음 날은 돼지갈비 김치찜... 을 반찬가게 아줌마처럼 펄펄 끓이고 푹 쪄 냈다. 엄마의 마음이 오롯이 녹아든 뜨거운 국물이 식기를 기다려 그릇그릇마다에 다담다담 담았다. 그리고 냉동고에 차곡차곡 넣어두고서, 엄마는 딸을 홀로 남겨두고 집을 떠나온 지 닷새가 지났다.
딸이 쉬는 첫날에, 냉동고의 엄마표 갈비탕과 김치를 꺼내먹었다며 전화가 오고, 점심엔 라면을 삶아 먹었다면서, 'ㅋㅋ'가 들어간 카톡이 왔다. 그녀가 보낸 이 'ㅋㅋ'는 그녀가 라면 먹는 거 안 좋아하는 엄마한테 보내는 무언의 미안함이 섞인 애교 표시다. 그녀의 엄마는 엄마가 해놓고 간 엄마표 반찬 좀 애용하라는 답 톡을 했다. 인스턴트식품 덜 먹으라는 사인이다. 제발 '집밥'을 먹어달라는 어미의 애교 어린 당부다.
그러면서 내심으로는, 몇 개월 후 나의 둘째 딸 부엌살림 실력이 이번에는 또, 얼마 큼이나 향상되어 있을지, 사뭇 기대되고 설렌다.
작년 이맘때도 외손주와 노느라? 엄마가 꽤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가 귀가했었다. 그날 둘째 딸이 유튜브에서 보고 끓여 준, 얼큰 담백하고 구수하기까지 하던 김치찌개가 이 어미의 입맛을 지금도 짭짭 다시게 하고, 침이 꼴깍 넘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오, 그 맛. 딸표 김치찌개.
내 안에서 이런 물음 하나, 반짝 뜬다.
세상 모든 엄마는,
딸이 해준 음식이
다 맛있을까?
번다버그 공항을 떠나 시드니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황홀한 석양을 조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