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영아, 치치포포 타고 피크닉 갈까

by 예나네


2019. 9. 4. 수.

집안에서 할미랑,


기차놀이 동화책을 아침마다 읽고, 기차놀이 장난감을 거의 매일 가지고 놀던 재영인 기차 소리를 꿈에라도 들어본 듯 잘도 흉내 낸다. 재영이가 치치... 치치... 시작하면 할미가 포포... 포포... 장단을 맞춘다. 그러다,


오늘은 기차 소풍을 다녀왔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잔잔한 바다처럼 파랗고, 맑고 포근한 봄날이다. 할미는 주섬주섬 재영이 가방을 챙긴다. 작은 옷가방, 간단한 간식 가방, 기저귀 가방을 하나씩 따로 채워서, 커다란 매인 가방에다 쏙쏙 넣는다. 빨대 꽂힌 아가 물병도 필수다.


그리고선 할미가 조용히,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재영인 오늘 아침에 기분이 좋은지 거실에서 방을 달리기 하듯 오가면서 오른팔을 팔랑팔랑 흔들어 뒤뚱뒤뚱 뛰어다닌다. 재영이 기분이 나이스 한 이때가 찬스다 싶어, 할미는 손발이 안 보이도록 재빠르게 외출 준비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재영이에게 알려야 한다.


재영아, 기차 타고 피크닉 갈까.


할미가 준비되지 않은 채 먼저 재영이한테 알리면, 고 성미가 급해진 쪼막만 한 손이 할미손을 꼭 쥐고서 출입문쪽으로 무작정 이끌어 간다. 할미 손이 따라가면 눈물 콧물 흘리며 마구 운다. 그땐 이 세상 힘센 그 누구도, 요 꼬맹이 고집불통을 못 말린다.


우리 재영이 어디 나간다는 말은 번개보다 더 빨리 눈치 챈다. 시시 시발, 하며 자기 신발을 찾아와서 할미 무릎에 착 앉는다. 오른발 왼발을 차례대로 쏙쏙 내밀어 신발 착용 10초 만에 완료!


자~ 출발!
하나, 둘,,, 마흔일곱!
두 손 잡고 네 발맞춰 계단을 다 내려온다.


트레인 스테이션까지 어른 걸음으로 8분이지만, 우리 재영이랑 30분 정도 데이트를 해야 했다. 유모차를 안 타고 아장아장 걸어서 오니 그간 못해보던 것들을 보고 신선한 경험을 체험한다.

집 언덕바지에 올라와 펜스를 통해 어린이 집을 들여다보며 제 또래 원아들 보고 하이, 하며 손 흔들고, 길가에 샛노랗게 핀 민들레꽃 향기도 맡아보고, 동그랗게 부푼 하얀 꽃씨도 후후~ 불어 어딘가로 날려 보내면서... 드디어 기차역에 도착했다. 걷는 걸 즐기는 재영이라도 오늘은 트레인 스테이션으로 오르는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할미가 재영이 덕에 호강했다.


두 사람 다 마냥 즐겁다.
처음 와 본 우리 재영이,
구경거리 지천이다.
할미 눈은 재영이 표정이 구경거리다.



오늘 목적지는 강과 바다와 섬을 다 볼 수 있는 혹스 베리 리버 역이다. 교외라 한가하며 경관이 좋은 곳,



그곳에 내리니 나가는 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70여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할미 마음은 살그머니 염려되었다. 하지만 재영이가 누군가. 하루 한 번 이상씩 92계단을 오르내린 내공이 온몸의 근육에 꽉 배기지 않았던가. 하나, 둘, 셋... 할미랑 손발을 맞춰 스테이션 계단을 내려오니 바로 강가다. 자연인 재영이 흙 좋아하는데, 기찻길 가에 온통 흙과 자갈이며 길 반대편은 푸르고 맑고 희고 햇살은 강 비늘처럼 반짝반짝 반짝이고... 아름다운 강의 풍경 속에 돛단배가 오누이처럼 오손도손 정박해 있다.



댕거 섬으로 간다는 여객선이 있어 알아보니, 뱃삯을 현금으로만 $17 받고 있었다. 카드만 가볍게 들고 간지라,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피시 앤 칩스를 파는 강가 시 푸드 샵으로 들어가 새우와 오징어 튀김에 오렌지 주스를 시켜놓고, 쉬엄쉬엄 쉬면서, 놀면서, 풍경을 머금으면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듯 입에 넣었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활동적인 성격으론 둘째 가기 섭섭한 우리 외손주에겐, 좀 앉아서 쉬라고,


뽀로로를 틀어주었다.

냠냠 김밥도 주었다.



우리 재영이, 기차면 기차, 음식점이면 음식점, 모두 너무 잘 흡수하고 소화시킨다. 기차 안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하이 파이브까지 멋지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짝짝 박수까지 받아내었다. 기차 안이 자기 안방인 듯 솔솔솔 뛰듯이 걸어 다닌다. 외할미는 외손주 꽁무니 쫓아다니느라 분주하다. 그리고는 외손주 사르르 집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잠에 폭 들었다.

재영이를 포옹 안고 내려 기차역에서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야 했다. 15킬로가 넘는 몸무게에 할미 팔이 좀 아팠지만 이렇게라도 운동을 하여 근육을 키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일거양득이랄까.


평소 안면이 있던 올리버 브라운이라는 카페에 가서 우리 손주 눕혀놓으니 세상모르고 두 시간을 콜~콜 코까지 골면서 푹 자고 일어났다. 옆에서 중간고사 시험공부하던 의과대학 여학생이 지켜보다가, 우리 외손주 너~무 귀엽단다.



오늘 하루를,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나의 외손주, 잠에서 깨어나서 또, 분수대 옆으로 가 비둘기 한참 따라다닌다. 요 에너지 충만한 귀염둥이 외손주, 할미 손을 잡고 다담 다담 한 발짝 두 발짝씩 길을 꼬불꼬불 따라 걸어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휴~, 짧고도 긴 소풍이었다.


오늘도 외손주와 외할미,
서로가 참 좋은 친구였다.

재영아,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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