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부터 한국 드라마 영어자막 받아쓰기를 해봤다. '영어교실' 수강기간이 끝나고 집에서 뭘 하면 내 영어가 늘까,를 궁리하다 행동으로 끄집어낸 발상이다.
수목 드라마 "봄밤"의 사람 사는 냄새가 좋아 즐겨보는데, 우선 이 드라마를 선했다.
영어를 배우려면 모국어에 기대야 한다. 엄마 품에 아기가 포옹 안기듯 뇌가 모국어에 착 달라붙어있어야 영어를 정확히 배우고 읽힐 수 있는 게다. 그렇다. 난 한국 드라마 대사를 들으면서, 우선은 화면 아래 켜놓은 영어자막을 훑어본다.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들의 모국어 대사를 영어로 익히다 보면 내 삶의 영어가 낚인다.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이 드라마를 일단은 한 번 쭉~ 시청한다. 대사를 들으면서 화면 아래 켜놓은 영어 서브 타이틀을 눈여겨 봄을 고수한다.
아, 이럴 땐 영어로 이렇게 말하는구나, 하면서. 그러나 한 번 보고 두 번 봐도, 나의 머리는 자꾸만 까먹는다.
그다음 날 노트북에서 어제의 "봄밤"을 다시 켠다. 스페이스 바를 두드려 잠시 멈춤을 해가면서 영어자막을 따라 쓴다. 공책에다 연필로 받아쓰는 이 아날로그 방식은, 달팽이가 가든파티에 가듯 시간이 느리게 지체되는 건 감수해야 한다.
느릿느릿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기어가면서, 온몸을 비비적 대어 땅내를 맡고, 기다 보면 깜장 무리 개미왕국도 가로질러 가고, 그리고 식물의 이파리도 갉아먹을 수 있다. 달팽이의 속도로 영어자막을 쓰다 보면 나무의 이파리가 달팽이 먹이가 되듯이, 영어 대사의 일부가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 쑤욱 들어온다.
드라마 대사를 받아 적는 내 펜대는 달팽이 촉수와 같다. 펜 끝으로 세상의 온갖 삶의 모양새를 느린 걸음으로 느끼고, 보다 깊숙이 냄새 맡고, 세심하게 듣고, 그리하여 꼬부랑 말을 연체동물의 양분처럼 펜 끝으로 섭취한다.
그렇게 천천히 써나간 시간을 채우다 보면, 주인공들의 삶의 여정에도 위로받고, 도전받고, 또 누군가의 부조리한 삶에 대한 거부감도 생긴다. 내가 쓴 영어 받아쓰기가 대견하여 사랑스러운 외손주 얼굴 보듯, 자꾸자꾸 보고 또 보고 하다 보면 어느새 "봄밤"은 내 언어로 변해있다. 다이얼로그의 전부가 아니어도 좋다. 단 몇 마디만 익혀도 나는 만족한다. 하루 이틀... 조금조금 기어가기만 하면 된다.
너, 그거 알아?
너 요즘 영어 엄청 늘었어.
어느 날 문득 듣게 된 반가운 이 말. 난 요즘 이 말을 자꾸만 듣고 싶어서 금토 드라마 "보좌관"도 별책 부록처럼 추가로 보고 적는다. "보좌관"은 정치 드라마여서 정치용어를 영어로 익힐 수 있어 그거 또한 보너스처럼 유익하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들을 선해서 영어자막을 받아쓰기해보니, 아무리 반복 재생해보아도 질리지도 않는다. 반복적으로 외워야 내 것이 되니까, 반복 재생하고 거듭 듣기는 내게 영어 공부하기 딱 좋은 미늘이다.
난 오늘도 한국 드라마에 기대어
영어를 낚았다.
드라마 "보좌관"을 베끼다. "정치는 바로 이 차가운 현실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차가운 어둠 속으로 들어가 빛이 되어야 합니다." - 이정재분 장태준의 대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