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계절은
지역마다 꽤 차이가 난다.
강원도와 보길도의 계절이 다르듯, 여기도 남쪽과 북쪽 사이에 기온 차가 크다. 물론 남반구니까 남쪽이 춥고 북쪽이 따스하다. 지금 한국은 여름이고 여긴 겨울이듯, 남쪽과 북쪽 사이의 기온도 이처럼 한국과 반대다.
호주 사람들은 사계절을 분기별로 나눈다.
3월부터 가을, 6월부터 겨울, 9월부터 봄, 12월부터 여름이다. 그러지 않으면 남쪽과 북쪽 사이의 기온 차가 크니까 계절을 엇갈리게 불러야 할 텐데, 이렇게 명명하는 게 현명한 처사인 것 같다.
브리즈번에서도 자동차를 운전하여 북쪽으로 네 시간을 더 올라가야 하는 번다버그는 요즘 낮 기온이 20도~25도 사이다. 반면 시드니는 14도~18도다. 번다버그는 거의 여름이고 시드니는 봄이 가깝다. 그래도 두 지역 다 겨울에 있다. 이 나라 방식대로 그렇게 명명하는 게 편리하고 공평하다. 기온이 이렇듯 차이가 나니 자라는 꽃나무도 조금씩 다르다. 브리즈번은 10월의 연 보랏 빛 자카랜다가 아름다운 반면,
시드니 정원에는 7월 동백이
소담스럽다.
외손주를 돌보기 위해 시드니에 머무는 요즘, 동백꽃을 맘껏 본다.
나 혼자도 보고, 재영이와도 본다.
덤으로, 낮고 작게 핀 민들레 꽃도
외손주랑 같이 본다.
따스한 햇살 아래 핀 민들레 꽃 앞에서, 외손주와 외할미.어느 해인가.
보길도에 가려던 계획이 무산된 후부터, 동백을 몹시도 그리워했던 적이 있다. 남도로 여행할 때마다 보길도를 떠올리면서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피우는 붉은 꽃 앞에서 발길을 오래 멈추곤 하였다. 그래 동백꽃 이미지가 내 마음에 남아있긴 하지만, 그 유명하다는 보길도의 동백꽃은 여태까지 조우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난 보길도의 동백꽃 소식을 어느 여행기에서 처음 만났다. '보길도의 동백을 봐야 동백꽃을 봤다고 할 만하다'던 누군가의 호들갑스레? 써놓았던 그 문구를 보고 나서, 죽기 전에 꼭 보길도의 동백꽃을 봐야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그러나 2006년도까지 머물렀던 내 고국의 그 유명하다는 동백꽃을 못 본 채 고국을 떠나왔다. 보길도의 동백을 못 본 게 못내 아쉬웠다. 그 후로도 고국을 수십 번 다녀왔지만 어째 보길도에는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다. 아직까지 나와 보길도의 동백은 연이 닿지 못하였다. 내가 살던 경기도와 보길도는 왜 그리도 멀어야만 했는지.
보길도 대신 여수 오동도와 선운사의 동백숲 앞에서 오래 머문 적은 있다. 미당의 시 속에 등장하는 '선운사 동백꽃' 앞에서도 솔직히 나는 감동받지 못했다.
《자전거 여행》을 쓴 김훈의 동백꽃은 꽃이 아니라 글로써 감동받아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던 어느 에세이에서 읽은.
내게 동백꽃이 탐스럽게 다가온 곳은 시드니에서다.
7월의 시드니에서, 하우스 앞 가든에 핀, 핏 멍울보다 붉은 정열을 지닌 동백꽃은 아직도 못 가본 "보길도"라는 지명을 자꾸만 떠오르게 한다. 그 미지의 내 마음속 동백꽃은 참 붉기도 하다. 갈 수 없어 아쉬운 만큼, 그 만큼 마음을 뜨겁게 하는 건가.
여기 시드니에서 내가 홀딱 반한 동백꽃은 겹꽃이던데,
보길도의 그대는 홑꽃이던가.
언젠가는 내 꼭, 그대 보러 가리라.
인터넷 검색을 제쳐두고 직접 가서 보리라.
만져보고 냄새 맡아 그대 붉은 향에
어지럽도록 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