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주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다

by 예나네

2019. 7. 17. 수.


이날이 그날이었지요.


이 외할미와 외손주가 "실제로 첫 해후"를 한 날입니다. 딸과 사위가 바이 바이, 하며 자기들 아들내미한테 손 흔들고 나란히 집을 빠져나갔습니다. 출근할 때 행하는 일상의 풍경인가 봅니다.

재영에미가 이렇게 말하고, 그녀의 어미인 내가 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우, 아쉬워한다. 우리 재영이."

"걱정하지 말고 어여 가. 옷 따스하게 입고."


재영인 할미 방 침대 위에 앉아서 색연필로 스케치 북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손을 한 번 흔들고 고개 한 번 까딱이고는, 너무도 귀여운 음성과 몸짓으로 " 네", 하고 간단명료한 화답을 하였습니다. 19개월 10일 차 우리 아가, 낯선 외할미와 남게 되면 울고불고 난리 칠까 내심 겁먹었는데, 다행히도 그리기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이제 외손주와 외할미. 둘만이 오도카니 남았습니다.



7개월 만에 맞은 온전한 해후입니다. 공교롭게도 독립국으로서 헌법이 제정된 조국의 역사적인 날에, 외손주와의 역사를 다시 시작했어요. 아참, 7. 17일은 조선왕조 건국일이기도 하답니다. 이날은 육아일기를 다시 시작하는 우리 두 사람에게도 분명 소중한 날입니다.




그러네요, 바로 그날, 지난주 수요일 아침부터 외할미의 우려는 기우가 되었습니다. 식민국에서 벗어나듯 외할미 걱정도 훌훌 벗어버리고 외할미 독립만세의 쾌재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지요. 밤을 기다리고 새벽이 지나면 해 돋는 아침이 오지요.

아침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어요. 이건 분명 외할미에게도 외손주에게도, 또한 아가의 부모에게도 행운이에요. 그쵸. 양육자와 낯설이 하는 제 아가를 오롯이 남겨두고 직장에 나갈 부모로서 얼마나 마음 짠하겠어요. 그걸 재영이가 한 방에 쿨하게 풀어줬어요. 재영인 7개월 전, 그때의 할미와 외손주 친밀도를 바로 되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할미가 꼬옥 안으면 조금 더 커진 떡국 같은 아가 손으로 할미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까까(까꿍)하며 세상 재미있어 배시시 웃는 제 얼굴을 할미 향해 쏘옥 내밀고, 누워있는 할미한테 살금살금 다가와 꽃보다 더 이쁜 제 볼을 할미 볼에다 마구 부비면서 장난을 걸어와 깔깔깔깔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할미도 요 이쁜 꽃을 껴안고 마구 뽀뽀 세례를 합니다. 그리고선 할미가 누워서 요 아기꽃을 무릎에 걸어 올려 비행기를 태워줍니다.

재영아, 비행기가 오떻게 날아가요? 할미가 물으면 재영인 손가락을 허공에 하늘하늘 꽃가지처럼 흔들며 이이이~ 합니다.


이만하면 우리의 잃어버렸던 7개월의 시간을 찾은 거지요.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서로 서먹한 관계였는데 말입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바로, 우릴 두고 하는 축복의 말인가 봅니다. 나의 외손주와 외할미 사이에 다시, 또 다른 웃음꽃이 활~짝 폈다는 의미입니다.





오, 외손주와 외할미 독립 만세!!



근데요, 외할미 노력의 공도 조금 있긴 해요.

7개월 전 그때 밥 먹듯이 불러줬던 "야곱의 축복" "태극기" "송아지"... 를 자주 불러주었고, 그 당시와 똑같이 베란다에 하루 한 번씩 나가 새를 같이 보고, 바람소리도 함께 듣기를 반복했걸랑요.

그러면서 재영이가 이 할미와 함께 하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듯해요. 왜 그거 있잖아요. M. 프루스트 소설에서 마들렌 쿠키가 입천장에 닿았을 때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낸 콩프레 집과 고모가 생각났던 장면이요. 바로 이 구절 말입니다.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 M.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할미 기분이 어땠냐고요?


할미가 그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론 얼마나 주눅 들어 있었다고요. (행여 왜 그랬는지 궁금하시다면, 이전 글 참조해보세요.^^)

이 반가운 기분을 어찌 일일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 쿨 가이 좀 보세요. 사이 이렇게 쑥~ 자랐어요.



외할미랑 둘이 쇼핑센터에 갔는데, 외손주가 앞장서서 페어런츠 룸에 딸린 이리로 오다. 오른쪽 왼쪽 길을 돌아돌아서 여기를 정확하게잘 찾아온 외손주가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지다.


와손주 집에서 가까운 제임스 파크에 갔는데, 재영이가 공을 보더니 발로 펑펑 잘 차서 축구하던 형아들이 이 공을 갖고 놀으라고 잠시 빌려주다. 그 형들이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지다.


다음호부터,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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