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간에 살빛은 달라도 반기는 느낌은 똑같았다

by 예나네


어, 칼리 목소리가 들리네.


딸이 퇴근하고 와서 하는 말에 칼리네 집 쪽으로 바짝 귀를 기울여보았다. 10월 3일 날 칼리가 브리즈번 병원으로 간 후부터, 요즘은 그쪽에선 휑한 바람소리만 윙윙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칼리네 집 앞에서 사람 소리가 속닥속닥 아왔다.



가만있어봐, 엄마가 가보고 올게.



난 딸의 저녁밥상을 차리다 말고 뛰어나가 우리 집 뒷문 게이트를 열고 나가보았다. 로빈, 로빈의 시숙 피터, 릭, 칼리가 원탁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서 환담을 하다 말고, 문 따는 소리에 일제히 나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하이, 호옹.

난 발이 안 보이도록 뛰어가서 마중 나오는 칼리 할머니를 얼싸안고 어화둥둥 같이 춤을 추었다. 마만인가. 근 두 달 만에 칼리 할머니와 만났다.



그들은 나의 홍콩 여행이 어땠는지, 홍콩 안부부터 묻기 시작하였다. 칼리는 홍콩에서 쇼핑 많이 했느냐고 몇 번 물었다. 나는 홍콩달러가 생각보다 비싸더라며, 쇼핑을 그리 많이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홍콩달러 5달러가 호주달러 1달러 정도 된다고 했더니, 칼리 남편 릭이 예전에 홍콩이 영국령에 속할 때는 영국 1파운드가 홍콩달러 1,200달러까지 저렴했단다. 홍콩달러가 싸서 홍콩에서 텔레비전, 냉장고 같은 것을 쉽게 구입해 왔다고도 했다.



그러다 나는 로빈의 뉴질랜드 여행이 좋았는지 물어보았다. 엄청 좋았다는 로빈의 대답에 릭이 나보고 그녀의 형제자매가 몇 명인지 물어보라 한다.

오 마이 갓! 그녀는 뉴질랜드에 10명의 시스터와 4명의 브라더가 있으니 총 15남매가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다. 그 14명 중 두 명만 못 만나고 왔다니 형제애가 좋은가보다. 그녀 어머니는 65명의 손주와 증손주들을 거느리고 계신다고.



난 그녀의 대가족 내력을 들을 때마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남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난 그저 늘 흥미롭고 재미있다. 보아하니 릭과 칼리도 재미있어하긴 마찬가지인 듯하다.

로빈은 자랄 때 이층 침대에 잤는데, 한층에 각각 두 명씩 끼어 잤다면서 하하하, 그때가 즐거웠던 듯이 자꾸 히히히 웃는다. 듣고 있던 우리 중 누군가는 손뼉까지 치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아마 나였으리라.



지난주 내가 홍콩에 있을 때 집에 다녀갔었다는 칼리는 7주 후, 그러니까 새해를 여기서 보내고 1월에 브리즈번에 있는 병원에 다시 간다며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머리에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쓴 그녀는, 두 달 전부터 초기 위암 치료를 받느라 조금 여윈 것 말고는 눈이 동그란 하얀 얼굴이 여전히 예쁘고 환했다. 난 속으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릭과 로빈과 피터도 오랜만에 보는 나를 반겨주었다. 로빈은 내가 여행에서 돌아온 것 같아서 목요일 저녁 해거름에 우리 집을 몇 번 노크했었는데 대답이 없더란다. 난 그녀에게 못 들었지만 고맙다고 답했다.

어제 아침에는 내가 릭네 집 앞 잔디와 뜰에 물을 주었는데, 로빈이 내가 준 걸 모르고 저녁에 또 물을 주더라며 릭이 재미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릭은 자기 집에다 세큐리티를 설치해놓았기 때문에 칼리와 병원에 있으면서도, 릭네 집 주변에서 움직이던 우리의 동선을 다 꿰뚫어 본 것이다. 분은 로빈과 내가 아침과 저녁시간을 차례로 방문하여 자기네 집 빈 뜰에서 호수를 들고 물을 주는 장면을 흥겹게 주시하였을 터, 서로 마주 보면서 키득키득하셨을 테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모두도 그렇게 한바탕 웃음꽃을 프하하하 터트렸으니.



내가, 너희들, 아니 여러분들(사실은 칼리와 릭은 팔순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시다. You로 말하니 너희들(여러분들?)이 된다.)은 참 좋은 이웃을 가졌다며 농을 넸더니 칼리 할머니와 릭 할아버지가 맞다, 고 맞장구를 쳐주신다.



칼리 주사 놓을 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칼리는 나보고 자기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졌다며 응석?을 부렸다. 난 괜찮아, 새로 나오는 머리가 더 좋아, 했더니 내 엉덩이를 툭 치면서 쿨하게 웃었다.

헤어지기 전에 로빈은 칼리를 한 번 더 포옹하더니 볼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칼리는 나 보고도 그렇게 해보란다. 내가 그냥 포옹만 꼬옥 해드렸더니 후훗, 웃고 우린 진짜로 흩어졌다. 몇 발자국만에 돌아오는 발걸음 사이로 맑은 저녁 바람이 시원하게 안겨왔다.

딸은 저녁 식탁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살 빛깔은 서로 달라도 서로를 반기는 느낌은 다 똑같네. 서로 어지간히도 반가웠던가 보네.


맞아, 그러니 이 세상 어디에나 꽃이 피어나는 겨.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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