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친구 벨이 건네준 쪽지와 문자에 대한 소고
이 나라는 웬만하면 친구라 부른다.
벨은 자신이 팔순에 접어든 사실이 믿기지 않은지, 내 나이 벌써 팔십이야,라고 수요일 뜨개질 반과 목요일 바느질반에서 가끔, 자기의 오래된 나이테가 아쉬운 듯 꺼내놓는다. 나이 드는 게 달갑지 않다는 그녀의 표정에, 듣는 할머니 벗들도 공감의 표시로써 설핏 웃음을 지으며 시간을 스치듯 지나간다.
누구나 오래 산 삶, 그 자체를 반기진 않지만 어쩔 수없이 세월이 주는 나이를 먹어야 한다는 나이 듦의 당위성을,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공통적으로 갖고 태어난다.
그 사이에서 우린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핼로윈 데이, 우리나라가 겪은 이태원의 참사를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또 어떤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게 통곡하고 염려하고 슬퍼하고 속상해하고 부끄러워도 하고 그런가 하면 마음 저미며 미안해하고, 누군가는 원망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때같은 자식을 황망히 보내신 부모님의 마음만 할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짧은 이 기도가 미안하다.
그런 벨에게 나는 별다른 경어체의 호칭을 쓰진 않는다. 벨, 이라고 이름을 부른다. 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더라도 팔십 대의 벨과 육십 대의 나인 우리 사이가 이 나라에선 그냥 친구 사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냥 서로 편해졌다. 이처럼 이 나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친척, 친구, 이웃, 직장동료로 대분류 되고 있다.
경어를 쓰든 쓰지 않든, 내면에 쌓인 나 자신의 나이테를 잠시 더듬어본다. 살아오는 동안에 타인에게 민폐를 끼친 적은 없는가. 부끄러울 정도로 수없이 많다.
살아오는 동안 타인을 위하여 도움을 준 적은 있는가. 셀 수 있는 손이 몇 손가락밖에 되지 않는다. 부끄러울 정도로 그 수는 적다.
지금부터라도 잘하고 살기로 마음을 먹는다. 영어로 '선물'이라는 '지금'. 이 단어가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지금부터 작은 선물을 누군가와 주고받을 수 있다.
마음으로 잘하기로 마음을 먹고살면 적어도 타인에게 민폐는 덜 끼친다.
큰 딸네가 사는 시드니를 거쳐 홍콩으로 여행을 가기 때문에 11월 한 달은 부득이 결석을 한다고 하자, 그다음 주에 벨은 나의 여행을 위해 이 쪽지를 써 가지고 왔다. ( 큰딸이 출장 가는데 끼여 가는 겁니다. 친정엄마하고 이때 여행해보지 언제 하느냐며 같이 가잡니다. 저는 홍콩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벨, 그녀는 몇 년 전에 홍콩을 잠시 들려왔다고 한다. 한 달간 크루즈 여행 중에 하루 동안 다녀온 홍콩 여행을 정리한 앨범까지 챙겨 와서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자신이 다녀온 홍콩 여행의 정보를 최대한 알려주었다. 이곳 도서관에 가면 유익한 홍콩 관련 책들이 있다고도 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작다는 홍콩의 디즈니 랜드와 가장 긴 260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석가모니상을 보고 왔다며 두 사진을 보여주었다.
난 그날, 뜨개질을 하고 있던 크리스마스 소품을 내 친구 친절한 그녀, 벨에게 선물로 건네주었다.
작은 소품 하나에 눈을 못 떼는 그녀, 너~무 이쁘다며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지난 월요일에는 벨이 문자를 보내왔다.
홍, 난 거의 젊은 사람들이 관련된 한국의 끔찍한 소식에 무척 속상해. 부상자들이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많은 가족들이 오랫동안 영향을 받을 것 같아. 벨.
난 이태원 참사에 "속상하다"는 말로 표현해 준 그녀의 공감이 고마웠다. 살빛 다른 그녀가 내 나라의 참사 앞에서 속상하다니, 그냥 감사했다.
또 내 마음은 그녀가 쓴 "끔찍한 소식"이라는 이 단어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아프고, 자존심도 상하고, 속상하고, 걱정스러운 단어를 한참 동안 응시하게 되었다. 그러다 엎드려 눈을 감으니 깊고 나지막한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나의 조국, 사우스 코리아를 위해 기도를 해야 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