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골에 신고배와 찹쌀떡이 산타처럼 찾아왔다
여기 한인마켓, 하이마트에
요즘 들어 물건이 빼곡히 차있다.
와, 그득~ 하네요.
예, 없던 품목도 많이 들어왔으니 찬찬히 보시고 사셔요.
원주 출신 아가씨 이쁜이(난 이 아가씨를 나 혼자 그냥 이쁜이라 칭한다. 이태를 봐왔는데 여태 이름을 안 물어봤다. 10년을 살고도 시어머니 성도 모른다더니 그 짝이다.)는 한결같이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진심이며 친절하다.
마켓의 젊은 주인도 이쁜이에게 가게를 믿고 혼자 보도록 맡기는 날이 많다. 어디에서든 신뢰는 서로에게 이득이다.
한국말을 더듬더듬 징검다리 건너듯 하는 홍콩 아가씨와도 이쁜이가 대화하는 걸 듣다 보면 인정의 단물이 뚝뚝 흐른다.
난 오늘 마켓에서 말이 좀 잦았다.
홍콩아가씨도 나가고 손님은 나 혼자뿐이다.
어, 신고배도 들어왔네요.
예, 이번에 처음 들어왔어요.
둥글넓적한 게 고릿적 부잣집 맏며느리를 닮은 한국 신고배의 이마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한 알에 8불(약 7100원)이다. 카트에 3개를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담았다. 귀중하니까.
카트를 끌고 조금 더 걸어가니 떡, 반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목 빼고 기다리던 떡의 닮은꼴이 보인다. 궁중떡이라고 쓰여있다. 내가 고대하던 떡은 아니었지만 눌러보니 말랑하고 부드러웠다. 색깔도 마음에 든다. 분홍, 노랑, 팥색, 검은색에다가 새하얀 코코넛가루를 묻혀놓았다. 이쁘다.
오늘따라 수다해진 내가
또다시 묻는다.
이 떡은 냉장고에 넣어놔도 안 딱딱하고 부드럽네요. 일주일 더 넣어놔도 이대로 있을까요.
예, 재료를 뭘 썼는지 모르지만 그대로 말랑하더라고요.
미안하지만 포장을 뜯어서 맛 좀 봐도 될까요. 다음 주 수요일 날 호주 할머니들하고 크리스마스 브레이크 파티가 있어서 한국배하고 같이 들고 가볼까 해서요.
예, 가위 드릴게요.
아, 맛있네요. 됐다. 이걸로 해야겠어요. 할머니들한테 딱이에요. 하하. 같이 좀 먹어요. 자요. 먹어봐요. 자자. 점심 안 먹었잖아요. 이걸로 점심 때워요.
아 괜찮,, 괜찮은데,, 요. 호호.
이쁜이와 나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찰떡 한 팩을 다 해치웠다. 그 아가씨, 이쁘니 아니랄까 봐 식혜 한 캔을 갖고 와서 나한테 들이 민다.
어거하고 같이 드셔요. 이건 제가 드리는 거예요.
아이고, 안 그래도 되는데. 근데 내가 식혜 좋아하는 거 어째 알았어요. 진짜 시원하게 잘 마셨어요.
태평양을 건너서 이역만리 브리즈번까지 닿아, 다시 호주 시골 우리집에 온 귀하고 귀한 신고배 3개와 찰떡 5팩.이번주 수요일날, 이 매이드인코리어를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면 좋겠다.
내가 신고배와 찰떡을 나비가 꽃을 만난 듯 꿀벌이 꽃술을 만난 듯, 아니 산타를
만난 듯 반갑게 맞이한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왜냐하면 수요일마다 참여하는 블랭켓 버디스 교실에서 이번 주에 크리스마스 쫑파티를 한다며 크리스마스 음식을 한 접시씩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날 친절 할머니 데니쉬가 나한테 물었다.
홍, 너는 크리스마스 음식 생각해둔 거 있어?
흠, 난 특별히 생각이 안 나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음식은 특별한 건 없어서. 우리나라는 추석날, 땡쓰 기빙 데이, 과 설날에 특별식을 먹거든. 근데 혹시 네가 추천해 줄 수 있어?
뭐가 좋을까. 아, 과일이 어떨까. 크리스마스 과일로 체리랑, 멜론이랑 수박 썰어 오면 괜찮겠다.
아, 고마워. 그럴게. 과일로 가져올게.
지난주 수요일 날 이렇게 데니쉬와 대화를 한 후, 귀가 길에 혹시나 해서 한국 마켓에 들렀는데, 아주 멋진 한국 아이템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아시다시피
아직 월요일이다.
이웃집 칼리가 오전 10시에 오기로 했다. 칼리 할머니의 입원과 암 치료로 오랜만에 갖는 커피타임이다.
중간에 수박과 음식을 조금씩 전해드리기는 했지만, 그리고 릭 할아버지가 바나나를 갖다 주시기도 했지만, 커피타임은 칼리 퇴원 후 처음이다.
그녀가 위암 치료 중이셔서 어떤 음식을 내놓는 게 좋을까, 궁리하다가 커피를 내리고 그날 사서 냉장고에 고이 보관해 둔 신고배와 찰떡을 차려드렸다.
칼리는 분홍색 떡을 두 개 골랐다. 난 남은 노란색 두 개를 먹었다.
지난 10월부터 치료를 받고 있는 칼리 할머니는 활달하기만 하던 이전 같지는 않으셨다. 몸이 약해진 만큼 마음도 연약해져 있었다. 목요일 날 네 번째 암 치료를 받으셔야 하니 심적 부담이 아무래도 가중되어서 우울해 보였다.
나의 마음도 연하게 흔들렸다. 어쩔 수 없이 칼리의 분위기에 투사된 듯 살짝 가라앉았다.
그래도 그녀는 개인 건강보험에 가입하여서 치료비가 무료여서 다행이라 하였다. 안 그랬으면 밀리언 달러가 들었을 거라 하니 이 나라에서도 건강보험은 필수인 듯싶다.
아직은 나의 건강문제가 남의 일처럼 멀게 느껴져서 차일피일 미루던 이 나라 건강보험을 조만간 가입해야 할 것 같다.
칼리 할머니는 남편 릭 할아버지의 점심을 차리러 간다고 열한 시 반 즈음에 일어나셨다. 전과는 다르게 안색이 피로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팔순의 나이에 치료를 받으시니 오죽하실까.
나는 방문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 뒤 그저 할머니를 꼭 안아 포옹해드렸다. 게이트까지 배웅을 나가자 날씨가 덥다며 얼른 들어가라고 하시는 게, 한국의 할머니나 칼리나 다, 성정이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칼리는 혹시 내가 하이 마트에 가게 되면 돈을 줄 테니까, 한국배 한 개만 사다 달라고 하셨다. 위에 부담감도 없고 맛있었다고 칭찬을 하셨다.
난 하이마트에 한국배가 다 팔리지 않고 남아있기를 속으로 바랐다. 그녀가 좋아하는 자랑스러운 한국배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기를 바랐다. 그것을 드시고 다운 된 기분도 풀리고 기운이 돌아오면 좋겠다..
아삭, 하며 단물이 입안 가득 고이는 신고배가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니, 한편으로는 기뻤다.
이번 주 수요반 할머니들께서도 한국배와 찰떡을 좋아하시면, 난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