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미로일 때 찾아가던 바다

- 나의 가슴에는 바다가 있다 • 4 (Bargara Beach)

by 예나네


내 안에서 밀물이 일 때,
이 바다를 찾았다.




집에서 직선거리로 10분이었다.

집을 나오면 바로 나타나는, 아스라이 먼 지평선에서 그가 활짝 웃으며 나올 것 같았다. 늘에 잇댄 평원을 지나다 보면 바다가 나타났다.

고루하고 지루한 지평선보다는, 파도가 넘실대는 살아있는 푸른 바다가 사실은 더 반가웠다. 지평선은 정물화 같았다. 그에 반해 수평선은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하얀 양 떼를 몰고 오는 파도는,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을 양 떼 속에 고이 숨겨 올 것 같았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그를 내 앞에다 순하게 데려다 놓을 것 같았다.

난 그런 양 떼 닮은 얀 파도에 속고 또 속았지만, 눈이 시리도록 양 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를 향해 끓임 없이 달려오던 하얀 파도를 쳐다보며 나의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고 있었다.

바가라 비치 Bargara Beach의 중앙 난간을 잡고 오래 서 있었다. 이 세상에 있지도 않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거의 날마다 망망한 이곳을 찾아갔다.

바다에 비해 점 좁쌀만 한 마음 잔뜩, 그리운 사람이 수선스런 밀물처럼 찰랑거리고 있었으니. 러지 않으면 내 안의 밀물은 멎지 않은 눈물로 변하고 말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 바다에는
눈물같이 밀려오던 양 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친절하고 조촐한 카페가 바다 곁 있었다. 그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보통 여기 주변의 바다에는 달랑 카페만 있거나, 카페도 레스토랑도 없는 곳이 많은데, 이곳 바가라 비치엔 여러 개의 카페와 레스토랑, 심지어 카라벤 팤은 물론 리조트와 아파트먼트, 그리고 골프장까지 이곳에 다 모셔놓고 있었다.



그중에 내가 즐겨 찾던 곳은, 고개 들면 얀 양 떼가 보이는 바닷가의 카페였다. 난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티드 샌드위치를 시켜두고 책을 읽었다. 공책에 뭔가를 적기도 했다.

금은 폰으로 글자를 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공책에 썼다가 지우곤 하면서 글 한편을 완성했다. 그때는 여러 잡지에 내 글을 부지런히 보내고 있을 때였다.



커피와 세트로 10불에 팔던 샌드위치는 가격도 착하고 내 입맛에도 맞았다. 알고 보니 이 동네 샌드위치는 한국의 국밥 편한 메뉴였다.



그땐 내가 내 자신의 바다에 빠져있느라 나 자신이 어떤 몰골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요즘 와서 돌이켜보면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그 카페 여인은 내 속내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픈 그리움으로 들끓고 있음을 대충 알았던 듯싶다. 그녀는 내가 가면 아는 체를 하면서 상냥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건 내게 위로가 되었다.



어느 날은 주변의 책방 여자도 거기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카페 여인은 오, 여기 두 사람 다 똑같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며, 반색을 해주기도 했다. 난 책 읽는 사람은 카페에서도 환영을 받는구나, 생각되어 괜히 기분이 업되기도 했다.



바다가 밀물로 밀려올 때, 바다는 제 자신의 파고로 출렁이느라 자신 행적엔 관심이 없다. 러나 어떤 동양 여자가 슬그머니 책을 펴놓고, 가끔은 뭔가를 끄적거리면서 허전한 걸 채우고 있던, 나의 바닷속을, 지켜보던 그녀는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다, 난 외손주가 태어나 시드니에 가서 1년 반 동안, 외손주 재영이가 주었던 선물 같은 웃음의 시간을 보내고 곳으로 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녀, 카페여인을 보지 못했다.



주인이 바뀐 이 카페는 조금 낯설게 내 앞에 있다. 불과 몇 년 전, '미노스의 미로' 속을 헤매던 나의 시간 속에서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기 위해, 있지도 않던 양 떼 닮은 하얀 파도 속에서, 그리고 또 그리던 그를 찾아헤매라 아팠던 그 시간들이, 희미한 질감으로 내 속에 아직 있다. 가끔, 그때가 회상된다. 때로, 아직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이, 마음이 달달할 때가 다.




요즘은 여기, 그때 그 카페에서, 딸과 함께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딸은 피스타치오, 나는 커피맛 아이스크림을 시켜서 바닷가 벤치에서 달게 핥아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전의 쓸쓸하던 풍경들이, 요즘엔 달달하게 들어온다.


감사하다.


어김없이 바닷가에 아가들 놀이터가 다정하게 모여있고, 요즘은 모바일 카페도 예쁘게 등장했다.
바닷가를 따라 산책로가 있다.
이곳은 화산지역이어서 바다마다 해풍에 씻긴, 검은 돌이 바다를 장식하여 풍경을 업그레이드 해준다.
다른 바다와는 달리 이곳 바가라비치에는 바닷가에 아파트가 꽤 있다. 더러는 숙소로, 더러는 주소지를 가지고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변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
난 늘 이런 평원을 지나서 이 바다에 닿는다.


또 다른 치유의 바다,
바가라 비치가 오늘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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