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맑다.
우체국 볼일을 보고 나니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바가라 해변가에서 커피를 테이크 어웨이 하여 하묵으로 차를 몰았다.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피크 peak니 이 지역 어디서든 이곳, 하묵마을을 볼 수 있다. 높아봤자 조금 높이 솟은 언덕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여기 벤치에서 내려다보이는 푸른 들판을 뜯어 글감으로 쓰려던 야심 찬 계획이 무산되었다.
오전 열한 시, 정상의 주차장에는 단 한 대의 트럭만 있었다. 힐끗 보니 차 안에 펌을 한 머릿결 안 좋은 젊은이가 타고 있었다. 차와 사람의 인상이 똑같이 어설펐다. 내리려니 나도 좀 어설펐다. 이땐 어색한 세 사람이 좋은데 나와 다른 단 한 사람밖에 없으니 내릴 용기가 안 났다.
길을 잘못 든 사람처럼, 차에서 내리지 않고 오던 길로 내려오면서 운전대 옆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따스해진 폐부가 시원해졌다.
우리 집 앞을 지나치면서 어디로 갈까, 하다가 예전에 자주 걷던 공원으로 차를 돌려보았다. 그곳 연못가에서 난 끝끝내 떨구지 못하여 속속 아린 그리움을 달래던 기억이 있다. 마음 패인 자리가 다시 아플까 조금 망설이다가 좁은 길을 운전하여 들어가 보았다.
맑게 갠 날씨 때문일까. 좀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다시 돋아날 것 같던 감정이 속절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안도와 섭한 맘이 살짝 교차했다.
햇살 아래 반짝거리는 연못의 물결만 그대로였다. 그땐 청둥오리 가족이 물결을 따라 헤엄치고 어느 네팔여인이 식빵을 조각내어 물고기와 새들한테 던져주고 있었다.
오늘은 길고 검은 부리를 가진 새떼들이 나무 그늘과 연못가에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쉬고 있었다. 네 마리의 크고작은 자라 가족도 물가로 나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어서,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일어서자 잽싸게 물속으로 찰방, 몸들을 숨겨버린다. 갑옷 입은 그들도 생존본능이 그랑프리감이다.
한낮의 여름 햇빛은 뜨거웠지만, 그래도 간간히 그늘 안으로 들어와 더위를 식혀주는 산들바람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여, 그대로 꽤 오래 앉아서 물길에 눈길을 쏟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 잔잔하던 수면에 바람이 일자
수많은 다이아몬드가 생겨났다.
호수의 수면이 다시 가라앉을 즈음 일어나
집으로 왔다.
나의 집 뒤뜰에서 절친만큼 익숙한 흰 뭉게구름과 또다른 푸른 호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호수를 떠가는 이 폭신폭신한 뭉게구름 하나 잡아 이불처럼 깔고 드러눕고 싶어졌다.
흰구름 두둥실 떠 있는 내 집이 가장 편하고
좋았다. 역시 나의 집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