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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Dec 08. 2022

낮은 맑음으로 말 걸어오는 엘리엇 헤드 비치

- 나의 가슴에는 바다가 있다 •2


얼마만인가.
1년도 더 지났다.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도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던 지인처럼, 마음먹으면 금방 닿을 거리, 집에서  겨우 13km 떨어진 엘리엇 헤드 비치 Elliott Heads Beach 소원했던 데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2,3년 전인가. 정월대보름 달구경을 하러 왔다 돌아가는 길에, 캥거루 꼬리가 탁, 하며 나의 차에 좌측포그 라이트 커버를 낚아채 갔었다. 순식간이었다. 희한하게도 고것만 쏙 빼갔다. 우린 그날 겁을 잔뜩 먹었다. 거루도 놀라 줄행랑을 치는 소리를 우린 들었다. 그때부터 이쪽으로 오는 운전이 뜸해졌었다.



두 번째 이유는 딸이 이곳을 싫어, 아니 이곳에 무섬증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유독 이 바다에서만 개들을 독팤 Dog Park 인 , 이 바다로 데리고 와 바다에다 풀어놓기 때문이다. 주인은 낯선 사람이 가까이 오면 자신들의 반려견을 단속하며 나름 신경을 쓰지만, 딸은 행여 개가 달려들 것 같은, 그  잠재된 무섬증을 못 견딘다. 둥이 얼룩이들의 덩치가 큰 이유도 한 몫한다.



그래서 오늘은 큰맘 먹고 혼자 왔다.
영락없이 줄이 풀린 개들이 보인다.



이 개는 내가 다른 풍경을 찍는 사이, 내 발끝으로 다가와  내 눈치를 보며 서성거리다가 주인한테로 불려서 다시 돌아갔다. 살짝 두렵긴 했다. 이곳도 아주 가끔, 사고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남매도 개들을 데리고 록풀 Rock Pools 쪽으로 걸어간다. 수영할 채비를 한 걸 보니, 반려견들과 함께 수영을
하려나.




개와 줄을 연결하고 온 이 아주머니는 이곳으로 자주 산책을 나오는 듯, 앞장선 개도 그녀도, 함께 걷는 품새에서 서로의 발자국을 딛는 리듬이 착착착 잘 맞는다. 왠지 보는 것만으로도 경쾌하다.




이 젊은이와 검둥이도 서로의 사인을 빠르게 인지하고 있다. 개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운동을 즐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있다가 얼른, 폰을 꺼내어 동영상을 찍었다. 브런치 작가니까. 직업병인가.





엘리엇 해드 비치,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족처럼 지내는 개만 있는 바다가 아니다. 바다에는 귀여운 아가들이랑 다정한 친구랑 온 깜찍한 엄마들도 포착된다. 저 젊은 엄마들 중 한 엄마의 배는 볼록하다. 한 3개월 후가 되면 또 다른 아기가 응애, 하며 파도소리처럼, 제 엄마의 양수 밖으로 툭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씩씩하고 명랑한 엄마를 닮은 아기일 것 같다.
그러면 좋겠다.





썰물이 푸른 바다의 옷을 벗기고,
해맑은 옷을 입혀놓았다.
물이 빠져서 절반은 푸른 바다에 잠겨있던 커다란 바위도 바다에서 나와 햇살을 쬐고 있었다.
난 맨발로 록풀로 향하는 길을 걷다 말고, 바위에 오래 앉아서 멍 때리며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또 걸었다. 저만치에 록풀이 있으니 그곳에 가면 파랑, 노랑, 오렌지 색깔을 한 이쁜 바닷고기들이 꼬리를 흔들며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넘치는 기대감으로 또 찰방찰방 바닷길을, 개울을 건너던 소녀시절처럼 걸어가기 시작했다.




록풀에 왔는데 록풀이 없다.


물이 적당히 빠질 땐 바위가 웅덩이를 만들어주어 사람들은, 자연이 만들어 준 록풀 Rock pools에서 수영도 즐기고, 바 물고기랑, 꽃게랑, 산호랑 장난도 치며 즐겼는데 오늘의 썰물은 아곳 바다 수영장 물을 싸그리, 다 비워내고 말았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오라는, 바다의 마음으로 읽으며 발길을 돌렸다. 너무 오래 오지 않아 바다는 내게 으름장을 놓는 건가.



그래도 남아 있는 물이 씻은 듯 더 맑다.




돌아오는 길에도 이 바다의 얼굴을
또 찍었다.

선탠을 하던 수영복 소녀가 자리를 털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찰칵,찰칵,
그녀의 동선을 따라 담아보았다.



뉘엿뉘엿 해도 제 갈길로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바다 한쪽에선  스키가 웨앵웨앵 대며 파도를 헤쳐 자신의 파도를 생성해내고 있었다.



나도 발걸음을 더 촘촘히 재촉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출발해야 저번 달밤처럼 캥거루와 부딪치지 않을 거니까. 그러고보니 오늘도 보름달이 휘영청, 온 세상의 밤을 파스텔 톤으로 그리는 날이다.



밀물과 썰물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엘리엇 해드 비치는 다소 여성적이다.


낮고 맑은 목소리로, 내가  때마다 다정히 말 걸어주던 바다다. 그리 숨이 컥 막힐 것 같던 가슴 대양대었다. 가 감당할 수 없던 거대한 그리움의 부피를, 녹지 않는 질긴 설탕처럼 조금조금 녹이고 또 녹여내곤 했다. 그래서 난 지금 별 탈 없이 살고 있다.  다가 나를 살리는 데 일조했다.



그러니 겸손한 맑음으로, 다양한 얼굴로 나를 한결같이 반겨주던 이 바다는
나의 은인이기도 하다.



이곳엔 유일한 커피와 피쉬앤칩스를 같이 파는 숍이 있다. 언덕 위에 위치한 이곳은 친절하고, 바다를 바라보는 경관이 아름답다. 그리고 커피와 음식도 맛있는
장소이다. 오늘은 그냥 지나쳐왔다. 밤에 혹시라도 만나게 될 캥거루를 피하기 위하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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