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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Nov 24. 2022

꽃결 물결 풀결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다




홍콩은 사람과 사람의 까만 머리가 촘촘히 이어진 사람 결이 있었다. 전철역에서 새까맣게 내리는 사람들의 결이 어떤 땐 돌개바람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길을 잘 못 들어 반대편으로 가로질러가려 해도 두텁게 연계된 군중을 뚫지 못할 땐 그랬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지도 못하였다. 그건 더 위험했다. 무조건 사람들이 이동하는 결대로 따라 움직여야 했다. 지하철을 갈아타던 환승역, 홍콩 금종 역의 출퇴근 시간대 그것은 더 심했다.

군중은 대부분 피부가 탱탱한 젊은 사람들이었다. 차가 멈춤과 동시에 일제히  최대한 보폭으로 전철을 훌쩍 뛰어넘어 바쁜 발길을 재촉하는 그 젊음들 내면, 그들이 각자 키우는 내적 열매 하나씩 옹골차게 내재된 듯 느껴졌다. 그런 출근시간 분위기가 위협적이면서도 희망적이어서 좋았다.

그 와중에 난, 대한민국 서울의 출근시간이랬지 하며, 추억을 잠깐 소환했다. 일종의 귀소본능일까. 애국자는 아니더라도, 나도 모르게 이렇게 비교를 해보곤 한다. 




홍콩에서 시드니로 와 딸네 집에서 이틀 밤을 더 묵었다. 월요일 딸이 출근을 하고 꼬맹이들도 어린이 집에 가고 나와 사위가 집을 지켰다.

사위는 컴퓨터 앞에서 헤드셋을 쓰고 세 개의 스크린을 쳐다보며 앉아있었다. 나는 욕실, 침실, 거실... 에 두 꼬맹이들이 놓고 간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들을 대충 모아놓고, 빨래를 널고, 막둥이가 오줌 싼 이불을 세탁기에 넣었다.

그날따라 지붕 위로 바람 소리가 세차게 쇳소리로 쌩쌩거렸다. 베란다로 나갔는데 돌개바람이 쌔앵 내게로 불어닥쳤다.

아이고, 어머니 괜찮으세요. 어머니 날아갈까 걱정돼서 나와봤어요.

하하, 일하는데 바람소리가 들렸어? 바람이 세긴 세다. 낼은 바람이 자야 비행기가 뜰 텐데. 그나저나 어 일해.

그날 저녁에 도토리묵을 물과 가루의 5:1 비율로 쒀 놓고 이튿날 비행기를 타고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시드니 바람이 자서 비행기가 잘 떴다.




하비 베이까지 픽업을 나온 둘째 딸 차를 타고 오는 귀갓길은 온통 꽃결과 물결과 풀결로 이루어진 호주 시골이다.

나도 모르게  와, 여기야말로 어너더 홀리데이네!라는 탄성이 절로 툭 튀어나왔다. 홍콩과 시드니 같은 도시의 분주함도 생동감이 있고 사람의 숨결이 가까이 있어 좋았다.

특히 멀리 떨어져 살던 딸네 가족과의 조우가 얼마나 꿈결같이 흘러갔는가.

그래도 나의 집이 있는 곳. 나의 이브자리가 있고, 내가 가꿔 온 꽃밭이 있는 곳이 세상 편하다.

이튿날 아침에 딸과 함께 번다버그 포트로 오솔길을 따라 조깅을 하는데 내 시골의 꽃과 풀과 물이 나를 포근히 감싸 안듯 반겨주었다. 풀과 물에 수놓듯 결을 만들던, 살랑살랑 맨살을 간질이듯 안겨오는 바람결도 고왔다.


그 안에서 모든 게 감사했다.



브런치 벗님들 덕분에 일상으로  
안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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